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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저편>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 25주년 기념작품이라 하기에는 다소 분량이 적다. 간결하고 명확한 그의 문체로나, 책 속에 실린 소탈한 그의 모습으로나 '기념'의 거창함을 두꺼운 양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지는 않았던가 보다. 그렇게 또 하루키 스타일은 다양한 삶의 고독과 인간 내면의 심리를 '보여줌'으로써 한 편의 소설이 아닌 영화로 만들어 내 놓았다.
잠의 수렁 속에 빠진 미모의 언니 에리와 외모 컴플렉스를 공부로 극복하고 있는 동생 마리가 어느 날 밤 11시56분 부터 다음날 오전 6시 52분까지 겪는 하루밤 동안의 이야기. 뛰어난 외모로 어디서나 사람들의 시선을 받던 잡지 모델 아사이 에리는 어느 날 '지금부터 한동안 잠을 자겠어'라고 말한 후 두 달 동안 계속 잠을 잔다. 그러나 시체처럼 잠만 자는 그녀의 방을 늘 주시하는 하나의 시점이 있다. 이는 마치 공포영화에서 흔히 보는 주인공이 없는 카메라의 시점으로 그녀는 물론 방 안을 샅샅히 훑어가는 유기체이다. 또 하나의 침입자인 플러그가 뽑힌 TV 브라운관은 그녀와 관련된 또 다른 공간과 사람을 보여 주면서 수면 너머의 세계를 끌어들인다.
소설의 처음을 열고 마지막을 닫는 그 시선은 어쩌면 '어둠'의 시선일지 모른다. 버즈아이뷰부터 접사촬영까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는 그 시선은 또 하나의 대표적인 문명의 징표인 핸드폰을 통해 이런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번 작품에서도 하루키는 음악을 빼놓지 않았다. 곳곳에서 음악은 비주얼과 잘 버무려지면서 완벽한 영상을 만들어 냈다. 게다가 음악까지 알려주는 친절함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과 닮아 있다. 책을 덮고 나면 왕가위나 김지운의 영화 한 편 본 듯한 느낌이 들 지도 모른다. (최세라, yes24.com/Goods)
동정없는 세상 문학동네 박현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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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 실린 모든 글들은 유쾌하고 기발하고 재미있고 소중하다. 유쾌하고 기발하고 재미있게 삶의 소중한 가치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근래에 보기 힘든 cool한 소설이 되고 만 것이다.
<동정없는 세상>은 술술 잘 읽히는 소설이다. 첫 페이지를 열면 두세 시간만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읽히는 소설이다. 가장 큰 미덕이다. 중의적인 뜻을 담고 있는 제목부터가 재밌다.
또 이 소설은 내가 좋아하는 성장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소년은 성에 눈을 떠가면서 세상에 눈을 떠간다. 동정(童貞)이 사라지면서 동정(同情)없는 세상에 눈을 뜨는 것이다. 그리고 소년이라는 옷을 벗고, 어른이라는 옷을 입는다. 학교를 벗어나 동정(同情)없는 세상에 한 걸음 다가서는 것이다. 모든 성장 소설들이 그렇듯 이 소설도 과거, 혹은 유년에 대한 공감할 수 있는 추억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소년의 추억이란 곳 어른의 추억이 되는 것이다. 그 추억담을 들춰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그 추억의 힘으로 인해 우리는 유년을 돌아보고 세상을 돌아보고 현실을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세상을 더 힘차게 살아가는 위로와 격려를 얻는다. 잘 된 성장 소설은 그래서 좋다.
이 소설은 수능을 마친 열아홉 살 소년이 스무 살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88라이터 한 갑이 1000원 하던 시절부터 1100원으로 오를 때까지의 이야기다. 동정(童貞)을 지니고 있던 소년이 동정(童貞)을 잃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소년이 어른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다. 살아 있음의 가치를 깨닫고, 살아가야 할 방향을 잡기까지의 이야기다. 동정없는 세상에 첫 발을 디딘 세상 모든 소년들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소설이다.
(리아트리스, yahoo.com/lib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