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초의 선사는 조주다풍이 아닌 초의다풍을 세웠고, <다신전(茶神傳)>을 통해 이를 전하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옛선인다회를 이끌고 있는 강우석 회장은 최근 본사에 ‘<다신전>과 초의선사의 차문화 중흥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을 보내왔다. 이 논문에서 강 회장은 “우리나라의 다풍은 <다신전> 이래 잎차 중심의 초의다풍이 성행하고 있으며, 이는 가루차와 덩이차를 중심으로 하는 조주다풍의 맥을 달리 한다”고 말한다.
▷ 다신전이란?
<다신전>은 조선후기 초의 선사가 청나라 모환문(毛煥文)이 쓴 <만보전서(萬寶全書)>의 ‘다경채요(茶經採要)’를 등초한 것으로, 1830년 정서를 마치고 세상에 선보인 고전다서다. 이때 초의선사가 등초한 ‘다경채요’는 명나라 장원(張源)의 <다록(茶錄)>을 필사한 것이니, <다신전>의 실질적 원전은 <다록>이라 할 수 있다. 초의선사가 일지암에서 직접 정서했다는 친필본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를 다시 필사한 것으로 추측되는 다예관본(태평양화학 다예관 소장), 법진본(전남 담양 수진 스님 소장), 이일우본(이일우 소장), 송광사본(송광사 소장), 경암본(다문화연구소 소장) 등 몇 가지 필사본들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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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신전>은 본문 1420여자, 발문 98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내용은 차를 따고 만들고 마시는 등 차생활 전반에 걸친 사항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다만 장원의 <다록>에 전하는 ‘분다합(分茶盒)’ 부분을 생략했으며 초의선사가 직접 쓴 발문(跋文)이 붙어 있는 것이 원본과 다른 점이다.
▷ 다신전 발문에는 어떤 내용이?
강우석 회장은 “그동안 초의선사가 직접 지은 <동다송>과는 달리 다른 다서를 옮겨 적은 책이라는 점에서 <다신전>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다신전>의 발문을 보면 초의선사가 차문화 중흥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으며,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차 정신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초의선사가 ‘참선을 못할 지경에서도 화롯불을 곁에 두고 정서를 계속했다(庚寅中春 休菴病禪 雪窓擁爐 謹書)’는 기록은 차문화 중흥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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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강 회장은 초의선사가 발문을 통해 시대적 다풍에 맞는 올바른 다도를 정립하고자 했다는 데 주목한다. ‘총림에 조주의 다풍을 흉내를 내는 자가 있을 지라도 다도를 온전히 알지 못한다(叢林或有趙州風 而盡不知茶道)’는 대목은 당시 불가(佛家)에서는 ‘끽다거’로 대표되는 당나라 조주종심선사(778~897)의 다풍이 널리 퍼져있었음에도 ‘조주다풍’의 정확한 내용은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초의선사 당시에는 말차 중심적이고 비가시적(非可視的)ㆍ비다구적(非茶具的)ㆍ사상적(思想的)인 조주다풍이 맞지 않다고 생각해 우리나라의 차문화에 어울리는 다도를 새로이 정립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잎차 문화를 중심으로 한 명대에 쓰여진 <다록>을 필사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강 회장은 “초의선사가 <다신전>의 마지막 장에서 ‘다위(장원의 <다록>에서는 다도로 기록)’라고 정의한 것이 바로 초의선사의 차정신을 함축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초의다풍’이다”고 말한다. 이 같은 초의다풍은 잎차 중심의 가시적(可視的)ㆍ다구적(茶具的)ㆍ물질적(物質的) 다풍이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다풍의 골격을 이룬다고 강 회장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