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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뭔종인지 모르지만 태고종도 태고종이 해결허겄지요. 님께서도 그쪽 일이나 잘 하세요. (2006-02-27 오전 1: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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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흥분하지 마시고 문제의 핵심을 이야기 하심이 어떨지요. 무슨 자격지심있으신지요. 조계종의 문제는 조계종이 해결하니 그쪽이나 잘 하시지요. 무슨 걱정도 팔자라고... (2006-02-25 오후 7: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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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이 그 홈피에 있ㄴㄴ 거예요. (2006-02-25 오후 5: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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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조계종단의 가장 큰 문제는 견제 세력이 없다는 겁니다. 일제 때에 조선불교 사찰령법이라고 하는 법규에 의지해서 대처승이라는 스님들도 주지 삼직을 투표를 했거든요. 말사 삼직은 모르겠는데 본사 삼직은 투표제입니다. 그러면 스님들이 총무하고 재무하고는 절대 주지스님 편 사람을 안 뽑아줍니다. 반대 세력에 의해서 총무, 재무는 반대세력에서 붙들고 교무스님은 주지스님 편 임무를 해주긴 해도 견제세력이 있었어요. 그리고 욕을 듣든 말았든 대처승이라는 그 분들은 어려서부터 절에 들어와서 어른들의 꾸지람 속에 중의 행동을 익혔고, 중의 마음가짐을 익혔고, 부처님 앞에 재산은 어떻게 간수한다는 것을 익혀온 분들이에요. 이제는 대(代)가 바뀌어서 그쪽 집안도 모르겠습니다만, 조계종단의 한 가지 단점이 비구·대처 싸울 무렵에 학교 졸업도 못하고 갑자기 머리를 깎아 중의 몸가짐과 사상물이 안 들은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절집안의 재산은 어떻게 간수해야 된다는 꾸지람을 못 들었어요. 그 분들이 지금은 모두 어른이 되었어요. 그 분들이 어른이니까 거기에서 아랫대는 전부 똑같은 물이 들어서 마구 흘러가지요. 그런 점이 조계종단에서 가장 고쳐야 될, 항상 돌이켜서 고쳐야 될 문제입니다. 옛날 스님들은 무섭게 하셨어요. 지금 통도사에 있는 능엄경, 기신론, 금강경, 원각경 경판이 천성산 쪽에 있던 어느 절의 경판이에요. 그 절에 스님이 경판을 처음 만들기 위해서 친구들하고 사방으로 뛰어서 자금을 조달을 했지요. 그래서 돈을 가지고 지리산에 들어가서 경판을 새길 나무를 대충 장만을 해가지고 천성산에 와서 경판을 만들려고 하는데 총 모금을 다 (2006-02-25 오후 5: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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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예를 들면 열반하신 일타스님이 비구·대처 싸움 무렵에 선봉에 서서 싸우셨지요. 그리고 엄격히 따지면 비구승은 무법으로 교권을 쟁취한 단체거든요. 이대통령이라고 하는 분이 우리나라에는 중 장가가는 법이 없었다, 중 장가가는 것은 일본법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중을 밀어주라는 이 말 뿐이지 법적인 근거는 없었잖아요. 대통령이 비구승 밀어주라는 이거 때문에 후대에 성공한 것이 조계종단이거든요. 이런 과정에서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 무렵에 어른들의 꾸지람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숫자를 모으다 보니까 엉뚱한 쪽으로 갔죠. 그 분들이 일단락 끝난 다음에 재교육을 했어야 되는데 어른들이 이 사람들을 못 누른 거지요. 거기에서 가장 무슨 잘못된 게 도화선이 되어서 그 다음은 그 사람들이 모두 높은 자리에 있으니까 이게 수습이 한번도 안 되어 버린 거지요. 그게 결국은 가장 뿌리부터 잘못이라는 거지요. 일타스님이 비구·대처 싸움의 선봉장에 나와서 싸우셨거든요. 일단락이 된 다음에 일타스님, 열반하신 종정 혜암스님 등 일곱 분이 우리 싸움하느라고 중노릇을 잘못하고 죄도 지었으니까 오대산 적멸보궁에 가서 참회를 하고 나와서 본래의 수행의 길로 가자. 그래서 일곱 분이 약속을 하고 들어갔어요. 하루 3천배씩 일주일 절을 하고 나오기로 했어요. 일타스님이 첫날 3천배를 하고 두 손을 들어버렸어요. 나 절 못 하겠다, 나는 절을 못 하겠다, 절하는 데서 빠지겠다, 그 대신 내가 공양주를 하겠다, 했답니다. 그래서 스님들 뒷바라지 공양주로 밥상 차려놓고 오대산 적멸보궁 밑 사자암에서 지고 올라갔습니다. 일타스님은 공양주로 빠져서 스님들 뒷바라지를 한다 (2006-02-25 오후 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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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뭘 모르시네 그랴...글 좀 제대로 읽어봐요. 그리고 태고종사라는 책 읽어나 보셨나 모르겠네요. 아참! 다른 신문 홈피 보니까 조계종스님이 하신 말씀,우룡스님이 하신 말씀이 그 반대 글 슨 박희승의 인터뷰 기사로 조게종 기관지 불교신문에 실린 조계종 스님들의 정체성 이야기가 나옵디다. 처자 거느린 태고종도 아니고 처저식 먹여살리느나 고고한 비구 조계스님 법문할 수 없는 동대교수 이야기도 아닌 조계종 고승이야기니 틀인 야그가 아닐 걸로 사료됩오만... (2006-02-25 오후 5: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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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왜곡하고 자료를 보내주면 고쳐준다는 말이 되나요. 지금이라도 그렇게 답변을 했다고 하니 천만 다행한 일이지만 태고종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을 바르게 찾아 가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니 오해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옥에도 티가 있는 법. 그 티때문에 옥의 가치가 약간 손상될지언정 근본적인 가치가 없어 지는 것은 아니지요. 옥에 티가 있다고 돌맹이와 바꾸시겠소. 이 문제는 흥분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인데요. 각자 종단의 특성을 살리자는 것이고, 이제와서 분규와 정화문제로 한국불교가 다시 문제를 일으켜 무슨 이익입니까. 어차피 결론은 나온 것이고 각자 자신으 ㅣ종단을 잘 꾸려 나가고 있는데요. 쓸데없는 소모전은 하지 맙시다. 그리고 종단 스님들이 글줄이나 안다는 학자들에게 농락당해서야 되겠습니까. 아무리 세상이 거꾸러 간다고 해도 학자의 소견은 바늘구멍에 불과하니 넓은 대승의 마음을 가진 스님들이 그들을 잘 교화할 생각을 해야지 교수라는 허울에 이용당하지 맙시다. 겨우 처자식 먹여살리기 위해 발부둥치는 속인 교수에게서 무슨 법을 구하시겠소. 설사 그들이 불교학박사를 받았다고 해도 속인임에 틀림이 없는데... 불교의 승단은 눈밝은 선지식들이 이끌어 왔고 앞으로도 그맇다고 생각합니다. 종단이 학자릐 글에 놀아 날것이 아니라 그들을 바로 이끌 생각을 하심이 올을 줄압니다. (2006-02-24 오후 10:4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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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이야기들을 보면서 좀 서글픈 마음이 듭니다. 역사를 쓰면서 사료를 활용하는 방법이나 그 역사서를보고 항의하는 방법이나..제대로 방편을 아는 부처님의 후에인지 반성해 봅시다. 자료가 있다고 해서 다 사실이거나 진실이 아니고 자료에 있다고 해서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바르게 다시 살펴서 바람직하지 않은 사료나,바름직하지 않은 표현이 있다면 바꿔 줄 일이고..바꿔야 할 것이 있다면 자료를 제시해서 서로 웃으면서 역사를 바로보는 눈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2006-02-24 오후 9:5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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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종단에서는 역사자료 바르게 보내면 고쳐 준다는 구먼..뭘 그리 야단이야 야단이..자료가 없나보지요? (2006-02-24 오후 9:4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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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느 높은 비구스님의 보살과 어머니가 큰길에서 목소리 높여 싸웠는지 아시나요? 그것참.... (2006-02-24 오후 9: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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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왜곡하는 종단이 바로 조게종인 것은 왜 모르고 2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는가요? 태고종이 비구-무소유의-종단이라는 뜻이 아니라 비구 종단이라고 하는 종단의 어른 스님들에 관한 이야기가 왜 94년도에도 ,98년도에도,정대,법장,지관스님대도 나오는 이야기냐는 것..이 이야기에도 좀 사실적으로 말해 보시지요. (2006-02-24 오후 9: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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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 불교대학에 재직할 때도 그렇게나 조계종 승려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분이었는데 퇴직을 했으니 홀가분하시겠네요. 학자는 개인의 감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학문적 진실입니다. 한국불교를 지켜온 분들은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세속과 야합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 어떤 역경도 이겨내고 불법의 참다운 실현을 위해 미력하나마 자신의 신명을 바친 우리의 선지식들입니다. 그런데 겨우 글줄이나 알고 박사학위를 가졌다고 한국불교를 지켜온 분들을 모독하는 행위를 하시면 안되지요. 후학들이 김교수님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퇴직하셨으면 마음 넓게 쓰는 수행에 전념하심이 어떨련지요... (2006-02-23 오후 11:3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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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 더욱 부끄러운 일입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어떤 사료가 있다고 해도 한국불교에서의 대처의 시작은 일제시대의 잔재에 불과합니다. 일제시대의 아픈 잔재가 아픔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필요로 하고 요청하는 종단으로 거듭 날수 있다면 일제청산이나 과거사청산을 불교적으로 승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태고종사의 문제는 다른 종단들이 자신의 사상을 거슬러 중국불교와 한국불교에 끼워맞추려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2006-02-23 오후 8: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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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정 한 사람이 비구라고 그 중단이 비구 종단이 되나요. 그것은 일본의 종단도 같은 형태인데 그 이유는 이런 것입니다. 불교승단이 본래는 비구여야 하는데 우리가 현재 이렇게 잘못되어 있음을 후학들에게 알리는 방법이지요. 왜 대처가 올바른 것이라면 종정이라도 비구로 두겠습니까. 이 문제는 비구와 대처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의 문제이며 태고종이 대처종단을 표방하는 한 그 종단의 시점을 일제시대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일제 이전에 한국불교 어디에 대처를 인정한 적이 있습니까. 저의 개인적인 의견은 태고종이 진정 종단의 정체성을 찾으려면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대처종단으로서 한국불교와 사회에 공헌하는 길을 찾는 일입니다. 대처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시대의 요청이었고 또한 중생들과 동체대비하는데 있어 도움이 된다는 당위성을 인정받을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비록 태고종사를 과거 불교에 끼워맞추기를 한다고 해서 현재의 태고종단이 달라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처승의 자식들은 자신의 부친이 승려인 것이 부끄러워 절에도 가지 않는 실정, 대처승이 목사처럼 사회에서 종교인의 한 일원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그늘에 있어야 하는 이런 실정을 과감히 깨부수고 대처종단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을 때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대처종단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은 너무나 많을 것이고 이런 일들을 추진하면서 비구종단과 다른 대처종단의 특성을 살릴 생각을 하는 것이 한국불교에 보탭이 된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항상 대처종단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움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글로 표현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대처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 (2006-02-23 오후 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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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비구종단이라고 자처하는 조계종에서는 선거때마다 그 이야기가 불거지는가? 전부 다 비구만 모여있는데도 말이다. (2006-02-23 오전 7: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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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정통성과 현재의 위상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태고종은 승려의 결혼을 허용하기는 하나 역대 종정스님이 출가 전이나 후에도 결혼하지 않은 진짜 비구이며,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2006-02-23 오전 7: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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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태고종이 비구승단으로 탈바꿈한다면 지금의 태고종사가 올바른 것일지 모르지만, 대처종단을 고집한다면 태고종사는 당연히 일제시대 대처승이 시작된 시점부터를 종단의 시발점으로 해야 한다. 왜? 일제시대 이전의 한국불교의 어느 선지식도 대처한 사람을 승려로 인정한바 없거늘 자신들이 그분들의 뜻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있지도 않는 사실을 왜곡하여 역사를 자신의 입맛에 맞추는가.
태고종단은 자신들의 위축된 사기를 되살리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기 보다 승가교육, 대처승 가족들에 대한 불심살리기, 사회적 이미지 개선 등등 의 일들을 통해 태고종단의 정체성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이는 비구종단과 다른 점에서 태고종단만이 할 수 있는 일, 또한 여타의 대처종단들의 모범이 되어 그들을 바로 이끌 대처종단의 종조 역활을 수행해야 한다. 이제 일제청산을 위한 정화는 그만두고 조계종은 비구승가로서 태고종은 대처승단의 종조로서 각자의 정체성 회복을 위해 매진하자. 그리고 이런 불상사를 일으키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이는 엄연한 자격지심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2006-02-23 오전 7:3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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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를 하고도 당당한 곳은 일본불교뿐이다. 도한 이들도 자신들은 출가승단보다 재가승단임을 밝히고 있는 시점에서 일제에 의해 대처한 종단이 정통성을 운운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일본불교는 정통성의 교단이 아니라 일본사회의 요구에 야합한 교단일 뿐이며 이는 일본인들에 의해 받아 질뿐 다른 불교교단에서는 용납을 하지 않는 부분이다. 이에 한국불교에서의 대처는 엄연히 정통성을 잃어 버린지 오래이나 일제의 아픈 역사도 우리 역사 역사의 한 부분임을 인정하여 대처종단을 근절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도리어 정통성을 운운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위이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서 종단이 우후죽순처럼 만들어 지고 있는 시점이라고는 하나 엄연히 정통과 비정통의 구분이 있어야 한다. 태고종단이 지난 세월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시대를 마감하고 대사회적인 활동과 종단이 정체성을 되살리기 위해 정진하는 모습은 정말 보기가 좋았다. 허나 그곳에 도를 넘어 이제는 일제시대 대처한 잔재인 태고종이 한국불교의 정통인양 꾸민다면 어불성설이다. 물론 태고보우를 맥으로 하는 종단이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이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도 태고종이 진정 태고보우의 적자임을 만천하에 밝힐 수 있는가 말이다. 태고보우가 언제 대처한 제자를 자신의 적자라고 할까 자못 궁금하다. (2006-02-23 오전 7: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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