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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준공이 있기까지 기울인 성관 스님의 땀과 노력은 눈물겹다. 지금까지 열다섯 차례 이상 캄보디아와 한국을 오가면서도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고, 캄보디아 부총리, 외교부, 교육부, 사회복지부 장관 등 정부대표자들을 설득하고 약속을 받아내야 했다.
“건립을 시작한 뒤에도 농업을 기반으로 한 캄보디아와 지식정보사회에 접어든 한국간 문화의 차이로 인해 모험에 가까웠지만, 결국 해냈어요. 이젠 캄보디아 제일의 시설로 키우는 일이 남았습니다.”
성관 스님이 처음 캄보디아를 찾은 것은 1996년이었다. 앙코르와트를 대한 순간 숨이 멎는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이렇게 웅장하고 훌륭한 문화를 같은 동양인인 이들이 일궈냈다는 자긍심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현실은 “원달러(One Dollar), 원달러”를 외치는 아이들과 빼빼마른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어머니의 초췌한 모습이었다. 이들을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고 원력을 세운 것이 BWC의 출발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은 외국의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전통문화와 사상을 잃어버린 문화제국주의의 피해자였어요. 캄보디아인들에게 우리가 당한 아픔을 똑같이 안겨선 안됩니다. 앙코르왕국을 일구었던 자신감을 회복시켜주고 싶어요.”
성관 스님은 BWC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세워뒀다. 보육원과 초등학교 외에도 유치원과 중학교, 직업훈련원을 갖춘 종합복지타운으로 키우고 나아가 캄보디아 전역으로 확대시킨다는 구상이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힘겨웠지만, 성관 스님은 한국불교의 저력을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