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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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오르고 차 마시며 ‘둘 아닌 마음’ 확인
병술년 포항 천주교ㆍ불교 등반대회 현장
“반갑습니다. 참 좋은 날입니다.”
2월 11일 포항 내연산 보경사에는 웃음꽃이 만발했다. 포항 천주교평신도회와 포항불교신도단체협의회가 ‘포항 천주교 불교 신년하례 등반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제4대리구 평신도회 이원기 총회장을 비롯한 포항 11개 성당의 임원 60여 명과 포항불교신도단체협의회 김명조 수석부회장을 비롯한 불교계 임원 80여명이 보경사 불이문 앞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첫 만남이지만 맞잡은 손 놓을 줄 몰라

행사는 지난해 봄부터 시작됐던 포항 천주교 불교 지도자 모임에서 비롯됐다. 2004년 12월 정장식 포항시장의 종교편향 발언을 성토하는 범불교도 대회가 개최된 이후 “더 이상 종교간의 갈등은 없어야한다”는 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시작된 ‘포항 천주교 불교 지도자 모임’이 신도들까지 확대되면서 신년하례 등반대회를 개최한 것.

포항 천주교와 불교 신도들이 보경사 불이문 앞에서 손을 잡고 둘 아닌 마음으로 살 것을 다짐하고 있다.


두 종교의 임원들은 첫 만남이지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듯 맞잡은 손을 좀처럼 놓을 줄 몰랐다. 맞잡은 두 손에는 반가움의 무게만큼 잔뜩 힘이 실렸고, 상기된 얼굴은 홍조를 띠었다.

“어, 여기 웬일입니까?”
세상은 넓고도 좁다 했든가? 포항불교청년회 김기국 불자는 회사동료를 만나 더욱 반갑다. 종교는 다르지만 한 고장 사람이다. 이렇게 만나고 보니 예수님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가 다를 것이 없다. 괜히 미혹한 중생들이 성인들의 세상을 이리저리 갈라놓아 오해를 불렀을 뿐. 김기국 불자는 “모두가 형제자매며 이웃사촌인데 종교가 틀리다는 이유로 서로를 적대시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일주문 앞에서 잡은 손은 내연산 연산폭포까지 1시간여 산행길에도 이어졌다.


상생폭포에서 ‘상생 기념촬영’

“불교계에서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함께 산에 오르니 더욱 산이 아름답습니다.”
내연산은 물러나는 겨울을 아쉬워하듯 아직 얼음을 품고 있지만 완연한 봄기운은 어쩔 수 없다. 골짜기 나무들은 새 잎을 내기위해 봄 물을 잔뜩 머금었고, 골짝 계곡의 얼음도 살짝 녹아 시원한 물소리를 경쾌히 들려줬다. 연산폭포를 돌아 내려오는 길에 시원스런 상생폭포가 눈길을 끈다.

상생폭포 앞에서 기념촬영.


“오늘 이 자리가 바로 상생의 자리 아니겠습니까? 이곳에서 기념촬영 한번 합시다.”
힘이 넘치는 상생폭포처럼 서로를 살리는 동반자로 함께하기 위한 기념촬영을 했다.

누가 불교인이고 누가 천주교인이라고 할 것도 없이 뒤엉켜 내려온 길. 보경사 일주문 앞에 두 종교의 성직자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다. 포항불교사암연합회장 난승 스님과 천주교 대구대교구 제4대리구 주교대리 조정헌 신부를 비롯해 보경사 법달, 용암사 도일, 죽림사 종문, 천곡사 정오 스님, 천주교 제4대리구 제1구역장 김상규 신부와 제3구역장 전재천 신부가 보경사에서 차담을 나누며 신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둘이 아님을 주지시키는 듯 ‘불이문’이라고 적힌 편액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이날 하루 하느님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가 깃든 내연산 품에서 두 종교계 성직자와 임원들은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후손들에 아름다운 전통으로 이어지길

내연산 등반 후 보경사 입구의 식당으로 이어진 신년 하례회가 시끌벅적하다.

어느 잔치집이 이보다 즐거울 수 있을까? 스님과 신부님들이 한상에 둘러앉았고 140여 임원들이 자리를 같이 했다. 두 종교계 임원들의 우레와 같은 환호 속에 천주교 평신도회 이원기 총회장과 포항불교신도단체협 김명조 수석부회장을 비롯한 임원진 소개가 이어졌고, 조정헌 신부와 난승 스님이 인사말을 했다.

“스님들과의 만남은 1년 전부터 이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신도님들까지 자리를 함께하니 참으로 좋습니다.”

종교간 대화합의 장을 이끌어낸 조정헌 신부는 싱글벙글 미소로 만족감을 나타냈다. 단 하나의 기우라면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인 오해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것일 뿐.

마음도 식탁도 풍성하니 화합은 저절로.


조 신부는 “종교화합 차원에서 또 지역의 타종교가 갖는 위상처럼 불교와 천주교 위상도 객관적으로 높아져야 한다는 마음에서 모임을 갖게 됐을 뿐”이라며 거듭 취지를 밝히고, “종교화합차원에서 서로 돕고 양보한다는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난승 스님은 “지난해부터 신부님들과 같은 종교인으로 조건 없는 만남을 가졌고, 이를 통해 신부님의 어깨높이에 맞춰 격상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며, “이렇게 서로의 격에 맞춰 서로가 높아졌다는 마음으로 함께 간다면 오래도록 함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목사님들도 뜻을 하나로 모아 동참한다면 언젠가 세 종교가 어깨를 나란히 할 때가 있을 것”이라며 “그날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분위기는 같은 지역민으로 포항지역 발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신앙생활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며 서로 참으로 닮았음을 다시 확인하며 무르익었다.

이에 앞서 이원기 천주교평신도회 총회장은 “불교와 천주교는 부처님의 자비와 예수님의 사랑이 근본적으로 동일하며, 스님과 신부님, 수녀님이 세상의 명리를 초월해 독신으로 사는 점, 염주와 묵주가 비슷한 점 등 두 종교가 수 천년동안 이어온 의식도 비슷한 점이 많다”며 “오늘의 모임이 연년이 이어져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전통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포항불교신도단체협 김명조 수석부회장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는데 이렇게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차를 나누니 무척 큰 인연인 듯하다”며 “천주교와 불교의 만남이 더 좋은 인연으로 승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지속적으로 발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종교화합은 서로간 위상 높이는 일

경북 포항은 바닷가 도시지역으로 수많은 종교가 함께 뒤엉켜 공존해왔다. 포항은 2004년 정장식 시장의 종교편향적 언행으로 3만 여명의 불자가 범불교도대회를 개최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범불교도대회가 열린지 1년이 지났지만 포항에는 아직 은연중에 특정종교의 독주를 의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불자뿐 아니라 천주교인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신년하례에서 참가자들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산행하는 동안 “종교인으로서 배타적인 모습은 조심해야 한다” “더 이상 특정 종교의 주도로 편향되어 끌려갈 수는 없다. 불교 천주교의 위상도 그만큼 높여야한다”는 말들이 곳곳에서 들린 것도 그때문. 그렇다면 산행을 하면서 이들이 찾은 해결 방법은 어떤 것일까?

포항 불교와 천주교계는 화합과 상생을 해결방법으로 택했다. 먼저 두 종교간에 화합된 모습을 이루고 발전시켜 모든 종교화합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이런 포항 천주교와 불교계의 행보는 지난날의 정장식 포항시장조차 종교간의 화합을 이끌어낸 역행보살로 긍정하며 되돌리고 있다.

장성성당 이재원 평신도사도적협의회장은 “마호메트의 풍자만화로 세계적인 분쟁이 빚어지고 있는 이 때 불교 천주교 신도들간의 등반대회는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듯하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앞으로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의 종교를 이해·존중하고 지역발전에 기여하기로 약속했다.
포항/글=배지선 기자ㆍ사진=박재완 기자 | jjsunshine@hanmail.net
2006-02-21 오전 9: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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