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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이슬람의 예언자 마호메트가 심지에 불이 붙은 폭탄 모양의 터번을 두르고 있는 모습도 있고 자살폭탄 공격으로 죽은 순교자들이 천당을 방문하자 이제 더 이상 당신들에게 선물할 처녀들이 없다는 내용을 담은 캐리커처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어떤 경우에도 절대적 신앙의 대상인 마호메트에 관한 초상이나 사진, 동상 등의 제작을 금지하고 있는 이슬람교도들에겐 대단히 모욕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종교적 금기에 유럽 언론이 표현의 자유를 들어 정면으로 도전한 셈이 되었고, 이것이 전 세계 무슬림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표면상 이 사건은 언론의 자유라는 서구적 가치와 이슬람의 종교적 권위가 갈등을 빚고 있는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지만 <문명의 충돌>의 저자 새뮤얼 헌팅턴의 관점을 빌리면 그 이면에는 기독교문명과 이슬람문명 간의 해묵은 감정적 앙금이 도사리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 와중에 우리는 양 측이 서로 자신의 문화적 가치를 보편적인 것으로 확신하고 이를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한편에서는 특정 종교의 금기사항을 다른 종교인들에게까지 요구할 권리는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한 번도 만든 적이 없는 예언자 마호메트의 얼굴을 제멋대로 그리고 조롱하는 것은 어떠한 구실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중대한 신성모독이라고 반발한다.
연일 대규모 규탄 집회가 이어지고 아랍국가 내의 유럽 대사관들이 불타는가 하면, 터키에서는 가톨릭 신부가 살해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란은 덴마크와의 통상관계를 중단하는 조치까지 단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표현의 자유가 지나쳤다는 서방 언론의 자성과 함께 무슬림들의 폭력적 시위도 자제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어 그나마 조금은 안심이 된다.
바티칸의 교황청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라고 해서 종교적 믿음을 손상시킬 권리까지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성명을 냈고, 이슬람권 언론에서도 ‘우리의 분노를 그런 방식으로 표출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며 폭력 자제를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사소한 문화적 인식의 차이가 자칫 종교에 기반을 둔 문명적 충돌로까지 치닫는다면 이는 실로 인류 전체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상대방의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관용의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세계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우선적인 덕목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여기서 우리 불자들은 새삼 부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 내가 알고 있고 옳다고 믿는 것도 따지고 보면 아무런 실체가 없는 텅 빈 것에 불과하다는 깨우침과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인연으로 맺어진 연기의 다발일 뿐 결코 저 혼자 독립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는 부처님 법은 언제 들어도 진리 그 자체로 와 닿는 것이다.
그런 불교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가장 큰 특징인 종교적 배타성을 거부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이처럼 불교는 그 본질상 다른 이웃 종교들을 적대시하지 않는다. 불교 또는 불교국가가 자신의 종교적 이념을 상대방에게 전파할 목적으로 전쟁을 일으킨 역사적 전례가 있는가? 단연코 없다고 기억한다. 이것은 실로 불교의 자랑스러운 전통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도 불교인들은 다시 한 번 종교적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