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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속의 골동보이차
짱유화 교수의 보이차 이야기6
보이차의 흥망은 청나라 왕조의 성쇠에 따라 운명을 같이했다. 조선의 문고(文藁)에서도 보이듯 보이차의 명성이 가장 조명을 받은 때는 청나라 중기부터 후기까지였다.

만주족이 지배했던 청나라가 1911년에 망하자, 쑨원(孫文)을 중심으로 새로이 구성된 한족의 나라 중화민국이 탄생하게 된다. 이후 40년간 중국은 일본과의 전쟁, 내전으로 인해 극심한 피폐에 시달린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변방에서 생산된 보이차가 중앙에 공급되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되었고, 결국 보이차는 중앙지배계층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지는 운명을 맞게 된다. 이것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보이차’란 이름조차 모르고 지내야 했던 역사적 배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운남 현지의 보이차 생산은 위축되지 않았다. 비록 중앙에서의 시장은 잃었으나 광활한 티베트, 위구르, 몽골 등 서역(西域)의 소수민족들이 주 소비층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광대한 서역시장의 수요는 보이차의 생명력에 더욱 활기를 불어넣었고, 보이차를 취급하는 상점 또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상인들은 보이차를 두 가지 품질로 나누어 만드는데, 서역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것은 하등급 찻잎으로 만든 긴차(緊茶) 혹은 병차(餠茶)였으며 수유차의 원료로 쓰였다. 고급 찻잎으로 잘 만들어진 산차(散茶)와 원차(圓茶)는 주로 해외시장으로 나갔다.

당시 운남성 보이차의 찻잎은 오늘과는 달리 모두 야생종이었으며, 차나무는 교목(喬木) 혹은 반교목(半喬木)이었다. 당시의 보이차는 찻잎을 덖어 숨을 죽여 비빈 후 햇볕으로 말린 방법 즉 전통가공법으로 만들었다. 또한 야생 찻잎은 일반 찻잎과는 달리 카테킨의 함량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아미노산, 당류 등의 성분이 상대적으로 높기에 카테킨의 떫은맛을 상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달리 보이차를 생차(生茶)로도 마실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때의 원료가 야생 찻잎이었기 때문이다.

보이차의 생명력은 생차뿐만 아니라 묵힘으로써도 나타난다는데 그 매력이 있다. 이러한 장점은 보이차를 저장 가능케 하는 직접적 동기가 되었고, 생차와 묵은 차등 두 가지 형태로 상품화하게 된다. 보이차는 묵을수록 생기는 독특한 맛이 소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자 차상점들은 순환판매(循環販賣)방식을 택하여 매년 새로 만든 보이차는 창고에 저장해두고 묵은 보이차를 연도에 따라 값을 매겨 거래하는 방식으로 영업을 했다. 물론 운송 또는 보관해야하는 차는 증기 압력을 주어 덩어리로 만들어 통풍이 잘되고 서늘한 창고에 저장하였다.

당시 보이차를 취급하는 상점의 집합지는 이무(易武)였다. 이무는 소위 찻잎이 좋다는 6대차산(六大茶山)에 있었고, 유락(攸樂), 혁등(革登), 의방(倚邦), 망지(莽枝), 만단, 만철(曼撤) 등 6대차산을 가리켜 통상 ‘이무차구(易武茶區)’라고도 부른다. 대표적인 차 상점인 복원창(福元昌), 동경호(同慶號), 경창호(敬昌號), 동창호(同昌號), 송빙호(宋聘號) 등이 모두 이곳에 가게를 열어 부를 쌓았다. 그러나 이곳에서 발생한 돌림병(瘟疫)은 보이차의 상업근간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이무에서 발생한 돌림병의 파장은 운송수단인 마방(馬幇)까지 미치게 됐는데, 각지의 마부들이 전염병이 두려워 이곳 출입을 거부하는 사태는 이무 차산업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에 과거에 아주 빈번하게 왕래했던 마방들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보이차 상점들도 잇달아 휴업하게 된다.

공산중국의 등장은 개인 상점마저 허용하지 않는 정책 아래 이무의 보이차는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해 그 화려했던 영화(榮華)를 접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산물이라 여긴 옛 보이차는 문화대혁명 때 모두 불태워졌고, 그 나마 지구상에 남아 있는 것은 모두 50여 년 전 다마고도(茶馬古道)를 통해 동남아를 거쳐 홍콩 상인들 손에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희소가치가 있거나 유서 깊은 기물(器物) 또는 서화(書畵) 등의 미술품을 가리켜 골동품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골동품이라 불리는 ‘골동보이차’. 한 편 먹을 때마다 가치가 배로 뛰어 어느덧 호가(呼價)는 있어도 거래가 없는 골동 중의 골동으로 보이차 마니아로부터 추앙받고 있다.
짱유화 교수 |
2006-02-17 오후 6: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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