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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족계와 보살계는 양립 불가?
한국불교학회 동계 워크숍서 격론
정식 스님이 되기 위해 받는 구족계(具足戒)와 보살계(菩薩戒)가 양립할 수 없는 것인가.

2월 11~12일 부안 내소사에서 ‘계율과 현대사회’를 주제로 열린 2006 한국불교학회(회장 이평래) 동계 워크숍에서 구족계와 보살계의 양립 가능성 여부를 놓고 한바탕 격론이 벌어졌다.

한국불교학회 동계 워크숍 전체 토론 모습.


팔리문헌연구소장 마성 스님은 ‘소승계와 대승계의 양립에 관한 문제’ 발표를 통해 “<사분율>의 구족계는 부파불교에서 전승해 온 성문계(소승계)이고, <범망경>의 보살계는 중국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대승계”라며 양립 불가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남대 종교문화연구소 박건주 박사는 "오히려 보완적인 관계로 봐야한다"며 반박했다.


마성 스님, “구족계와 보살계는 양립 불가”

이미 여러 율사들이 ‘양립 불가’를 주장했다고 밝힌 마성 스님은 “중국에서 찬술된 위경(僞經)인 <범망경>의 보살계에서는 성문의 가르침 혹은 소승계를 전혀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 사상적으로나 여러 측면에서 보더라도 양립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고 강조했다.

마성 스님.


마성 스님은 특히 “대승불교권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는 것은 상좌불교의 출가자들처럼 그것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구족계를 받아야 출가자가 된다는 인식 때문이다”며 “성문계와 보살계는 같은 장소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성립된 것이 아니고, 후에 결합한 것이기 때문에 내용적으로 모순 되는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제기됐다. 전남대 종교문화연구소 박건주 박사는 “실제 스님들을 보면 보살 근기를 가지고 있는 분도 있고 성문 근기를 가진 분도 있기 때문에 구족계와 보살계가 양립할 수 있다”며 “오히려 두 계가 상호 보완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다”고 받아쳤다.

박건주 박사는 또 “대승계의 내용에 이미 소승계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오히려 대승계가 더 지키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마성 스님은 “구체적으로 계목(戒目)을 정하고 있는 소승계에 비해 두루뭉술한 대승계로 종단을 운영하기 때문에 힘든 측면이 있다”며 청규 제정 등의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자랑 박사,“시대 변화 부응하는 율(律) 정립해야”

이번 워크숍에서는 또 시대 변화에 부응하는 율이 정립돼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이자랑 박사.


도쿄대 외국인특별연구원인 이자랑 박사는 ‘율장을 통해 본 승단과 현대사회의 조화’ 발표에서 “계가 도덕이나 윤리를 지칭하는 반면 율은 세간의 법률에 해당하는 용어로 강제적이고도 객관적인 규범을 가리킨다”고 전제했다.

이 박사는 이어 “율의 제정에는 승단과 일반사회와의 적절한 조화의 필요성이 크게 작용했다”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불교승단 역시 율을 제정한 붓다의 가르침대로 사회가 제시하는 상식 속에서 율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이렇게 함으로써 승단은 일반사회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고, 승단과 일반사회 사이의 갈등 소지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이 박사는 “오후불식을 철저히 실천하는 남방불교권에서는 체력 유지 등을 위해 육식을 한다”며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육식을 한다고 하면 사회에서 허용이 될 수 있겠느냐?”며 사회적 기준에 부응하는 율의 정립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해인사 율원장 무관 스님 역시 “선종인 조계종의 현실적 특성을 고려해 종헌종법에 구체적 범주의 ‘청규’를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허남결 교수, "황 박사 사태에 대한 세련된 대응 아쉬워"

한편, 이날 워크숍에 패널 토론자로 참석한 동국대 윤리문화학과 허남결 교수는 “그동안 한국불교가 계율을 현대사회에 맞게 적극적으로 해석하려는 자신감과 윤리적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면 황우석 사태와 관련해 불교계는 세련된 태도를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국대 허남결 교수.


허 교수는 “황우석 교수 사건의 핵심은 종교 입장의 차이가 아니라 진리탐구를 생명으로 하는 과학자가 그 절차를 조작하고 결과를 왜곡했다는 도덕적 범죄행위에 있는 것”이라며 “여기에 일부 불교계가 종교적 음모론을 들먹이는 것은 다소 성급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허 교수는 또 “한국불교계는 계율 엄숙주의 때문에 난처하고 곤란한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율의 준수가 희화화되는 분위기가 더욱 문제”라고 지적했다.

허 교수외에도 임승택(경북대 철학과), 김준호(부산대 철학과), 조준호(동국대 불교학과) 박사 등도 패널로 참여해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번 워크숍은 40여명의 한국불교학회 회원들이 참여했으며, 한국불교학회는 4월 14일 동국대에서는 열리는 춘계 학술대회에서 다시 ‘계율과 현대사회’를 주제로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유철주 기자 | ycj@buddhapia.com
2006-02-12 오후 10:59:00
 
한마디
*밑에서 부터 읽어올라와 주십시오..... (그의 모습은 소를 찾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 입니다. 소승 대승이나 금강승에 관계없이 끝까지 스님의 위의를 지키는 예가 숫적으로 훨씬 더 많고, 몇년전 모방송국 사장출신의 70대 발심수행자가 머리깎고 출가한 에피소드가 그 증거입니다. 그는 아마도 승복을 입지 않으면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소승수행에서는 출가자들이 수행에 유리한 점이 틀림없이 많지만, 금상승수행에서는 출가자들보다 재가 수행자가 어드밴티지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승이나 금강승을 설하실 때 부처님들이나 보살님들께서도 장발에 영락을 장식하신 의상을 입으시고 나타나시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결론적으로 여러 단계의 계는 사실은 보완적인 관계입니다.
(2006-02-17 오전 5:06:00)
35
1. 결론은 하위(下位) 계를 희생해서라도 상위(上位)계를 지키는 것입니다. 여러 단계의 계는 사실은 보완적인 관계이며, 상위계는 하위계의 정신을 담고 있으면서도, 보다 높은 수행을 성취하기 위한 보다 높은 관점에서 마련된 계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예를 들어, 소승 재가로서는 남의 생명을 빼앗거나 상처를 입혀서 안되는 불살생(不殺生) 또는 불상해(不傷害)의 계가 있지만, 수많은 아녀자들의 인명을 살해하려드는 테러리스트가 등장한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가정합시다. 소승계를 거쳐 대승보살계를 받은 재가불자는 그 테러리스트를 몽둥이로 치거나 발로 차서, 무고한 인명을 구해야합니다. 테러리스트는 죽을 수도 있고, 중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소승계와 보살계 사이에서 이 재가 수행자는 하위(下位)보다 상위(上位)계를 택한 것입니다. 소승 구족계를 받은 스님의 경우, 이성(여인)의 몸을 애무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어느 여인이 오지의 강물에 빠져 죽어갈 경우, 그녀를 건져 살려야할 뿐 더러, 그녀의 입에 키스하며, 인공호흡을 시도하며, 차가워가는 그녀의 온몸을 마사지나 애무로써 덥혀주고 풀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구족계의 파계라고 비난하며, “구족계와 보살계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소승적 승가가 있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상위의 수행단계로 갈수록 출가자들이 재가자들보다 더 큰 장애물을 만나며, 더욱 갈등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3. 인도나 티베트 그리고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금상승(대승 밀교)에서는 이러한 장애물과 갈등을 던져버린 재가 성취자들의 예가 많이 발견됩니다. 소를 찾아 타고 집으로 돌아오
(2006-02-17 오전 4:57:40)
39
혼란이 많은 것 같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불자들의 계는 타종교와 달리, 부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수행자 자신의 수행을 완성시키기 위한 서약의 내용이지요. 2. 불자들의 계는 수행을 하는 사람들만의 것입니다. 아무리 국내외대학에서 불교를 전공했더라도, 실제로 “계를 받고 수행하지 못한 사람”은 불자도 아니고, 따라서 계를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들은 수행자가 아니고, 국외자(局外者)이자, 관객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교관계 박사학위를 갖고서도, 가끔 뚱딴지같은 얘기를 꺼내는 학자들이 많은데, 대개의 경우, 삼귀의계나 소승 오계도 받지 않은 분들이라고 보시면 틀림없습니다. 불교논문을 꽤 발표해온 박노자같은 학자도 삼귀계도 받지 않았다는 고백을 하는 기사를 읽고 그 용기에 놀란 적이 있습니다. 도교에 대해서나 몰두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불교가 축구나 복싱, 테니스같은 관객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3. 재가불자의 경우, 삼귀계, 소승 오계, 팔관재계를 거쳐, 본격적 대승보살계, 금강승계 같이, 수행이 높아질수록 높은 단계의 계를 지켜야합니다. 소승 구족계를 받은 출가자의 경우도 본격적 대승보살계, 금강승계 같이, 점차 수행이 높아질수록 높은 단계의 계를 지켜야할 것은 당연합니다. 5. 그런데, 출가 재가를 불문하고, 대승 이상(보살계, 금강승계)이 되면, 계의 내용이 같아집니다. 여기서 하위(下位)의 계와 상위(上位)의 계의 ‘충돌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며, 그것이 이번 웍샵에서 다루신 문제지요.
(2006-02-17 오전 4:53:22)
35
누구를 향한 계 인가요? 부처님? 그렇다면 양립이 안된다 해도 될수 있게끔 제도화(?) 해야 하지 않나요?
(2006-02-16 오후 1:01:40)
46
딱 까놓고.. 말해봅시다. 없음서 있는 척 하지 말죠.
(2006-02-15 오후 11:13:29)
40
이제는 승단의 계율문제를 재가 학자들과 의논해서 결정해야 하나? 이러다가는 재가 학자를 율사로 모시고 출가해야 할 날도 멀지 않은 듯...
(2006-02-15 오후 6:28:54)
33
원효대사/소성거사나 만해한용운스님의 환속은, 그런뜻에서, 출가승단으로봐서는 배신자지만, 대승불교에서 버면, 진정한 보살이라고 말할 수 있다.
(2006-02-15 오후 4:49:24)
38
아마도 마성스님의 말이 논리적으로 옳을 가능성이 높다... 소승률(小乘律)로 규정되는 비구(比丘)·비구니(比丘尼)가 지키는 계율구족계가 보살계와 양립할 수 없다는 마성스님의 말이 옳다면, (남방 북방불교계에 상관없이) 구족계를 지키는 모든 스님들은 그저 자신들의 고통에서 벗어날 출리(出離)만을 추구하는 소승 열반의 지망생일뿐. 이미 보살이 아니다....그리고 구족계를 받지 않고 보살계를 받은 재가보살들만이 보살행을 펼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보살이 될 수 있을 것이다....모두 대승을 자처하고있는 한국불교종단 소속 스님들은 사실은 거의 모두가 구족계를 파계하고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2006-02-15 오후 4:43:03)
38
황교수를 후원하는 불교계의 마음은 보살의 마음이다. 중생들의 아픔을 줄이는 연구를 앞장 서서 추구해오다 “뭔지 모르는 장애물”에 걸려 고꾸라지고 있는 한 불자교수에 대한 연민의 정일뿐이다. 이러한 불자들의 자비심을 “덜 세련된 태도”이며 “다소 성급했다”고 비난하고있는 불교교수 허교수는 놀랍게도 자비에 너무도 무지하구나!, 세련되고 느긋한 마음은 이미 자비가 아니다. 자비가 무엇이냐? 어려움과 불행을 맞고있는 사람들에 대해 참을 수 없이 조급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마음의 분출이며, 그 어려움을 덜어주려는 보살의 마음이다. (연구논문구성이나 또는 세상살이에서) 모두가 완벽하고 행복한 존재라면, 자비라는 단어조차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2006-02-15 오전 11: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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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持聲聞四棄八棄하야 執身不動하고 後行菩薩淸淨律儀하야 執心不起니라 먼저 성문(聲聞)의 사바라이[四棄]와 팔바라이[八棄]를 잘 지녀서 몸을 가다듬어 흔들리지 말고, 다음에 보살의 청정한 계율과 위의를 행하여 마음을 가다듬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능엄경 중에서
(2006-02-13 오전 12:23:00)
39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해석을 해야 한다고 해야 하지 않나요. 만약 새로운 계율을 제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면 2500년 불교사에서 했겠지요. 이는 계율의 근본정신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기야 계율을 지킨 적이 없는 재가신자가 계율의 정신을 알기는 어려운 일이지요. 예를 들면 운전을 못하는 사람이 운전수칙을 알기는 하지만 그 수칙이 왜 필요한지를 느끼지는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이닐까요. 그래서 학자는 계율에 대한 연구는 하지만 계율에 제정에 관한 문제를 논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
(2006-02-12 오후 11: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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