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지만 정각 스님(불교학과·원각사 주지)의 ‘한국불교 경전신앙 연구’와 성운 스님(인도철학과·삼천사 주지)의 ‘아쇼카왕의 복지사상 연구’가 각각 불교사와 응용불교학적 성격을 띠고 있어 스님들의 관심사가 수행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재가자로는 남궁선(불교학과)씨가 ‘불교 업사상의 생태철학적 연구’로, 김미숙(인도철학과)씨가 ‘자이나교의 불살생론 연구’로 각각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이들 논문 또한 생태와 생명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의 적절한 것으로 평가된다.
불교학의 영원한 ‘화두’…수행
승원 스님은 보조지눌(1158~1210)의 수행체계를 ‘삼문(三門)’을 중심으로 규명했다. 삼문이란 보조지눌이 수행지도를 위해 세운 과정으로,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 경절문(俓截門)으로 이뤄진다. 승원 스님은 성적등지문과 원돈신해문을 정혜수행으로, 경절문을 간화선 수행으로 이해했다는 점에서 기존 설과 차이를 보인다.
논문에 따르면 삼문의 수행은 △성적등지문과 원돈신해문으로 입문해서 정혜 수행을 닦고, 그 다음에도 남아있는 한계를 없애기 위해 경절문 간화선을 닦는 법 △경절문 간화선을 바로 익혀 활구를 공부하는 방법 등 두 가지 수행법으로 정리된다. 두 가지 수행법은 근기에 따라 상이하게 적용되나, 자신의 수행을 완성하고 이타행원을 닦는 것은 공통된다.
승원 스님은 “보조지눌이 자신의 세 차례 깨달음을 바탕으로 삼문 수행을 정립했으며, 돈오점수사상 실천을 주 내용으로 삼았다”고 설명하며 “삼문은 지눌의 체험과 사상을 바탕으로 이뤄진 선수행 체계”라고 주장했다.
스리랑카 출신인 난다라타나 스님은 간화선을 위파사나와 비교한 국내 첫 박사논문이라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특히 “중국 송대 발생한 수행법인 간화선이 부처님의 말씀과 얼마나 관계가 있으며, 간화선의 화두참구로 해탈열반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를 논문의 과제로 삼고 있어 흥미롭기까지 하다.
첫째 질문과 관련해서 난다라타나 스님은 “조사선이 인도 대승불교와 그 경전을 바탕으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초기 <아함경> 등 부처님의 근본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간화선으로 해탈열반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간화선의 목표인 ‘견성성불(見性成佛)’에서 ‘성(性)’을 ‘공성(空性)’으로 이해한다면 위파사나와 마찬가지로 무아를 뜻하게 된다”며 “열반해탈과 성불은 말만 다를 뿐 그 결과는 사실상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혜선 스님의 논문은 전통적인 선과 교의 현대적 변용 사례를 다뤘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혜선 스님은 한마음선원장 대행 스님의 한마음사상과 선수행 체계를 전통적인 교학과 선에서 논의된 일심(一心)과 견주어 고찰했다.
이에 따르면 중국의 천태종과 화엄종의 교의는 일심론(一心論)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천태와 화엄의 일심론을 수용한 선종 또한 같은 맥락에 있다. 대행 스님의 ‘한마음’은 불성 또는 진아(眞我)와 같은 의미로서, 전통적인 일심론의 연장선에 있다.
즉 “일체의 근원이 한마음이며 일체는 한마음의 나툼이다. 한마음의 본체와 묘용은 둘이 아니다. 본체로서의 한마음은 공(空)한 것이기에 그로부터 묘용이 일어난다”는 대행 스님의 설명은 일심론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
혜선 스님은 한마음사상을 전통적인 일심론의 현대적 변용으로 이해하며, 그 핵심을 5공(共)에서 찾았다. 5공은 모든 생명체와 함께 하는 삶(共生), 함께하는 마음(共心), 함께하는 작용(共用), 함께하는 근원(共體), 함께 하는 나눔(共食)을 뜻한다.
이 같은 한마음사상에 근거한 대행 스님 수행법의 요체는 주인공(主人空)관법이다. 주인공관법은 “각자가 자신의 근본이며 참나인 주인공을 믿으며, 일체를 그에 맡겨 놓고 오로지 지켜보는 것”으로, △참나를 발견하는 단계 △일체가 둘이 아닌 도리를 알게 되는 단계 △일체 만물만생과 더불어 나툼을 할 수 있는 단계로 이뤄진다.
생태·생명·복지 등 관심 다양
성운 스님과 김미숙씨, 남궁선씨의 논문은 복지·생명·생태문제 등 현대사회의 문제를 불교적으로 조망했다.
우선 성운 스님은 전륜성왕으로 불리는 인도의 아쇼카왕(BC.268~232)이 추구한 불국정토에서 이상적인 복지사회의 모델을 모색했다. 성운 스님에 따르면 아쇼카왕은 ‘다르마에 의한 승리’가 진정한 승리임을 자각하고 있었으며, 현세와 내세에 있어서 일체 생명체의 이익과 안락이 그에게 있어 최고 이념이 된다. 그의 ‘다르마 정책’은 생명존중사상·연기사상·평등사상·자비사상·보시사상·관용사상·복전사상 등으로 요약된다.
성운 스님은 “아쇼카왕이 전제군주로서 백성 위에 군림하기보다 백성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자로 헌신했다”고 지적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상에 제도화한 그는 ‘불교복지의 선구자’”라고 강조했다.
김미숙씨의 논문은 불교와 더불어 대표적인 슈라마나 전통에 속하는 자이나교의 핵심교의인 불살생론을 조명했다. 불교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자이나교의 수행론과 철학적 이념 연구는 불교를 비롯한 인도종교 전통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씨는 “자이나교의 사상적 기초가 되는 불살생원리는 인간 중심주의가 아닌 모든 존재의 공존을 이상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 환경론적 관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실천원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남궁선씨는 불교의 업사상을 최근 관심이 고조된 생태철학적 관점에서 재조명했다. 남궁선씨는 현재의 생태파괴를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탐진치가 밖으로 표현된 것”으로 설명하며 “생태문제의 근원적인 해법은 마음속 탐진치를 소멸하고 자비심을 확산시키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또 “생태문제는 사유체계의 논리성보다는 실천적인 측면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개인생활의 변화와 공업의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각 스님의 논문은 ‘경전을 바탕으로 한 신앙연구’가 아닌 ‘경전 자체에 대한 신앙연구’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논문에 따르면 인도와 중국 등에서 경전은 법사리(法舍利)로 인식돼 신앙의 대상으로 존중됐으며, 한국에서도 법사리 개념이 확산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교학적 관점에서 경전을 받아들인 고구려나, 율전 수용의 실천적 관점이나 병을 낫게 하기 위한 신앙적 관점에서 경전을 받아들인 백제에서는 일찍이 경전신앙이 확인된다. 신라와 통일신라에서도 삼보 공경의 예로서 법보에 대한 헌향 기록이 발견되고, 경전을 탑과 불상에 봉안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고려시대에도 금은자(金銀字) 사경과 독경이 성행함을 알 수 있다.
정각 스님은 “불교가 전반적으로 쇠퇴한 조선시대조차도 <조상경>에 근거한 불복장 납입을 통해 불사리 개념은 존속했다”며 “전 시대를 거쳐 경전 조성 자체를 수행으로 이해하고 공경의 대상으로 삼아왔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