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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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 동안거 해제 법어
"보살의 구세행은 불교의 최종 목적지"
2월 12일(음력 1월 15일) 을유년 동안거 해제일을 앞두고 태고총림 선암사 방장 혜초스님(태고종 종정)이 2월 9일 해제법어를 발표했다.

다음은 태고총림 선암사 방장 혜초 스님의 을유년 동안거 해제 법어 전문이다.

태고총림 방장 혜초 스님.



오늘은 을유(乙酉)년 동안거(冬安居) 해제(解制)일입니다. 해제를 하고 나면 여러분 중에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만행(萬行)을 떠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산중에 그대로 머물며 하던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대들은 지난 안거 동안 무엇을 얻었습니까?
여러분은 안거기간 동안 강원에서 선방에서 부처를 찾기 위해 탁마정진(琢磨精進)을 게을리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원에서 경전 몇 줄 읽었다고 얼마나 달라졌으며, 선방에서 용맹정진 며칠 했다고 부처가 보입디까?

인간의 언어는 사물(事物)을 개념화(槪念化)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언어라는 기호(記號)로 사물을 자기인식(認識)의 울타리 안으로 가두어 놓고 모든 것을 자기 방식대로 분별(分別)하고 재단(裁斷)합니다.

또한 사람들은 선악(善惡), 미추(美醜), 호오(好惡), 친소(親疎), 흑백(黑白), 대소(大小), 고저(高低), 장단(長短) 등 양단으로 분절(分節)하여 시비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 주관적인 알음알이를 내어 사물을 재단(裁斷)하고 형량(衡量)한다 하여도 허허실실(虛虛實實)한 진여(眞如) 세계의 현묘(玄妙)하고도 청명(淸明)한 본체계(本體界)의 실상(實相)을 터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언어의 유희(遊戱)요, 물체를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그림자는 그림자일뿐 참나(眞我)는 아닙니다.
납자(衲子)들은 각자의 근기(根機)에 따라 자기의 본래 면목을 찾겠다고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만들어낸 그림자의 허상(虛像)에 집착하는 마음을 벗어 던지지 못하는 한 황권(黃卷 : 一代始敎)을 전독(轉讀)하고 천팔백 공안(公案)은 모두 타파하여도 부처와는 여전히 거리가 멉니다.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해탈(解脫)이라 하고 해탈로 인해 마음의 번뇌(煩惱)가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는 것을 열반(涅槃)이라 합니다.

열반에 든 상태를 부처(佛)라 이름하는 것은 수행자라면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수행 깨나 했다는 사람들 가운데는 종종 칭공위선(稱公僞善)하는 이가 있습니다. 반야경(般若經)에서 말하는 공(空)은 현상공(現相空)이 아니라 실상공(實相空)입니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청명(淸明)한 본체를 모르고 아무리 공을 외쳐보아도 거기에는 반야지(般若智)가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어떤 행자가 대주(大珠)선사에게 물었습니다.

“마음이 곧 부처라 했는데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부처가 아닌 것을 말해보아라.”

행자가 대답을 못하자 대주선사가 말했습니다.
“마음을 통달하면 온 세계가 부처요, 깨닫지 못하면 영원히 부처와 틀어질 것이다.”

도광(道匡)이라는 중이 대주에게 물었습니다.
“선사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도를 닦으십니까.”
“내게는 쓸 마음도 없고 닦을 도도 없다.”

도광이 따졌습니다.
“그러면 스님은 왜 날마다 대중을 모아 놓고 선(禪)을 배우고, 도를 닦으라고 전하십니까.”

“내게는 대중을 모을 만한 송곳 꽂을 땅도 없고, 말할 혀도 없는데 어떻게 남에게 전할 수 있는가.”

대주선사의 번득이는 선지(禪智)가 들여다보이는 대목입니다. 도는 누가 갖다주고 가르쳐 준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스스로 닦아 망집(妄執)과 훼작(毁作)을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에 의하면 부처님께서는 안거를 마친 제자들에게 거리에 나가 교화(敎化)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대들이여, 이제 안거를 마쳤으니 거리에 나가 교화에 힘써라. 거리에 나설 때는 혼자 가지 말고 세사람(三人)이 함께 갈지어니”라고 말입니다.
불교는 자기가 아는 것만큼 베푸는 것입니다. 부처 없는 중생을 생각할 수 없거니와 중생 없는 부처를 어디에 쓸 것입니까? 보살(菩薩)의 구세행(救世行)만이 불교가 가야할 최종 목적지임을 알아야 합니다.

曇華一朶再逢春 / 담화일타재봉춘
山僧不解數甲子 / 산승부해수갑자
無角鐵牛出巢窟 / 무각철우출소굴
荊棘荒野種功德 / 형극황야종공덕
靑山不動白雲流 / 청산불동백운류
足下溪聲催歲月 / 족하계성최세월

우담바라 한 그루가 다시 봄을 만났는데,
산에 사는 이 중은 세월 가는 줄 몰랐구나.
뿔 없는 쇠소가 산문 밖을 나섰으니,
가시밭 거친 세상 교화공덕 지으시오.
청산은 잠잠하고 백운은 흘러가는데,
발아래 시냇물소리 세월을 재촉하는구나.



김주일 기자 | jikim@buddhapia.com
2006-02-09 오후 6: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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