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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내던 시절, 가야사에 대한 글을 청탁받으면서 김수로왕의 후손이면서도 가야사를 너무나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온 김 소장의 가야사 연구에는 역사학자의 연구를 뛰어넘는 열정이 가득하다. 김해농고가 최종 학력인 그였지만 한문으로 된 역사서를 독학, 삼국유사, 고려사 등 관련 서적들을 독파하기 시작했고 김해가야문화연구회를 만들어 김해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1987년 김해향토문화연구소를 개소했고 1989년에는 가야사 국제학술대회를 최초로 개최하기도 했다.
“처음엔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다”는 김 소장은 “가야사를 연구하면 할수록 김해의 정체성은 가야사에서 찾아야한다는 확신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특히 “48년 허황후에 의해 전래된 가야불교는 김해 지역 모든 사찰의 근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앞으로 스님들을 중심으로 가야불교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설 혹은 신화적 이야기로만 치부돼던 가야사에 매달려온 김 소장이 있었기에 지금의 김해는 가야사가 시민들의 가슴 가슴에 자긍심으로 살아 꿈틀거리는 문화도시로 탈바꿈 중이다. 가야불교도 한반도에 불교가 전해진 시점을 고구려 소수림왕 전래설보다 370여년이나 앞당기며 새로운 황금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제1회 가야세계문화축전의 주제공연으로 뮤지컬 ‘가락국기’가 무대에 오르면서 김 소장의 20여년 연구와 노력은 서포터라이트를 받았다. 불교계에선 스님들과 불자들의 뜻을 모아 가야불교문화원이 완공돼 가야불교를 알리는 공간이 마련됐다.
그러나 김 소장은 아직도 가야사는 미완의 역사라고 말한다. “허황후가 백성들을 자식처럼 사랑했고 존경을 받았다는 기록을 보면서 가야사의 진정한 복원은 그 정신의 복원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기록 중심의 역사를 넘어 사회 문화 경제 전반을 관통하며 삶을 바르게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역사로 거듭나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김 소장의 바람은 역사 바로 찾기와 올바른 역사 인식에 가닿는다.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넘보고, 일본이 독도를 넘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바르게 알고 찾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는 것. 가락국기 우리말 번역과 향토사 자료집 을 발간하고 4만 3000부를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보급한 것도 그 때문이다.
'김해만을 위해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김 소장은 가야대 겸임교수,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가야세계문화축전 감사 등으로 활동하며 ‘김해전문가’로 통한다. ‘아름다움’으로 대변되는 문화로 세상을 바꾸기 위한 김 소장의 행보는 가야사를 역사교과서에 포함시키기 위한 서명운동, 가야사 관련 유물 반환 운동 등으로 더욱 더 바빠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