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대째 철원을 지켜온 토박이 농사꾼인 그는 철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특히 두루미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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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겨울만 되면 몸살을 앓는다. 철새들의 삶의 터전인 철원평야를 누비며 먹이를 챙겨주는등 보호활동을 한 지도 벌써 18년째다. 철새들을 홍보하고, 보호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아무리 바빠도 탐조객들이 요청하면 안내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농한기인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오히려 1년중 눈코 뜰새없이 가장 바쁘게 사는 때가 됐다. 그의 일과는 항상 빠듯하다. 새벽 4시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젖소의 우유를 짜고 짬을 내어 농사일을 한 뒤 아침 7시 30분이면 철새를 지키기 위해 철원평야로 출근한다. 저녁 7시에 집에 들어와 다시 우유를 짠 뒤 그날 하루 일과와 자료를 정리하면 밤 12시에 취침에 들기 일쑤다.
“탐조 망원경에 포착된 새의 눈동자를 포착해보면 그 순한 눈빛에 저절로 빨려들고, 깃털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는 그는 1999년부터 직접 찍은 철새사진으로 엽서와 달력, 책자을 제작해 일반에 보급하고 있다. 또 철새 먹이구입을 위한 사진 전시회도 서울 춘천 철원에서 다섯차례나 개최했다. 98년에는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한.일 사진전에 초대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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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는 초등학생과 초등학교교사들을 대상으로 새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넓혀주기 위해 철원 두루미학교도 열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탐조 요령과 준비물을 소개하고 철새 관련 용어를 알려주며 철새도래지 탐방을 통해 철새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이 혼자힘으로 하기에는 벅찬 일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웃들의 핀잔과 가정일을 등한시하다보니 부인과 불화도 겪었다. 하지만 변함없이 철새를 보호하는 그의 올곧은 활동과 순수한 마음을 이해한 부인 김주월(44)씨와 이웃들이 이제는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그가 철새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된 것은 1988년 2월. 집 부근인 남대천에서 죽은 오리 한 쌍을 발견해 박제로 만들어 보관하면서 부터다. 어느날 전문가로부터 박제된 오리가 백두산에만 서식한다고 알려져 있는 우리나라에서 62년만에 처음 발견된 희귀조인 호사비 오리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충격을 받았다. 항상 가까이서 보아온 철새들에 대해서 조금은 알아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철새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했고, 그중에서도 차츰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는 하얀 두루미에 관심을 갖게 됐다.
“긴 부리와 곧게 뻗은 긴 목 그리고 우아하고 날렵하게 빠진 두루미의 모습은 고고한 정신을 숭상하던 옛 선비의 자태로 여겨졌습니다. 예로부터 두루미가 천년을 산다고 ‘학’이라 하는데 실은 50~60년밖에 살지 않습니다.”
국제자원보호연맹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한 두루미는 전 세계에 걸쳐 15종 뿐인 희귀조. 이중 흰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등 여섯 종류가 우리나라를 찾아온다.
그는 1992년 2월 9일 세계적으로 희귀하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베리아 흰두루미와 캐나다 두루미를 촬영하는데 성공했다. 두루미 이외에도 작은 황조롱이 등 조류도감에도 없는 미조(未鳥) 세 종도 촬영해 세상에 알렸다.
그가 살고 있는 철원은 러시아의 시베리아와 일본 이즈미시를 경유하는 일종의 중간기착지이다. 그래서 철새도래지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해마다 11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철원평야를 찾는 겨울철새는 두루미 재두루미를 비롯해 청동오리 기러기등 30종 10만여마리. 이 중 두루미는 800마리가 월동하고 이동시기엔 4000마리까지 목격된다. 천연기념물인 두루미와 재두루미, 흑두루미가 같은 지역에서 월동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도 철원이 유일하다.
그는 올 겨울 아픔을 많이 겪고 있다. 철새들에게 첩첩산중으로 고난이 닥치기 때문이다. 12월에는 먹이가 없이 새들이 탈진해 죽기도 했다. 폭설로 저수지가 얼어 먹이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물론 최근 전 세계적으로 조류독감(AI)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되면서 부터다. 철새들이 조류독감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소식에 먹이 기탁자들과 탐조객들이 줄어들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지역민들이 힘을 합쳐 12월 31일주터 1월 8일까지 철원 두루미축제를 열었지만 일반인들을 설득하는데 역부족인 현실이다.
“새들은 높은 창공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고열로 바이러스가 거의 죽습니다. 우리나라에 온 철새들을 대상으로 바이러스 검사를 했지만 닭과 오리에 감염되는 가금 인풀루엔자(influenza)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조류독감으로 새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철새들과 공존을 모색하던 인근지역 주민들도 일반 사람들의 색안경으로 피해를 많이 봤다고 한다.
“철새들이 떠나기에 앞서 2월에 고칼로리의 먹이를 섭취해야 하는데 걱정”이라는 그는 “사람들의 옆에는 항상 새가 함께 살고 있다. 새들의 서식환경이 좋아야 사람도 살 수 있다. 살아가는 방식은 달라도 같이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철원= 김원우 기자 사진= 고영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