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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비디오아트 그리고 불교
찰나·영원 시간에 담는 작업 한평생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씨의 영정사진.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세계 미술시장에서 통하는 유일한 한국인 작가,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시도한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이 1월 30일 오전 10시경(국내시간)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 휴양지에서 74세로 일기를 마쳤다. 그의 유해는 화장된 뒤 49재를 거쳐 그가 태어나고 공부하고 활동한 한국 독일 미국 등 3국을 포함한 5~10개국에 나눠서 안치될 예정이다.

백남준의 예술세계 저변에는 불교가 흐르고 있다. 그는 비디오 아트라는 첨단 소재로 시공을 초월하는 부처님 가르침을 표현하려 애썼다. 경기문화재단의 주도로 오는 6월 착공하게 될 백남준미술관에서는 ‘TV부처’를 포함한 작품 67점과 친필 현판 등이 선보인다. 미술관은 내년 하반기에 준공돼 2008년 상반기에 개관될 예정이다.

백남준 작품 TV부처


평생 동양과 서양의 만남, 과학과 예술의 조우를 위해 일생을 바쳐온 백남준의 작품과 그 속에 녹아있는 불교관을 살펴본다.

‘TV부처’. 백남준의 가장 유명한 비디오 조각 중 하나다. 불상이 모니터와 마주하고 앉아있는 이 작품은 모니터 뒤의 카메라가 불상의 정면을 촬영해 머리와 가슴 부분이 화면에 나타나게 돼 있다. 백남준은 불상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거나 분신 또는 자신의 배경적 메타포로 선택해 자아검증을 시켰다. 불상 대신 그 자신이 카메라 앞에 자리 잡을 때도 있었다. 이때 그는 보살로 분장하고 자신과 부처를 동일시했다.

‘TV부처’가 단적으로 드러내듯 백남준의 작품은 불교적 사상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 이외에도 ‘선(禪)을 위한 TV’ ‘카르마’ ‘손부처’ ‘테크노 부처’ ‘머리를 위한 선' '영화를 위한 선’ 등 선사상을 담은 작품들을 꾸준히 작업해 왔다. 다작작가로 평가받는 백남준의 작품은 1000여점 정도 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100여점 정도가 국내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뉴욕 소호에 있는 백남준 스튜디오의 모습


백남준 스튜디오 Wall of information의 전체 모습.


그와 불교의 인연은 그의 스승인 존 케이지로부터 비롯된다. 1958년 독일 콜론 대학에서 만난 존 케이지는 백남준의 관심사를 음악에서 시각예술로 바꿨다.

현대음악의 거장 존 케이지는 1950년대에 동양철학의 선불교를 공부하면서 찰나의 개념을 그의 음악의 대주제로 도입했다. 이와함께 선(禪)을 그의 음악이론을 정립하는 도구로 이용했다. 그에게 음악은 세상으로부터 받은 인상을 지워버리는 탈세간의 불교적인 방안이었다. 케이지가 지닌 ‘찰나’의 개념은 백남준에게 이미지의 찰나적 우연성과 이미지의 찰나적 조합으로 제시된 것이다.

1963년 독일 소도시 부퍼탈에서 열린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 전시회에서 ‘선(禪)을 위한 TV(Zen for TV)’를 선보였다. 비디오아트의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되는 이 전시회에 선보인 ‘선을 위한 TV’는 ‘선(禪)’사상을 TV 모니터에 이어진 ‘선(線)’을 통해 재치있게 표현해 냈다. 제1회 리용비엔날레에서 재현하기도 한 이 작품은 TV를 조작하여 추상적인 하나의 선으로 모든 이미지를 통합시켰다. 여기서 백남준은 순간과 영원이 하나의 선으로 모니터 상에서 합일되는 것을 통해 선사상을 담았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백남준이 선보이는 시간의 개념이다.


1988년 작 손부처는 현대인의 빠쁜 일상을 담은 스크린 위로 참선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드로잉했다.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발표한 선(禪)을 위한 TV


‘손부처’는 바삐 움직이는 현대인의 영상 위로 참선하고 있는 수행자의 실루엣을 드로잉으로 표현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불교사상을 표현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과 ‘TV 시계’ 등에서는 시간의 상징인 달과 시계를 주제로 순간과 영원은 동일하다는 불교사상을 드러냈다. 이 작품은 찰나도 영원도 한 생각 속에 있다는 선을 그의 시간 개념으로 표출한 대표적인 멀티모니터 작품이다.

경주엑스포에 출품했던 백팔번뇌


해인사 성보박물관 2층에는 팔만대장경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비디오아트로 표현한 ‘고려대장경’이 있다. 당시 이 작업을 요청받은 백남준은 “첨단 정보화시대에 한국불교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훌륭한 기회”라며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1998년 경주엑스포에 출품한 ‘백팔번뇌’ 등 불교사상을 끊임없이 작품 속에 담아왔던 백남준이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단순히 비디오아트의 시조여서가 아니다. 미디어 메커니즘에 대한 선사상 등 철학적 탐구와 대중미디어의 단방향적 전달방식을 비판하며 예술적 대안을 모색했다는 점에 있다.

비디오와 부처 그리고 각종 기기를 접합시킨 백남준의 테크노붓다


탄생 죽음 같은 중요한 일은 일생에 단 한 번 일어나듯 생방송을 함으로써 인간의 일회성 삶을 표현하기도 했던 백남준. 이제 그는 가고 그의 작품만이 그가 풍미했던 세계와 사상을 담은 채 남아있다.


경기도 용인에 세워질 백남준 미술관의 조감도


백남준은
1932년 7월 20일 태창방직을 경영하던 부유한 가정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예민한 감수성과 음악적 이해로 고교 시절에 12음계를 창안한 독일의 현대 음악가 아놀드 쉔베르크에 매혹됐다. 백남준은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쉔베르크를 전공으로 미학과 현대음악을 공부했다. 1956년 현대음악의 중심지인 독일 뮌헨 음악대학에 입학한 후 미국인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를 만나 동양정신 특히 절대 허와 무를 신성화하고 모든 것에 동일한 가치를 부여하는 선불교의 핵심을 발견한다.

1996년 4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에도 2000년 1월 생방송 프로그램 ‘호랑이는 살아있다’ 2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7월 서울 호암갤러리 로댕갤러리에서 전시된 ‘백남준의 세계’ 등을 통해 끊임없는 작품활동을 해왔다.
글=강지연 기자·사진제공=경기문화재단 | jygang@buddhapia.com
2006-02-07 오후 2:50:00
 
한마디
백남준선생 작품활동에 스님 불자 개인이나 조계종, 종단협 등등 제도권 종단이 보태준건 아무것도 없으면서 단지 작품주제에 "간화선"사상이 들어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거의 황우석 수준의 "자랑스러운 불자대상 수상자"로 예우해주고 "거봐라, 역시 한국 간화선이 세계제일의 최상승 수행법 아니냐. 그러니 위빠사나 티베트수행 요가 명상 염불 주력 등등 하근기 수행법 다 때려치고 우리 간화선이나 해라" 식으로 들려서 보기가 안좋네요.
(2006-02-08 오전 11: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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