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새해 신년사에서 우리 국민에게 던진 화두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 같이 노력하자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수출 기업과 내수기업의 양극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 대기업 직원과 중소기업 직원의 양극화 등 우리 사회에는 실제로 수많은 양극화 현상이 존재한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든, 그 원인이 무엇이든,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것은 한 마디로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격차를 줄여보자는 것이다.
직설적으로 언급한 내용은 아니지만 대통령이 그 해결책으로 제시한 방법은 요약컨대 잘 사는 사람들이 내놓아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자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의 것을 내놓기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법이어서 많이 내놓게 하기 어렵고, 또 그것을 받고서 어려운 사람들이 만족할 것 같지도 않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대통령은 조금씩 양보하자고 했다.
현 정권의 경제정책 입안자들은 평소에 은근히 말해왔다. 현재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가져갈 몫을 뺏긴 것이라고…. 가난하게 된 원인으로 잘 사는 사람들이 부당하게 많이 가져갔기 때문이라는 가정을 암묵적으로 하고 있다. 분배의 형평성 문제라는 것이다. 그들은 분배에 있어 자본과 노동 사이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어서 이렇게 많은 못사는 사람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도움을 줘야할 사람과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같이 양보하자고 하지만 보시해야 할 사람들을 원망하는 듯 한 말을 해온 것이다.
그리고 그 불평등의 기원을 가까이는 제3공화국의 경제정책으로부터 멀리는 일제시대의 친일파들에게까지 소급시키고 있다. 현 정부에 의해 벌어지고 있는 과거사 청산 작업과 대기업 적대시 정책은 이러한 사고의 연장선에 다름 아니다. 과연 지금 가난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의 원인이 친일파 때문이고 제3공화국의 경제정책 때문인가. 저임금과 실업의 원인이 제3공화국의 경제 정책과 친일파 때문인가.
인간의 욕심이 존재하는 한 소유의 양극화라는 문제는 영원히 존재한다. 욕심은 경쟁을 필연적으로 잉태하기 때문이다. 경쟁 사회에서 승자와 패자는 존재하기 마련이며, 토너먼트 경기에서 우승자는 한 명일 뿐이다. 지속적으로 경쟁이 일어나는 한 승자와 패자의 양극화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정도에 따른 경쟁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경쟁에서 졌을 경우에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절대 빈곤에 대해 정부가 안전판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별개의 문제이다. 경쟁이라는 전쟁터에 뛰어든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가난은 경쟁의 패배에서 오는 당연한 업보라는 것이다. 너무나 부담스러운 말이지만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시스템과 사회와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을 원망하게 선동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보자. 양극화가 왜 문제인가를. 양극화라는 것이 돈이 없는 사람에게 약간의 돈을 쥐어주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인가를. 정말 중요한 것은 가지고 있는 돈의 양의 양극화가 아니다. 행복의 양극화가 문제이다. 고기를 줄 것이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어떻게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한단 말인가? 정부에서 기업이라도 세우겠다는 것인가? 일당 얼마짜리 공공취로사업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인가? 새로이 많은 기업이 생기고 기존의 기업이 고용을 늘릴 때 비로소 일자리는 늘어나게 된다.
가난하게 된 원인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병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했을 때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다.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누고 자본가가 착취해서 노동자들이 가난하게 되었다는 식의 시각은 곤란하고 또 틀리다.
절대 빈곤층의 25% 정도가 빈곤하게 된 원인으로 사업 실패를 들고 있다. 자신의 잘못으로 가난하게 되기도 하고 구조적인 잘못으로 가난하게 되기도 한다. 100% 자신의 잘못이거나 100% 구조적인 잘못이 문제인 경우는 별로 없다. 이런 가난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공정한 경기의 룰을 제정하고 또 그 룰이 제대로 지켜지게끔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된 원인을 그 누구에게 전가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우리 개인은 그 경기의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도록 해야 한다.
양극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자. 그리고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자.
경제적인 문제를 경제적인 방법으로만 풀려고 하면 문제가 매우 어려워진다. 가정의 해체, 더 근본적으로는 대가족 제도의 해체가 가난을 더욱 절망적인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구병진(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