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년 개띠’.
말이 필요없는 개띠의 대명사이다. 개띠는 46년 70년도 있는데 왜 유독 58년생만 ‘58년 개띠’라는 수식어가 붙는걸까. 58년 개띠는 4 ·19나 5·18 세대처럼 역사의 흐름에 주역으로 나선 적도 거의 없다. 그래서 58년 개띠는 사회에 섞이지 못해 비주류의 대명사라는 피해의식도 강하다.
그런데도 ‘58년 개띠’가 신드롬을 일으키는 원인은? 6.25 전쟁이후 생겨난 베이비붐의 절정을 이룬 띠이기 때문에 살아가기 위해 잡초같은 생명력을 지녀서일까. 아니면 사회의 비주류라는 피해및 동료의식이 강해서 였을까.
전국의 58년 개띠들을 대표하여 '58개띠' 27명이 병술년 새해를 맞아 눈물겹고 흥미진진한 삶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벌써부터 화제를 불러 일으키는 책은 화남출판사(대표 방남수)가 최근 펴낸
<58 개띠들의 이야기>.
이 책의 집필에는 가수이며 아나운서인 임백천 씨를 비롯해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 김강석 SBS 멀티미디어팀장, 김광일 조설일보 문화부장, 김상철 중앙대 교수, 이대환 포스코청암재단 이사, 서홍관 국립암센터 암예방센터 의사등이 참여했다.
특이한 점은 집필자중 유난히 임산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불교인연 깊은 사람들이 많다. 승속을 넘나든 사람들은 시인 장용철(윤이상 평화재단 사무처장) 방남수(도서출판 화남 대표) 이진영(문학과 경계사 대표) 류연복(판화가)씨 등이다. 위영란 현대불교신문 편집국장과 불교출판사인 민족사에서 근무하다 1996년 불교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박상률 숭의여대 겸임교수, 중광스님을 정신적 스승으로 모시고 살아온 임백천씨등도 함께했다.
힘들고 어려운 시대상황 속에서 살아온 58년 개띠들. 이들이 어떠한 힘과 에너지로 한 시대를 견뎌왔는가에 대한 시대적 증언속으로 들어가 보자.
장용철 사무처장은 58년 개띠의 유년시절은 “하루일과가 마을 산을 뒤져 불온 삐라를 줍는 것이었다”고 회상한다.
위영란 국장은 “고교 평준화 1세대로 이른바 뺑뺑이를 돌려서 학교를 배정받았다. 그런데 시험을 치르고 들어온 선배들은 우리와 동문회 명부 달리했다. 이때 처음 사회가 얼마나 개인을 지배할 수 있는가 나름대로 깊이 생각했었다”고 말을 이었다.
방남수씨는 “그 무렵 58년 개띠들은 하루세끼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상급학교 진학은 쉽지 않았다. 결국 공부를 위해 입산했으나 10.27법난등을 거치면서 다시 하산했다”며 “꼭 10년마다 인생이 바뀌었으니 참 곡절이 많았다”고 덧붙인다.
“박정희 대통령을 거의 절대시하던 당시는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워야 했고, 교련복을 입고 온동장에서 박박 기어야 했다”고 임백천씨가 회상하자 이진영씨도 “지독한 역마살 냄새가 난다는 58년생들은 어느 주류에도 편입되지 못한 채 존재의 확인을 위해 개처럼 헐떡이며 슬프고 힘들게 살았던 것 같다”고 화답한다.
이제는 마흔아홉. 58년 개띠도 대부분 사회의 주역이 됐다. 하지만 58년 개띠들은 아직도 치열한 삶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판화가 류연복씨는 “이제는 위로부터의 변혁이 아닌 밑으로 부터의 변화를 꿈꾸기해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한다.
박상률씨도 “지금도 늘 마루장 밑에 웅크리고 있는 개처럼 고독해진다. 하지만 어울려 살기를 꿈꾼다. 한데 어울려 잘쏘다니는 개떼처럼”이라고 독백처럼 얘기했다.
이진영씨는 “아내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머리카락이 완전히 백발인 중년은 역마살을 참지 못하고 절로 갈 생각만 한다”며 웃음지었다.
지천명(知天命, 50세에 하늘의 명을 앎)을 눈앞 둔 58년 개띠들. 비록 지난 날들이 '황량하고' ‘한없이 서럽다' 할지라도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개처럼 팔팔한 인생을 살아보길 기원해본다.
임백천외 27인
도서출판 화남|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