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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의 '꿈의 공간' 만해마을 창작집필실
3년간 150명 다녀가 … "글 절로 써져"
만해사 행자승은 스물두 살, 곱상한 얼굴에 근력이 참 세지 험한 일 꽤나 겪어봤다는 그는 디지털 행자승, 엠피쓰리 다운받아 씨디로 노랠 굽지 이어폰 귀에 꽂고 세상과 접속하지 온갖 장르 섭렵한 그의 훼이버릿 싱어는 크라잉 넛, 밤색 승복을 펄럭이며 말 달리지 하루 두 번, 영혼의 갈기털 휘날리며 말 달리지 두두두두두두두두두 행자승의 법고法鼓소리 참 예술이지 드럼 치듯 백팔 비트로 읽어가는 그의 독경소리 참 경쾌하지 크라잉 크라잉 행자승은 스물두 살, 호두알 머리 속 초고속으로 질주하는 말발굽 소리
-홍은택의 ‘행자승의 근황’.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만해마을 창작집필실의 겨울은 뜨겁다.
최장 4개월을 머물 수 있는 이곳은 문인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꿈의 시설’. 문예진흥원의 지원으로 숙식비는 모두 무료이다. 3년 동안 150여명의 문인들이 거쳐 갔다.

문인들이 모여 집필을 할 수 있는 공간은 만해마을의 창작집필실과 소설가 박경리씨가 운영하는 토지문화관의 집필실 단 두 곳이다. 만해마을이 문인들에게만 개방하는 것과 달리 토지문화관은 문인뿐 아니라 예술인 학자들에게도 시설을 제공한다.



현재 만해마을 창작집필실에서는 김민기(희곡작가) 박찬 홍은택 이윤설 박찬일(이상 시인) 김병용 윤동수 정찬(이상 소설가) 평론가 오창은 권혁웅씨 등이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다.

“세 끼 밥이 맛있고 숙박시설이 황홀해. 기자 양반은 여기 김치 먹어봤어? 환상이야.”

소설가 윤동수씨는 만해마을 창작집필실에 머물면서 좋은 점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먹거리 얘기부터 꺼냈다.

“배고파야 글을 더 잘 쓸 텐데 너무 잘 먹는 것 같다”며 박찬 시인도 먹거리 예찬에 동참한다. 여기저기서 밥이 맛있어서 살이 쪘다는 둥 계속 여기서 살고 싶다는 둥 이렇게 좋은 곳이 없다는 둥 행복한 비명들이 들려온다.

먹고 자고 쓰고 세 가지만 하면 되기에 다른 어느 곳보다 글이 잘 써진다는 홍은택 시인은 3~4일에 한 번씩 입주한 동료문인들과 문학과 인생, 경험담 등을 논하는 시간이 참 중요하다고 말한다. 살아온 내력이 줄줄이 따라 나오는데다가 술을 마시면서 상상력은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동안 가슴 속에 챙겨놓았던 작품 구상을 꺼내 공유하고 그리고 검증하는 과정도 이루어진다.

지금 입주해 있는 열 사람의 문인 가운데 유일하게 두 번째 입실의 영광을 안은 재수생(?)이라는 홍 시인은 만해마을 창작집필실을 행복한 공간이라고 정의한다. “심심해서라도 글을 쓰게 돼. 풍광 좋지, 생활 걱정 안 해도 되지, 술동무 있지. 집필실서 머물다 나간 이들 중에는 책 내는 이들도 많아.”

문예지에 발표할 소설을 준비 중이라는 정찬 소설가는 “12선녀탕 계곡이 워낙 좋아서 등산 삼아 운동 삼아 산책을 즐기며 건강을 챙긴다”며 주변 풍광의 매력을 설명한다. 그만의 건강비법인 줄 알았더니 12선녀탕 가는 길은 만해마을 창작집필실 식구들이 즐겨찾는 코스였다.

1월 4~16일 창작집필실에 머문 황지우 시인의 흔적은 홍은택 시인의 머리 위에서 찾을 수 있었다. “황지우 시인의 모자를 빌려썼는데 내 평생 이렇게 맞는 모자를 발견한 것은 처음이야. 황 시인이 흔쾌히 모자를 주셔서 내가 가졌지.”

창작집필실에는 비밀이 없다. 방마다 열린 창문 밖으로 모든 대화들이 숨김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때맞춰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윤동주 소설가가 등장한다. 박찬일 시인은 “어떻게 착하게만 살겠냐”며 단번에 반박을 한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 간의 진한 애정이 느껴진다.



24시간 라디오를 가족 삼아 살았다는 윤동주 소설가는 “라디오를 버리고 여기 오니까 생활이 달라져서 로비에서 틀어주는 음악을 들으며 작업을 하고 있다”며 “가끔 친구들이 위문을 오면 같이 하루 놀기도 한다”고 고백한다. “살아서 천국을 보는 것 같다”는 윤동주 소설가는 이곳에서 장편 소설을 집필 중이다.

10년째 물들여온 초록색 앞머리를 보여주며 “내 안에 초록 있다”를 외치는 박찬 시인은 “여기 있는 동안 술을 끊고 차로 연명하고 있다”며 “서울서 일주일을 붙잡고 있어도 다 읽을까 말까한 책을 하루 이틀에 다 읽어버릴 정도로 집중이 잘 된다”고 밝힌다.

시작(詩作)거리를 들고 들어왔다는 박찬일 시인은 “내가 만해마을과 인연이 깊어서 2박3일 일정으로는 자주 왔었다”며 “만해마을이 생기기 전에는 요 앞 민박에서 겨울을 나기도 했는데 만해마을로 들어와 너무 행복하다”며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오창은 평론가는 “문예지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인데 편집회의 하러 서울 올라가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이곳이 좋다”며 이곳에 머무는 문인들 모두 떠나기 싫어한다고 전한다.

새벽 5시와 저녁 7시, 만해마을에 울리는 범종ㆍ법고 소리는 집필실 식구들에게 평온의 소리이다. 김민기 희곡작가, 정찬 소설가, 이윤설 시인 등은 매일 아침 예불에 꼬박꼬박 참석한다. 70년대를 풍미한 포크음악의 대부이자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연출가 김민기 희곡작가와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돼 시상식 참석차 서울에 간 이윤설 시인은 만나지 못했다.

만해마을 창작집필실 식구들은 “알게 모르게 불교에 젖어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공간이자 시든 소설이든 그 결과물을 보다 더 훌륭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마법의 공간”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가지 덧붙여 이곳 식구들은 사찰에서도 문인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문인들에게 사찰이 문을 열어주면 사찰과 불교를 소재로 글을 쓰게 될 것이고 넓은 의미로 포교도 된다는 것이다.

머물고 있는 문인들에게 최대 찬사를 받는 만해마을 창작집필실. 그 찬사에 걸맞게 입방 경쟁도 치열하다. 대기 중인 문인들도 많다. “오세영 시인은 지난해 열흘 남짓 만해마을 창작집필실에서 머물렀던 기억이 좋아 2월 1일 재입방을 예약해 놓았고 박남원 시인, 이문재 시인, 박기동 시인, 박선욱 시인 등도 줄줄이 입방 예정”이라는 만해마을 운영위원장 이상국 시인은 “만해 스님의 문학적 열정과 민족애를 잇는 만해학파들의 보금자리”라고 은근한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 만해마을 방명록에 남아있는 문인들의 흔적

-시인 박찬일
무서운 춤
북방한계선 남방한계선
넘실넘실 넘나드는
거대한 동해바닷물

-시인 이윤설
별 참 밝고
나 참 밝아요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는다

-시인 오세영
늘 푸른 시 정신
만해 정신

-소설가 이인휘
시대정신
작가정신
늘 겸손하고
정직하게

-평론가 권혁웅
눈 온 날 신난 권혁웅 ^^

-소설가 윤동수
‘세계의 추억에 사로잡힌 방문객’,
그 첫걸음을 만해마을에서 내딛다,
그리고 사랑하다.
인제 글=강지연 사진=박재완 기자 | jygang@buddhapia.com
2006-01-30 오후 7: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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