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꺼린다. 남의 일 같기도 하고, 내게는 멀고도 먼 훗날의 일로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것이 사람일이고 보면, 간과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죽음을 대비할수록 삶은 더욱 윤택해진다는 것이 죽음의 문제를 연구하는 이들의 의견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불교계 대중학술지 <불교평론>는 2005년 겨울호의 특집 주제를 ‘웰빙 시대의 잘 죽기’로 정했다. 특집논문으로 안양규 동국대 교수의 ‘붓다의 죽음’, 김영욱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의 ‘선사들의 죽음과 열반’, 이찬수 강남대 교수의 ‘부활, 웰다잉의 한 해석’, 강신표 인제대 명예교수의 ‘죽음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생각’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의 ‘근사체험이란 무엇인가’의 5편과 총괄논문격으로 오진탁 한림대 교수의 ‘웰빙 시대에 왜 웰다잉을 말하는가’ 등 6편이 수록됐다.
죽음준비는 삶의 교육
일찍이 죽음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한림대 오진탁 교수는 “웰빙의 참뜻은 웰다잉에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잘’ 살았다 해도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지 못했다면 잘살았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것. 하지만 죽음을 기피하고, 남의 문제로만 인식하다보니 잘 죽기 위한 체계적인 준비를 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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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 병실에서 차가운 의료기계에 둘러싸여 튜브를 몸에 꽂은 채로 죽음을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족들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하며 품위 있게 죽는 것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평소에 죽음을 생각하고 미리 준비하며 살기란 더더욱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오 교수는 “암이나 자동차 사고에 대비해서 보험을 들거나 노후를 위해 연금을 붓지만 정작 중요한 죽음준비는 남의 일인 양 전혀 하지 않고 있다”며 역설적인 세태를 비판했다.
오 교수에 따르면 죽음준비는 삶의 유한성을 자각케 해, 현재 삶을 더욱 의미 있게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내가 언제라도 죽을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되면, 하찮은 활동과 사소한 관심거리로 소일하기보다는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자신에 물음을 던지며 살게 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죽음준비는 제대로 살기 위한 삶의 교육”이다.
'불방일'로 죽음 맞은 붓다
그렇다면 삶의 진면목을 깨쳤을 붓다나 선사들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안양규 교수와 김영욱 연구원의 논문이 해답을 준다.
안양규 교수는 <열반경>에 나타나는 붓다의 죽음을 살폈다. <열반경>에는 붓다가 열반에 들기 전 세상에서의 마지막 가르침과 입멸 과정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이에 따르면 붓다는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제행(諸行)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가르침을 남긴 후 열반하는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열반에 이르는 과정이다. 열반경에서 붓다의 입멸 과정은 정각의 순간과도 같이 선정과 밀접히 연계된 것으로 그려진다. 즉 붓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깨어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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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붓다의 모습에 대해 안 교수는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붓다의 태도는 한마디로 ‘깨어있음’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사람들은 육신의 죽음을 대하면서 두려워하거나 애통해하지만 붓다는 무상한 육신 너머에 있는 열반을 추구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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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선사들의 죽음은 어떨까. 김영욱 연구원은 “선사들은 죽는 바로 그 순간을 삶의 한 형식으로 수용할 뿐 죽음에 대한 추상적 관념이나 그것을 극복하는 고답적 이야기는 늘어놓지 않는다”고 말한다. 죽음을 질곡이나 해방으로 여기지 않는 선사들은 “그것에서 자유롭기 위해 별다른 시도를 하지 않으며, 화두를 놓치지 않듯 죽음의 순간까지 학인을 가르치고 점검하는 등 본분사를 주고받는 일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부활과 열반
기독교에서는 웰다잉의 한 전형으로 부활을 꼽을 수 있다. 이찬수 교수는 부활을 통해 예수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갔다는 점을 들어 부활을 단순한 소생과는 구별했다. 이 교수는 “부활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영원한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뤄진 생명의 사건이 볼 수 있는 것”이라며 “부활은 역사적 인물 예수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듯 우리의 몸도 다시 살게 되리라는 희망의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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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 교수는 부활과 열반을 비교했다. 이 교수는 “인과의 고통스러운 순환 고리를 끊어버린 데서 오는 안식으로서의 열반과 영생을 향하는 인생의 궁극적인 상태로서의 부활은 공통된 면이 있다”고 밝혔다.
<불교평론>에 실린 강신표 교수와 최준식 교수의 논문은 각각 우리 문화 속에서의 죽음과 근사(近死)체험을 다뤘다. 강 교수는 세상을 떠난 후의 상례(喪禮)와 제례 전통을 보여줌으로써 죽음의 의미를 살폈고, 최 교수는 서양에서 조사·연구된 의 근사체험 사례를 제시하면서 근사체험의 진실성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