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 종합 > 기획·연재
다시 보는 만봉스님의 가르침
[큰스님편안하십니까] 단청장 만봉 스님 "뭐든 잔꾀 부리지 말고 해야 결실"
단청장 만봉(萬奉) 스님. 올해 97세가 된 스님은 여전히 손 떨림 하나 없이 탱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숨을 고르면서 보여주는 붓놀림이 섬세하면서 예사롭지 않다.

1999년에 만나 뵈었을 때도 작업에 여념 없었던 만봉 스님은 지난 7년이란 시간을 한 걸음에 뛰어 넘은 듯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그림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97세라는 나이에도 안경도 안 쓰고 신문을 보는 모습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단청장 만봉 스님이 한치의 흔들림 없이 작업에 임하고 있다


요즘 스님은 석가모니불 상단탱화를 그리고 있다. 밀려드는 작업 요청에 잠시도 쉴 틈이 없던 스님은 기자의 방문에 마지못해 붓을 놓았다. 3명의 제자들과 함께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작업을 한다는 스님은 밑그림인 초(抄)에서부터 부처님 상호에 이르기까지 제자들을 독려하며 전 과정을 손수 그리고 있었다. 특히 20여명에 달하는 불ㆍ보살ㆍ신중의 얼굴은 스님 몫이다.

“예전보다야 힘들지. 생기나면 작업을 참 열심히 해. 붓을 쥘 수 없는 정도로 몸 상태가 나쁜 날도 있지. 일할게 많은데 건강이 내 마음 같지 않아서 안타까워.”

만봉 스님의 미소는 보살의 그것이다


스님의 하루는 아침 6시에 시작된다. 늦게 잠자리에 들 때도 있지만 일어나는 시간은 항상 일정하다. 6시에 일어나서 아침공양을 한 스님은 뉴스와 신문을 꼼꼼히 살펴본다. 제자들이 ‘뉴스마니아’라고 부를 정도로 스님은 뉴스를 좋아한다. 시사적인 문제들도, 우리 이웃의 가슴 아픈 사연들도 스님에게는 큰 관심사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같이 놀라고 같이 걱정하는 보살의 마음 그대로 스님은 뉴스를 접하고 있는 듯 했다.

오전 10시. 스님의 화실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작업 열기가 피어오른다. 붓끝에서 살아나는 불보살들의 세계. 색색의 화려함이 밑그림 위를 덮어나간다. 한번 작업을 시작하면 내리 두 시간은 ‘초인적’으로 몰두 한다. 간혹 제자들의 질문이 날아들면 하던 작업을 멈추고 몸소 시연까지 보여주며 지도 해준다. 꼼꼼하게 제자들의 미진한 점들을 지적하는 스님은 자못 엄하다. 그렇게 엄한 스님도 쉬는 시간에는 특유의 유머러스함으로 제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한번 작업에 들어가면 젊은이 못지 않은 집중력을 보이는 만봉 스님


오전 작업 후 잠시의 휴식과 함께 점심 공양을 하고 나면 1시 30분부터 다시 작업에 들어간다. 스님의 작업은 2시간 단위로 이루어진다. 3시 30분경 다담 시간으로 한숨 돌리면 다시 6시까지 붓을 든다.

“부처님 그리는 것은 한두 번 그린다고 해서 될 것이 아니야. 재주 있는 사람은 2~3년 하고 더 진득하니 작업하지 않고 가버리지. 자꾸만 그리면서 익숙해져야 해. 여러 장 그린다고 되는 게 아니고 수천 장씩 그려야지.”

스님은 인내하고 또 인내해야 할 수 있는 작업이 바로 탱화임을 강조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쉽게 싫증낸다며 스님은 “그림 그리는 마음은 공부하는 마음으로 해야 해. 참지 못하고 장사꾼처럼 굴면 안돼”라고 말한다.

숨소리 하나 흐트러짐 없이 똑같은 자세로 작업을 하기에 얼마 전에는 엉덩이에 종기가 생겼다. 그나마 처음엔 제자들조차 알지 못했다. 작업에 방해된다고 스님이 아픈 것을 숨겼던 것이다. 지난해 12월 스님이 아픔을 토로했을 때는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다. 고령인 스님에게 수술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의료진의 판단으로 약물치료를 했다. 보름 이상 입원치료를 받는 동안 스님은 매일 하는 관음 기도를 했다.

만봉 스님이 요즘 하는 작업은 석가모니불 상단탱화이다


“요즘 관세음보살도를 그려달라는 불자들이 많아. 참 좋은 일이야. 직접 모시고 열심히 기도하면 요즘같이 힘든 때 안 되는 일이 뭐가 있겠어.” 스님은 틈만 나면 염주를 돌리며 관세음보살을 왼다.

요즘 스님은 신선도를 많이 그리신다. 제자들로부터 “우리 스님 신선 되시려고 그런다”는 농담반 진담반의 말을 들으면서도 말이다. 올 가을 즈음엔 작업한 불화들을 가지고 전시회도 계획 중이다. “매년 전시회는 빼놓지 않고 하고 싶어. 지난해에 작업한 것들도 있고 한 70여 점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 날짜랑 장소가 정해지지를 않았어. 꼭 해야지.” 스님은 밀려오는 작업요청 속에서도 개인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다.

석가모니불 상단탱화 작업 중에 잠시 카메라에 포즈를 잡아주는 만봉 스님


스님이 제자들에게 하는 가장 으뜸 가르침은 무엇일까? “곰같이 느긋해야 탱화할 수 있다는 거지. 잔재주 많은 토끼는 탱화를 할 수 없어.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든데.” 스님은 제자들이 잔재주나 부리는 토끼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제자들에게 곰이 되기를 가르친다.

스님에게 불모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꿈꿔본 적은 없는지 물었다. “다른 것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어. 이 길이 아닌 다른 무엇을 해보고 싶은 것도 없었고. 한눈팔지 말고 초지일관 밀고 나가야해. 불자들도 믿고 노력하고 꾸준히 신행해야지. 개인 생활도 마찬가지야. 한 길 묵묵히 하면 거기서 우주의 진리도 보이는 거야. 옳은 일 열심히 해야 해.” 스님은 어떤 방법의 수행도 성불로 가는 길이라는 데서는 둘이 아니라며 꾸준히 정진하는 삶을 거듭 강조했다.


"어떤 마음으로 작업을 하세요?"
"아무 생각 없어, 그냥 그리는 거지."


만봉스님은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나 1916년 봉원사로 출가한 스님은 여덟 살 때 금어 예운 스님의 제자가 돼 단청과 인연을 맺었다. 1924년 불교전문강원을 수료하고 1926년 금어 자격을 취득했다. 1972년 중요무형문화제 제48호 단청장이 된 이래 태고종 서울교구 종무원장, 봉원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등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1998년 은관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90세가 넘는 고령에도 끊임없는 불화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스님은 2004년 불국사 석굴암의 의뢰로 가로 2m 세로 7m 크기의 괘불 작업을 하기도 했다.


만봉 스님의 가르침

하루 종일 화실에서 불화에 매달려 사는 탓에 불자들을 직접 만나는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 법문 같은 것도 할 일이 별로 없어요. 깨달음이니 화두니 하는 것보다는 그저 나한테 주어진 그림을 잘 그리려 애쓰면서 살고 있습니다.

만봉 스님의 작업은 3명의 제자와 함께 진행된다


요즘 나이가 들고 보니 몸이 아픈 날이 많아요. 지난해에는 특히 몸이 안 좋았지요. 거동도 거의 하지 못할 정도로 아팠습니다. 그렇게 아프던 와중에 어느 날 꿈을 꿨어요. 6척 장신의 여자가 찾아와서 병을 내밀며 약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 약을 받아 마시고 꿈에서 깨어났는데 몸이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몸이 참 개운하더군요. 저는 꿈에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것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리 쉽게 털고 일어났겠습니까?

저는 그림 그리는 시간 외에는 관세음보살을 염송합니다. 관세음보살은 자비와 가피를 베풀어주는 보살이에요. 인간의 고통을 항상 살펴주고 고통으로부터 구해주는 보살이기도 하지요. 요즘같이 어려운 때에 불자 여러분들은 관세음보살을 외우세요. 항상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는 탱화를 그릴 때 관세음보살도를 많이 그립니다. 불자들이 관세음보살도를 보면서 외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죠.

만봉 스님이 작업 중에 사용하는 각종 도료와 붓들


단청과 불화는 신심이 밑바탕이 된 정성이 제일입니다. 불화나 단청 작업을 하는 동안 늘 부처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우리 불자들 역시 불화를 많이 보면 언제나 부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옛 불화나 단청을 보세요. 세월 때문에 빛은 바랬어도 며칠 전에 그린 듯 생생한 기가 살아있습니다. 그러한 기운은 지극한 신심으로 작업을 했다는 뜻입니다. 혼이 배이지 않으면 아무리 잘 그렸어도 죽은 그림일 뿐입니다.

혼이 배이게 그림을 그리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신심입니다. 그리고 신심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노력이 바로 수행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합니다. 불자는 생활하는 모든 것이 다 수행입니다. 곳곳에서 보여주는 불자들의 지극한 신심과 노력이 이 세상을 부처님 세상으로 만드는 겁니다.

스님의 평상복은 회색 내복


요새는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려운 시절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그만한 노력을 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성공한 이들은 다 그들이 노력한 대가를 받은 것이지 하늘에서 갑자기 부와 명예가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 부와 명예를 얻은 사람을 부러워만 하는 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신도 그런 노력을 기울이면 그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와 명예는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없어요. 또 그것이 사람의 심성을 그릇되게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노력을 끝까지 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노력은 끝이 없습니다. 이 생에서 그 결과를 볼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무슨 일이건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제게도 도움을 청하는 이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자신이 노력하지 않고 도움을 바라는 이들은 도와주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야 합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면 허망하게 두 손 사이로 빠져나갑니다.

제 일을 예로 들어볼까요? 금어들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공덕을 짓는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많이 벌겠다는 헛된 욕심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탱화 하나 멋지게 작업해서 이름을 남기겠다는 욕심으로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금어로서 어떤 불사에 동참하여 맡은 바 일을 하는 것 그 자체를 공덕으로 여깁니다. 신심으로 정성껏 작업한 그 작품을 누군가 보고 발심할 것이니 남의 환희심을 자아내게 하는 것도 큰 공덕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 절에 와서 단청이나 회상도를 보고 그냥 지나칠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알아보고 장엄스런 부처님 세계를 엿보는 것도 불자의 도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청이나 불화 그리는 일도 치열한 수행입니다. 수천 번의 초를 그리고 그 필력을 스스로 자유자재로 다스리는 경지에 올라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일은 이론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계산으로 하는 것도 아니며 일이라 여기며 하는 것도 아니란 겁니다. 열심히 꾸준히 의심 없이 잔꾀부리지 않고 해나가야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에도 꼭 들어맞는 이치입니다.

크건 작건 따질 필요도 없이 오로지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부질없는 계산은 털어버리고 스스로의 행업을 가식으로 타락시키지 않도록 언행일치를 해 끊임없이 실천해야 합니다.

요새 자꾸 부실공사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것도 다 ‘일을 한다’는 세속적인 마음으로 공사를 마구 해 온 업보인 것입니다. 어떻게든 공사를 맡아서 많은 댓가를 받고 빨리 해치우면 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다가 발생된 하자가 있으면 그걸 뇌물로 해결해 버리니까 더 큰 문제고요.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귀한 생명을 앗아가는 대형사고가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을 죽이는 것입니다. 일체의 중생이 다 부처될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세상의 문명이 점점 발달해 가는 것은 매일매일 느끼지만 그만큼이나 나약해지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욕심만 머리에 가득 채우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발심이 아무리 장해도 행이 따라 주지 않으면 그 발심은 욕심이 되어버리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갑니다. 불자들은 절에서 불법을 만났으니 기복할 것이 아니라 무량의 선업을 닦을 인연이 생겨나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수행하고 신심을 다져야 할 것입니다.
정리=강지연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jygang@buddhapia.com
2006-01-26 오후 6:30:00
 
한마디
닉네임  
보안문자   보안문자입력   
  (보안문자를 입력하셔야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내용입력
  0Byte / 200Byte (한글100자, 영문 200자)  

 
   
   
   
2024. 11.2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