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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서 연꽃이 피네!
[부처님오신날 D-100]연등 제작 현장을 찾아서
매년 이 맘 때가 되면 사찰의 대중방은 연잎을 풀어놓고 부처님오신날 내걸 연등을 만드는 손길로 분주했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가릴 것 없이 연잎을 마는 풍경은 소담하게 그려낸 한 폭의 그림 같다. 알록달록 물들은 손끝에서 느껴지던 신심….

하지만 옹기종기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던 그 모습은 이젠 가슴 속 깊이 차곡차곡 담아두어야 할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절의 규모가 커지거나 신도수가 늘어 불자들이 손수 만들던 연등으로는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 보다 전문화되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공장에서 만든 연등으로 대체되고 있다.

찬덕연등 임직원.

1월 17일, 경기도 하남에 위치한 찬덕연등(대표 김기찬)의 공장은 사찰에 납품할 연등을 만드는 손길이 분주하다. 몇 안되는 연등제작 회사이지만 이 또한 직원이 10여명에 불과한 소규모 반자동화공장이다. 이들에게는 1월부터 光낫篤음킬??앞둔 4월까지가 가장 바쁜 시기다.

10여 평 규모의 허름한 벽돌공장, 그 속에서 선홍색과 노란색 등 다섯 가지 색을 띤 연잎을 차례로 등통에 붙이는 보살들의 손놀림이 신기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도 한사람이 하루에 만들 수 있는 연등은 60여개에 불과하다.

원단을 연잎 크기로 자르는 재단 과정

분업 형태로 이뤄지는 연등제작 과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어 진행된다. 가장 먼저 연잎으로 사용되는 원단을 재단하고, 이를 연잎모양으로 주름을 주는 형합 과정을 거친다. 형합기계는 두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3년 만에 개발된 찬덕연등만의 특허 제품. 형합기계에서 만들어진 연잎을 외부에서 주문 제작된 플라스틱 등통에 붙이는 조립·포장 과정을 거쳐 비로소 연등으로 탄생한다.

플라스틱 등통은 등살에 한지를 발라야하는 전통등의 제작과정을 간단한 사출로 간소화시킨 대표적인 산물이다. 불을 밝힐 수 있는 소켓을 제작하는 과정과 수백 개의 연등을 한꺼번에 매다는 프레임을 제작하는 과정까지 포함하면 모두 다섯 가지 일손이 필요하다.
등틀에 연잎을 붙이는 조립 과정

이처럼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찬덕연등의 생산라인은 비교적 조촐하다. 원단 재단 공간과 형합 공간, 조립공간으로 구분돼 있지만, 여전히 가내수공업의 틀을 벗지 못했다. 연등을 만드는 여타의 공장도 찬덕연등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런 점이 오히려 편안한 분위기를 이끌어 내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전체 직원이 둘러 앉아 직접 밥을 지어 점심을 먹는 모습에서는 가족에게서 느낄 수 있는 푸근함이 전해진다.

14년 전 연등 개발을 생업으로 삼으면서 아내의 고생길이 열렸다는 김기찬(46·송광) 찬덕연등 대표. 하루 종일 새로운 연등을 개발하기 위해 온 신경을 쏟는 그는 주변사람들로부터 연등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열정적이다. 사월초파일이 되면 집집마다 연등을 내걸던 전통을 되살리는 것이 김대표의 꿈이다. 그래서 그는 연등에 미쳤다.

연등을 내걸 프레임을 제작하는 모습

찬덕연등과 같은 공장에서 제작된 연등이 처음 선 보인 때는 그리 오래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기껏해야 30여 년 전의 일이다. 이 때만 해도 손으로 만든 연등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비닐등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팔모등, 육각등, 연꽃등, 유등 등 다양한 색상과 모양을 한 제2세대 등이 만들어지고 있다.


◇중국산 비닐등 우리 절 장악

길거리나 야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닐등은 연등 가운데 수요가 가장 많은 품목이다. 저렴한 가격과 여러 해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이점을 가진 비닐등이 ‘정성’을 중요시하는 스님과 불자들의 정서를 이긴 셈이다. 편리와 경제성을 추구하는 것은 절집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즘 우리가 접하는 비닐등은 국내산이 아닌 중국산이다. 이미 오래전 국내에서는 생산이 중단돼 연등 1세대 국산시대를 마감했다. 가격 면에서 국내에서 생산된 연등은 중국에서 수입된 연등과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격에서 경쟁이 되지 않는 주된 이유는 인건비에 있다. 화공약품에서 나는 독한 냄새를 하루 종일 맡아야 하는 열악한 근무조건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없어 인건비가 과도하게 지출된다. 국내 인건비로는 중국에서 생산된 연등의 원가와 유통비를 합한 금액을 감당해내지 못한다.

궁인창 찬덕연등 이사는 “살가운 맛이 떨어지고 시각적 효과를 크게 내지 못하는 비닐등을 포교용으로 거리에 내거는 일은 이제 지양해야할 문화”라며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연등을 걸어 불교문화가 대중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연등 관심고조, 제작법 배울 수 있는 곳은

기록으로 남아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등행사는 신라 진흥왕 때이다. 연등축제가 현재처럼 사월초파일로 정착된 것은 고려 중엽 무렵으로 <고려사>에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관 주도의 연등행사는 자취를 감추고 민간에 의한 연등제가 행해지다가 일제 강점시대에 들어서면서 전통등 문화는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최근 전통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맥이 끊어진 전통등을 복원하려는 노력도 다각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이로 인해 다양한 모양의 전통등들이 다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997년 당시 조계종 문화부장이던 지현 스님(봉화 청량사 주지)이 초파일 연등축제를 한국 전통의 연등축제로 복원해보자며 동국대학 미술대 출신 젊은 작가들에게 연구를 의뢰한 것을 계기로 전통등연구회가 발족했다.

이에 힘입어 98년 수박등ㆍ종(鐘)등ㆍ목어등ㆍ코끼리등 등 20여 점의 전통등을 선보였던 전통등연구회는 이후 시연회와 공예전을 수차례 개최했으며, ‘전통등 전승공방’을 통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전통등 제작 강좌를 진행하는 등 우리 등 문화를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02)723-0306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회 역시 올해로 6회째 봉축 장엄등 제작 강습회를 열어 전통등 보급에 힘쓰고 있다. (02)2011-1747
하남/글=박봉영·이은비 기자·사진=박재완 기자 |
2006-01-20 오후 4: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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