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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이 책이 번역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양이 방대하고 고대불교 전반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갖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내용이 준 백과사전과 같은 것이어서 엄두 내지 못했었습니다.”
불교연구역사에 있어 한 시대의 획을 긋는 기념비적인 저술로 평가받는 에띠엔 라모뜨(1903-1983)의 <인도불교사>(histoire du bouddhismeindien). 붓다의 생애, 초기불교 교리, 교단의 조직, 성전의 성립과 발달, 불교의 언어, 부파의 기원, 전도와 전파, 아비다르마의 발전, 조각과 건축, 유적의 발굴, 문헌학, 금석학, 고전학등 고대 인도불교의 모든 분야를 섭렵하고 있다. 지역도 인도 서북부인 카슈미르와 간다라, 스리랑카의 불교 역사까지 포괄하고 있고 자료도 그리스와 라틴, 중앙아시아, 중국, 티베트의 자료까지 총 망라한 만큼 불교연구의 이정표로 불리운다.
저자인 에띠엔 라모뜨가 1949년부터 10여년에 걸쳐 저술한 <인도불교사>를 8년만에 완간한 호진 스님(기림사 동암, 前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은 한마디로 ‘무거운 짐을 벗었다’라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스님이 <인도불교사>를 접한 것은 1978년 1월 이었다. 스님은 그때의 기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 이후 이 책은 초기불교와 부파불교를 연구하는 스님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또 이책이 한글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정작 <인도불교사>의 번역을 작심한 것은 출판사인 시공사 집요한 요청때문 이었다.
“출판사의 제의를 받고 망설였지만 <인도불교사>를 한국어로 출판하는데 있어 만나기 어려운 기회라 생각하고 용기를 내었습니다. 1996년 11월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다음해 3월초부터 4년을 목표로 번역을 시작했는데 8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스님은 “8년 이란 세월은 인고와 보람의 세월이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것이 1976년 출판된 2쇄본을 텍스트로 총 14번을 읽은 뒤 번역했고, 1988년에 나온 영역본을 대조하는등 꼼꼼하게 작업했다. 특히 본문에 나오는 한문 원전의 내용을 대부분 직접 확인하여 스님이 (*)로 표시하고 주(註)를 새로 달기도 했다. 인도 서북지방의 그리스식 고유명사들은 영어식 발음으로 표기했다. 예를들어 그리스어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불어 알렉산드르(alexander)로 한것과 같은 것이다. 역시 산스크리트의 ‘v' 발음은 ‘ㅂ'으로 표기해 ‘Nirv a’를 ‘니르와나’라고 하는대신 우리에게 익숙한 ‘니르바나’로 썼다.
또 사진도 대부분 스님이 직접 찍은 최근의 것으로 바꾸거나 상태가 좋지 않는 것은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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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진 스님은 “라모뜨의 <인도불교사>가 출판된 지 거의 반세기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양과 질, 내용면에서 이 책을 능가할 고대 인도불교 역사서는 나오지 않았다”며 “이 책이 많은 불교연구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간된 <인도불교사>에는 초기불교부터 대승불교가 일어나기 이전까지 기술돼 있다. 책의 구성은 제 1장 붓다시대의 인도, 제 2장 마가다 시대, 제 3장 마우리야 시대, 제 4장 슝가왕조와 야바나 왕조 시대, 제 5장 샤까-빠흘라바 시대, 제 6장 부파불교, 제 7장 불교라는 종교 순으로 되어 있다.
호진 스님은 특히 눈여겨볼 대목으로 제 1장 부처님 시대의 역사와 초기 교단성립과 교리 그리고 제 2장 불교성전이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제 6장 부파불교가 어떻게 형성 되었는지에 대한 부분을 꼽았다.
원 저자인 에띠엔 라모뜨는 벨기에 디낭에서 태어나 고향인 노트르담 드벨뷔대학에서그리스라틴고전을 연구한 뒤 가톨릭 사제가 됐다. 그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불교학자로 꼽히던 루이드라 발레뿌생과 실벨 레비의 제자가 되어 불교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벨기에 루벵대학에서 45년간 인도 및 불교학을 가르치며 불교연구에 전념했다. 라모뜨는 프랑스의 소르본느에서 산스크리트학과 고고학을 연구하며 간다라 불교미술 연구의 선구자가 된 알프레드 푸쉐 교수가 별세하기 며칠전 ‘인도불교사를 다시 써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당시 인도불교사는 6권 정도가 있었지만 모두 입문서나 개론서 수준을 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의 새로운 필사본 발견과 중국과 티베트의 자료들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 금석문들의 발견과 고고학적 발견물들로 인해 인도 역사에 대한 정보가 증가된다. 라모뜨는 이 새로운 자료들을 근거로 불교역사를 다시 써야 할때가 되었음을 직감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인도 불교사>다.
스리랑카 시리 깔야니승가회로부터 ‘불교성정의 전문가’란 칭호와 함께 라니야대학 명예박사사 학위까지 받은 라모뜨는 <해밀심경>(1936), 바수반두의 <대승성업론>(1936), 아상가의 <섭대승론>(1938~39), <유마경>(1962), <수능엄삼매경>(1965)도 프랑스어로 번역했다. 특히 니가르주나의 <대지도론> 번역은 서구의 불교학자들이 이룩한 업적 가운데 가장 위대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그 논서의 연구와 번역을 1944년 시작해 1983년 세상을 떠나기 3년전인 1980년까지 총 36년간 진행했다. 반생을 바친 셈이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가톨릭 사제의 신분으로 남아있었으며, 말년에는 고위 성직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