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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바퀴 굴리는 재미에 나이를 잊었죠!”
[도반의향기]폐지 모아 나눔실천 김순태 할아버지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이 있다. 주위 사람을 살피고 또 돕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경제적,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한다.

김순태 할아버지가 박스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박재완 기자
그러나 예외도 있다. 김순태(84ㆍ서울 광진구 중곡3동) 할아버지는 가진 게 없어서 남돕는 일을 더 열심히 한다.

김 할아버지는 14년째 파지와 고물 등을 수집해 이것을 판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설날과 추석만 제외하고 1년의 363일 계속 고물을 수집한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김 할아버지. 자기 부양능력이 없어 매월 30만원의 보조금을 정부로부터 받고 있다.

“6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그래서 소학교(지금의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지. 그때부터 오늘까지 가난한 생활의 연속이었네 그려. 허허.”

그래도 김 할아버지는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막노동 등 이것 저것 안해 본 일이 없다. 한때 동대문 시장에서 포목점을 운영하며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정된 생활도 잠시. 어려운 처지에 있던 후배에게 가게를 맡긴 것이 화근이 돼 포목점 사업이 망해버렸다.

“가난이라는 것을 직접 경험해보니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알겠더라고. 또 주위 친구들이 너무 어렵게 산다는 얘기들을 많이 해. 자식들이 부모를 ‘나 몰라라’ 하기도 하잖아. 공릉동에 살 때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매일 하는 얘기가 이거야. 그래서 늦었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부터 챙겨보자는 생각이 들어 폐지를 모으기 시작했다네.”

할아버지가 ‘일’을 시작하는 시간은 새벽 1시. 자전거를 타고 우선 중곡동과 장안동 일대를 순찰(?)한다.

“1시가 넘으면 시내 곳곳에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많어. 심지어 정신을 잃고 있기도 하지. 우선 이 사람들을 다독여서 집으로 보내. 이 추운 겨울에 길에서 자면 큰일 나잖아.”

그래서 할아버지는 항상 주머니에 3만원을 지참하고 나간다. 택시라도 잡아서 취객들을 집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또 전화박스가 고장 나지는 않았는지, 공공기물이 파손되지는 않았는지를 살펴보고 뒤처리까지 한다.

이렇게 순찰이 끝나면 할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작업을 준비한다. 두툼한 방한복을 입고 귀를 가리는 모자를 쓰고 작업을 위해 2개를 붙여 만든 ‘특수제작’ 목장갑을 끼면 준비 완료다. 또 하나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이제 그만 좀 해요. 할 만큼 했으니 좀 쉬세요.” 김금숙(78) 할머니의 잔소리다.

매일 폐지와 고물 등을 수집해 이웃을 돕고 있는 김순태 할아버지. 사진=박재완 기자
사실 할머니의 걱정은 올해 들어 더 커지고 있다. 할아버지의 무릎 통증이 더 악화되고 있고, 폐지와 박스를 나르면서 종아리와 정강이에 난 상처들이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장갑을 끼고 있지만 이미 두 손은 갈라질 대로 갈라져 심하게 부어올랐다. 그러니 할머니의 잔소리가 끊이지 않을 수밖에. 할머니는 “갈라진 손을 본드로 붙여 놨어요. 어떻게 본드를 쓸 생각까지 했는지 나 참…. 나중에 후유증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래도 김 할아버지가 매일 새벽 나갈 수 있는 것은 할머니의 든든한 내조 덕분이다. 지금까지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지켜봐 주었고 또 함께 절을 찾아 마음의 평안을 얻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할머니와 남양주 불암사에 가. 거기 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어”라며 웃는다.

할머니의 성화가 끝나면 할아버지의 본격적인 폐지 수집이 시작된다. 거리에 버려진 폐지와 종이 상자, 우유팩, 신문 등이 차곡차곡 리어카에 실린다. 또 중곡3동의 슈퍼마켓과 식당에서 나오는 폐지 등도 할아버지의 리어카에 오른다.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이웃 주민 한기목(57)씨는 “할아버지가 워낙 좋은 일을 하기 때문에 음식재료를 담는 박스를 모아 뒀다가 한꺼번에 드린다”며 일손을 거든다. 이른 아침 출근길을 서둘던 공공심(44)씨도 다정하게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넨다. 공씨는 “밤낮없이 일을 하시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며 “정말이지 김 할아버지를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말한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자 어느새 리어카에는 각종 물품이 수북이 쌓였다. 이것은 다시 크기와 종류별로 분류돼 폐지를 다루는 업자에게 넘겨진다. “폐지 수거 업자들이 나에게는 값을 많이 쳐 줘. 다른 사람들은 kg당 50원 정도 주는데 나한테는 75원이나 줘. 그러니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돼.”

이렇게 할아버지는 한푼 두푼 돈을 모아 그동안 중곡3동 지역의 불우시설과 독거노인들을 도왔다. 이웃 종교 시설인 ‘작은 예수의집’에 쌀과 생필품을 매년 전달하고 있는 것은 물론 소년소녀가장과 어린이시설에게도 각종 의류와 학용품들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1월에는 동대문시장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후배들의 도움을 받아 각종 의류들을 불우이웃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또 김 할아버지는 중곡3동 동사무소와 공동으로 작년부터 1년에 네번 정도 60여명의 중증 장애우와 독거노인들을 모시고 서울 시내 나들이도 하고 있다.

“내가 지금 딱 70이라면 좋겠어. 그러면 더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이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언제까지 살지 모르지만, 참 재미있네.”

더 많이 나누기 위해 세월을 다시 되돌리고 싶다는 김순태 할아버지. 영원한 청춘으로 살아갈 것 같은 김 할아버지는 이렇게 오늘도 나눔의 법륜(法輪)을 굴리며 중곡3동을 따뜻한 마을로 만들고 있다. 소한(小寒)을 지나 대한(大寒)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김순태 할아버지는 사람들에게 ‘진짜 부자’가 무엇인지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유철주 기자 | ycj@buddhapia.com
2006-01-16 오전 9: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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