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이 밝았다. 희망과 설레임 가득해야 하는데, 사회적으로나 과학기술 쪽에서나 어려운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보니 무거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사학법 갈등이 그렇고 황우석 교수 업적의 진위 논란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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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교수의 연구를 둘러싼 의혹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11개로 보고 됐던 줄기 세포가 실은 부풀려진 것인가 하는 점이고 또 하나는 2~3개의 줄기 세포조차도 조작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 샘플의 바꿔치기에 대한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문제는 복잡해지고 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진실을 알기란 쉽지 않고, 밝혀지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검증 자체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대상이 되는 세포자체가 쉽게 변화할 수 있는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 관련자들의 개인적인 성향, 인간성 등에 대한 루머는 황 교수를 지지했던 수많은 시민들, 특히 과학자의 표상으로 여겼던 어린이들은 심리적 허탈감이 적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분히 문제의 근본을 이해하고, 생명과학 접근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킴으로써,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은 황 교수팀의 부풀리기 의혹, 그리고 이에 따르는 논문의 조작에 대해 용서받지 못할 행위로 비판한다. 실제로 과학기술계의 논문은 다른 분야와는 다르게 엄정한 이론과 데이터에만 근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러하다.
그러나 연구 현장에서는 일반 시민, 아니 정치가 못지않게 정치적인 환경에 놓여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에서 다루는 결과를 사회에 내어놓아야 한다. 그 결과에 의해 연구비가 결정되고, 연구팀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연구팀 역시 사람들의 집단이므로, 연구원들 간의 경쟁심리, 연구결과의 공정한 분배 등이 항상 연구책임자를 어렵게 만든다. 일반 시민들은 과학기술 실험의 데이터가 엄밀하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측정은 항상 사람들이 만든 기계로 하기 때문에 해석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줄기 세포를 얻은 황 교수팀이 당시 가졌던 흥분, 그리고 좀더 좋은 데이터를 내고 싶었던 심리상태에서 데이터의 부풀리기에 대한 유혹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줄기세포를 산업화하는 데 필요한 기본 재료인 많은 난자를 어떻게 채취, 공급하는가, 이에 따르는 사회적, 윤리적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방안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난자 대신 사용 가능한 대체 물질에 대한 관심과 연구야 말로, 황우석 기술(비록 단기적으로는 실패했다 하더라도)의 응용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열쇠일 것이다.
첨예한 의견 대립상태에 있을 때 우리의 문제들이 해를 가르치는 손가락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단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만으로 시비를 따지는 태도에서 벗어나자. 특히 생명과학 기술이라는 생명과 분자 차원의 구분이 애매한 문제에 직면할 때, 생명의 흐름이 무생물까지에 이어진다는 부처님 법을 떠올려보자. 부처님 법이야말로 근본적인 해결책 모색의 사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