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과 희망을 노래하는 개나리가 피어나는 봄이 대지를 녹이고 나면 연록색의 대자연은 짙푸른 몸짓으로 폭양을 내리쬡니다. 때론 질풍같이 몰아치는 폭풍우를 먹고 자라 알알이 영그는 계절은 황금빛 자연으로 화(化)하여 우리네 마음을 풍성하게 하는 가을이라는 단어로, 게으른 자에게는 허탈을 부지런한 자에게는 결실의 아름다움을 조금도 인색치 않고 한량없이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무등산 기슭 산사에서 실바람에 한잎 두잎 떨어지는 낙엽 사이로 으악새의 애절함과 만추에 취해 있습니다. 떨어지는 낙엽이 무엇을 말하는지, 으악새의 사연은 내게 무엇을 말하는지 조심스럽게 그려보고 싶습니다. 개나리꽃 핀 봄엔, 그 여름엔, 그리고 이 만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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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제가 태어나면서부터 등에 업고 그 암자에 다니셨습니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어려서부터 친구들은 사찰의 신장이나 탱화를 무서워했었는데 저는 오히려 친근하게 느끼며 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먼 곳까지 어머니 따라 왔다고 하며 예뻐해 주시고, 스님이 쓰시던 염주나 목탁을 만지며 놀도록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스님이 가깝게 느껴졌고, 귀동냥으로 들었던 <반야심경> <천수경> 등을 저 나름대로 흥얼대면서 친구들에게 스님 흉내도 곧잘 내곤 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반야심경>을 외우고 그 내용을 알게 되었고, 절이 뭔지, 합장이 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절에 갈 때마다 어머님께서 머리에 이고 가신 것이 부처님 전에 올린 공양미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멀리서 들려오는 목탁소리에 스님이 계신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절에 도착해서는 기쁜 마음에 법당 안으로 뛰어 들어가 어머니보다 먼저 스님께 엎드려 삼배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걸 저에게 자상하게 일러주시고 가르쳐 주신 첫 스승은 어머니셨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실을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언젠가부터 어머니가 사찰을 찾으셨던 날이면 저 혼자 사찰에 가게 되었고, 법당에 우두커니 앉아 있곤 했습니다. 절에서 내려오던 어느 날, 저는 어머니께서는 어떠한 경전도 제대로 알고계시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오직 가족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부처님 전에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또 비셨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런 깨달음과 함께 저는, 저승에서 어머니를 만나게 되면 부처님 가르침의 큰 법이 이런 것입니다 하고 경전 한 구절, 법문 한 구절이라도 전해드리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나 없이도 너 혼자 사찰을 찾아 부처님 전에 공양올리고 바르게 살았구나”하고 칭찬하시는 말도 듣고 싶어졌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불교와 관계되는 서적과 법요집을 뒤적였습니다. 법회가 있으면 법사님의 법문을 요약해 노트에 정리해 두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정리한 법문 노트가 3권으로 앞으로 몇 권이 될지 모르겠지만 어머니를 만나는 날 전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들인 저를 데리고 사찰을 찾으셨던 어머니가 떠나신 뒤, 저는 부모가 되어 지금 이렇게 만추에 단풍들어 있는 산사에 앉아 있습니다. 이제 제 곁에는 저의 아들이, 어머니 아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만치에 앉아 있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한국운전기사 불자연합회 광주지역 제9대 회장직은 을유년과 함께 임기가 만료됩니다. 그동안 ‘달리는 법당 거리의 포교사’로, 육바라밀 행을 닦아 보현행원으로서 맑고 밝게 나와 이웃을 함께한다는 부처님 법을 설(說)이 아닌 행(行)으로서 살아가자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너와 내가 따로따로가 아닌 한국운불련 광주지역회 회원 그 하나로 화합하고 단결해 연꽃과 같이 아름답게 지역불교 포교에 매진하기를 발원합니다. 늘 해옴이 헛되지 아니하여, 바다건너 제주의 한라부터 진주 남강을 건너 마ㆍ창ㆍ진을 지나 부산의 해운대를, 포항을, 울산의 태화강변을 건너,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을 돌아 대구의 팔공산 갓바위를 휘어감고, 대전의 한밭을 가로질러 전주의 효자동에서 천안의 늘어진 수양버들 아래서 잠시 쉬었다 안양, 제천, 수원, 의정부를 거쳐 청주, 충주를 돌아보면서 원주의 치악산 구룡사의 범종이 장엄하게 울릴 때까지 한국 운불련은 쉼없이 정진하여 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백두의 천지가 넘실대는 날까지 한국 운불련은 3천여 가족과 함께 할 것이며 그 시작은 무등산 기슭에서 병술년의 햇살과 함께 더 힘찬 행보가 시작 되리라 삼보 전에 서원해봅니다.
마침 저만치에서 앉아있는 아들이 아빠를 부릅니다.
“산천은 날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날보고 티 없이 살라”했는데 “어떻게 산천이, 그리고 창공이 말을 하느냐”고, “여태껏 들으려 해도 아무 말도 들리지 않은데요?” 라고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에 앞서 어머니 생각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저는 아들 나이보다 훨씬 많은 나이 때까지 어머님이 살아계셨지만 그런 질문을 해 보지도 않았고 해보려고도 못했었는데 하고서 말입니다. 아들이 기특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런 질문을 저에게 건네는 아들 녀석이 너무 기특하고, 그런 아들이 있게끔 저를 길러주신 어머니가 너무 그리웠습니다.
어머니!
만약 글을 모르는 것을 무식하다고 한다면, 저의 어머님은 무식한 분이셨고, 그런 무식한 분이 저의 어머님이십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의 눈동자에서 진실을 배웠고, 그분의 무릎에서 인생을 배웠고, 그분의 손길에서 정성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입술에서 애정을 배웠습니다.
그러한 저의 인생의 최초의 스승이신 어머님께서 지금은 제 곁에 계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늘 저의 곁에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늘 저를 지켜보시며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힘과 용기를 주시고, 제가 자만에 들려할 때면 자숙(自肅)하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게으름을 피우려 할 때면 맑은 정기를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의 곁에는 늘 <부모은중경>이 가까이에 있습니다.
무식하지만 다정했던 여인, 나의 어머님!! 그 여인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저의 어머님을 정말 사랑합니다. 그 여인을 만나는 날까지, 나의 어머니를 뵈올 날까지, 저는 일심으로 부처님 전에 합장정례 할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무등산 기슭의 해가 서산에 저물어 가고,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으악새 소리가 뒹구는 낙엽이랑 합창으로 이만 하산하라 합니다. 일어서려니 열두 살배기 아들 녀석이 제 목청껏 <반야심경>을 염송하면서 앞서 뛰어가고 있습니다.
저 모습 어머니께서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고 생각하니 아들이 더욱 기특히 여겨졌습니다. 그 아들 손을 꼬옥 붙잡고 십오리가 넘는 산길을 둘이서 걷다보니 어느새 저는 어머니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