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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사회는 사회 존속의 근간이 되는 도덕적 건강지수가 땅에 떨어지고 체면을 중시하는 선비정신이 실종되고 원칙을 무시한 채 편법과 불법이 만연되는 비도덕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도덕적 사회는 물질이 인간의 판단기준이 되어 인간의 종국적(終局的)가치가 수단적(手段的)가치로 변질, 최선이 아닌 최고만이 대접받는 그릇된 사고가 팽배하게 되고 최고 지향적인 가치기준을 충족하기 위하여 집단이기인 조직적 할거주의(割據主義)가 난무하여 상생과 중도가 없는 양극단(兩極端)만이 존재하게 됩니다.
인류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물질이 아닌 자유와 평화에 있고 인간의 삶의 지표(指標) 역시 탐욕이 아닌 인간 본연의 행복추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비인간적 범죄가 난무하고 화합이 없는 양극화(陽極化)가 심화돼 대립과 갈등이 그치지 않는 불행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인류가 사는 지구촌에는 수많은 종교와 철학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세상이 혼탁해 지는 것은 인간 속에 내재된 욕망이라는 마성(魔性) 때문입니다.
욕망이 승화되면 희망이 되지만 욕망이 변질되면 파멸을 가져올 뿐입니다.
따라서 행복한 세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향락(享樂), 사치(奢侈), 과소유(過所有), 난개발(亂開發), 파괴(破壞), 투쟁(鬪爭)과 같은 비이성적(非理性的) 욕망을 스스로 억제해야 합니다.
인간은 소유가 아닌 나눔을 통해 행복을 추구해야 합니다.
불교에서 보시(布施)는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입니다. 가진 자의 가장 소중한 행복은 남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물질을 가진 자는 물질을 나누고, 지식을 가진 자는 지식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일입니다.
가슴의 응어리를 풀고 마음의 문을 열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를 이해하고 포용하며 어렵고 가난한자의 시린 삶을 나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선덕(善德)과 교정(交情)의 미덕이야 말로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첩경입니다.
불교는 세속을 등지는 출세간의 종교가 결코 아니며 사회의 부조리를 등한시하는 소극적 자세를 취하는 종교도 아닙니다.
저마다 갖추어진 불성을 개발하여 세상을 정화하고 중생을 참된 삶의 길로 인도하는 구세주의(救世主義)가 불교의 본질입니다.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미래의 희망을 설계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게 됩니다.
우리 불자들은 새해를 맞이하여 부처님 말씀으로 혼탁하고 부조리한 사회를 정화하기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원력과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특히 태고종도는 종단의 대작불사(大作佛事)를 원만하게 마무리해야 하는 종도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십이지(十二支) 동물가운데 개(犬)는 정이 많아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丙戌年에는 이 동물이 상징하는 것처럼 서로 돕고 위하는 인정 넘치는 한해가 되어 모두 함께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