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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50년 병술년 새해를 맞아 보문종 종정 혜일 스님이 신년법어를 발표했다. 다음은 법어 전문.
불기 2550(2006)년
신 년 법 어
병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해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생은 원력으로 생을 택한 것이 아니라 업력에 끄달려 강한 집착으로 금생에 태어났기에 집착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이겠지요.
집착은 생명체를 유지하는 에너지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생명체를 유지하기 위해 호흡과 식수 그리고 육식 채식 등으로 불가피하게 타 생명체를 먹고 살아갑니다. 생명이 생명을 먹고 먹여주는 중중무진의 관계 속에서 우리들은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 생애의 기한을 수명이라 할 수 있을진데 그 목숨이 거기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무시무종의 윤회의 틀 속에서 삶이 무한히 진행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배아줄기 세포에 따른 생명윤리 문제로 온 지구촌이 소란스럽습니다. 생명의 본질에 관한 바른 견해가 서야 현대사회의 당면한 문제에 불교의 올바른 처방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문제는 너무나도 미묘하고 섬세한 본질의 문제입니다.
사람은 100조개의 세포로 이뤄졌지만 어느 세포 하나라도 結生 당시부터 常住不變해온 세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前滅後生의 無常의 흐름으로 변해온 無我의 존재들입니다. 당초의 세포들이 변했음에도 우리가 생명을 지속하는 것은 생명은 세포를 넘어서는 그 이상의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즉 세포는 생명이 유지되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세포는 자기복제의 세포분열로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생명활동을 유지하는 無常·無我의 구조임을 깊이 이해한다면- 생명 자체를 절대자의 권역으로 고수해야 한다는 고착된 사고에 얽매이지 않고- 배아줄기 세포를 비롯한 낙태, 안락사, 뇌사자의 장기이식 등 생명윤리의 기준을 세우는데 持犯開遮의 탄력적 시각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의 존엄성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사람을 비롯한 타 생명체를 동등하게 중시해야만 올바른 생명윤리가 확립되는 것이 아닐까요? 생명은 그 자체로 존엄하다는 생명중심적 사고가 아닌 타 생명체를 인간을 위한 도구 정도로 간주하는 시각에서는 생명윤리 문제가 자가당착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삶을 지속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타 생명을 취하더라도 다른 생명에 대해서 경외심과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면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생명윤리 문제에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줄 수 있으리라 봅니다.
大韓佛敎普門宗 宗正 慧 日 合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