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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전화 상담원의 24시간


불교상담개발원 자비의전화 상담원들
종종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 같고,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해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해주지 못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가족도 친구도 모두 막막하게 느껴지고 고통스러운 상황 때문에 삶의 의욕이 사라질 때 당신은 누굴 찾는가?
15년이라는 시간동안 늘 같은 자리에서 고통과 슬픔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이 있다. 전화만큼이나 가까운 곳에서 자비의 손길을 뻗치는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바로 ‘자비의 전화((02)737-7374~6)’ 상담봉사자들이다.

“때르릉 때르릉.”
바람이 심하게 불던 12월 5일 밤 11시쯤 전화벨 소리가 두 평 남짓한 상담 부스에 울려퍼졌다. “네, 자비의 전화입니다.” 상담원 이석진 씨가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에서는 흐느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죽어버리고 싶어요. 지금 수면제 30알을 준비해놨어요. 전화를 끊는 대로 다 먹고 죽을 생각이에요…. 이러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겠지만 저는 이게 마지막 전화라고 생각해요….”

“전화 끊지 마시고, 저한테 상황을 말씀해보세요. 지금이 끝이라고 생각마시고 선생님이 죽으면 얼마나 주변 사람들이 상심할지 떠올려보세요.” 이씨의 절박한 호소 끝에 마음이 움직인 내담자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아이의 어머니라 했다. 너무 힘들어 도저히 살 수가 없다는 생각뿐이지만, 두 아이들이 자신의 전철을 밟게 될까봐 결심을 실행에 옮길 수 없다고 했다. 통화는 무려 4시간이나 이어졌다. 안정을 되찾은 내담자가 전화를 끊은 것은 새벽 3시였다. 이씨는 “인간은 살다보면 얼마든지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힘들 때 포기하지 말고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건강해지는 방법을 찾아보자”며 “언제 꼭 한번 불교상담개발원을 방문해서 전문면접상담도 받아보세요”며 상담을 마쳤다.

1990년 불교계 최초의 전화상담 봉사기관으로 출범한 자비의 전화가 15년간 받은 전화는 5만여 건을 넘는다. 미주와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전화가 오기도 한다. 자비의 전화를 거쳐 간 봉사교육자만 천여 명, 상담원은 400여명에 이른다. 현재 핵심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180명의 상담원들은 하루 24시간, 일주일 중 6일 을 꼬박 전화선에 매달리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적절한 도움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문영자(1기 상담원) 씨는 “상담전화는 시대를 반영해요. 전화를 통해 계절을 느끼고, 또 세태가 어떤지를 알 수 있게 되지요”라고 말했다. IMF한파가 몰아쳤던 98년에는 가장들과 함께 눈물 흘리며 통화를 했고, 입시철에는 수험생들의 걱정과 괴로움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한창 인신매매가 횡행하던 90년대, 여성들을 납치해 윤락가에 넘기거나 비디오 촬영을 하던 인신매매범이 괴로움을 못 이기고 ‘조직에서 탈출하고 싶다’며 전화를 한 일도 있었다.

자비의전화상담원들은 두평 남짓한 전화부스안에서 일주일 6일
자비의 전화 상담원들에게 상담은 끝없는 수행의 길이기도 하다. 내담자에 대한 통찰이 필요할 뿐 아니라 결국 자신이 보는 한계 속에서 상담을 해 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끊임없는 자기 계발이 필요하다. 그 때문에 자비의 전화 상담원 중에는 상담봉사 시작 후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상담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도 상당하다고.

상담원들은 무보수로 자비의 전화 상담을 하지만, 어느 곳보다 치열하게 자기정진을 하고 있다. 하루 4교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4시간씩이다. 밤근무는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다. 상담원이 되기 위해서는 1년간 총 120시간 이상의 교육과정과 30시간의 수습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오랜 교육과정을 거치고 나서도 현장에 갓 투입된 새내기 상담원들은 때로 상담과정에서 말문이 막히거나, 어떻게 답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언제나 중심을 잃지 않는 선배 상담원들에게 ‘멘토링’을 부탁한다.

6일 오전 상담이 끝난 오후 1시. 한 상담원이 커피를 손에 쥐고 15년 넘게 상담해 온 김동수(창립기수 상담원) 씨에게 ‘고민상담’을 신청해왔다. 상담전화를 ‘음란전화방’인양 악용하는 일부 익명전화 때문에 견딜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제는 목소리만 들어도 내담자의 고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김씨는 “어렵겠지만 그 사람들도 도움과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이니 의연하게 대처하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면서 자연스레 상담을 이끌어보세요”라고 충고했다.

상담원 활동은 2년이 고비다. 대부분의 상담원들은 상담에 대한 두려움과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그만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활동을 계속하는 이들이 느끼는 보람은 무엇보다도 값지다. 한 때 환각증세까지 보이며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리던 내담자가 완전히 치료돼 봉사자로 활동하기 위해 찾아오거나, 가정의 화목을 되찾은 내담자들이 편지와 가족사진을 보내올 때면 상담원들은 두고두고 이야기 꽃을 피운다.

7년간 상담부장을 맡았던 창립기수 박희섭 씨는 “상담을 통해 삶의 가치를 느끼고, 나 자신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복막투석으로 8년간 병석에 누워있던 막내딸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도 박씨에게 힘을 주었던 건 자비의 전화였다. 당장 딸이 마음을 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데 내가 딸 걱정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무슨 상담을 하나 싶어 미안하고 가슴 아팠다. 그러나 마침내 딸이 어머니의 말을 받아들여 모든걸 수용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을 때, 박씨는 ‘갖지 못한걸 얻으려 하지말고 가진 것을 나누며 삶을 감사하게’ 살도록 가르쳐준 ‘자비의 전화’를 떠올렸다. 딸을 떠나보낸 뒤로도, 박씨는 예전보다 더한 활력으로 오늘도 외로움의 망망대해에서 손을 뻗치는 내담자들에게 자비의 등불을 밝힌다.
이은비 기자 | renvy@buddhapia.com
2005-12-21 오후 1: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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