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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은 삶의 아름다운 과정



책 <시간의 이빨>
시간의 이빨 | 미다스 데커스 지음 | 오윤희·정재경 옮김

또 한해가 저물고 있다. 누구나 연말연시가 되면 가는 세월을 아쉬워 한다. 혹자는 쓸데없이 나이만 한 살 더 먹는다고 서글퍼 하기도 한다. 이처럼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해가 갈수록 서서히 늙고 소멸해 간다. 모든 살아있는 것의 공통점이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들은 시간이라는 날카로운 이빨에 상처받고 힘없이 스러져간다. 그렇다면 대체 생물들은 어떻게 늙고 죽어가는 것일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적은 방대한 진술서다. 시간에 의해 조금씩 마모돼 가는 만물의 모습을 살펴보고 그 안의 철학적 의미를 탐색해 보는 이 책은 생물학과 인식론, 유전과 진화, 인류학 등 제반 학문의 폭넓은 내용이 버무려진 독특한 교양서다. 네덜란드의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이 책의 지은이 미다스 데커스는 이 책을 통해 나이듦과 쇠락에 대해 오히려 짓궂은 찬사를 보낸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예시를 통해 더욱더 이 짓궂은 찬사론을 견고하게 펼친다. “늙어서 쇠약해진 코끼리들이 조용히 죽기 위해서 찾아가는 장소가 있다는 말이 있다. 숲 속 깊은 은밀한 곳에서의 마지막 절규와 몸부림, 그리고 나서 이들의 육중한 몸은 쓰러질 것이다. 물론 이들의 마지막 비명을 직접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독수리 떼는 볼 수 있으며 하이에나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인식론. 유전과 진화. 인류학 등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생물학자가 바라본 죽음과 쇠락에 대한 유쾌한 찬사가 책에 가득하다.
마치 슬픈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묘사지만 이것을 통해 지은이는 시간의 진행에 따른 쇠약과 소멸은 매우 자연스럽고도 아름다운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연과 동물의 세계를 모델로 삼아, 죽음과 쇠락을 거부하면 삶 자체를 거부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쇠약해진다는 것은 마치 얼마나 멀리 여행했는지 알려주는 시계와 같다”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런 노화는 비단 동물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게 지은이의 설명이다. 그는 이탈리아 종각을 또 하나의 예로 제시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 있던 99m 높이의 종각이 1902년 갑자기 무너졌다. 1000년 넘게 도시의 상징으로 우뚝 서있던 건물이 왜 그렇게 갑자기 무너졌을까. 전문가들은 큰 종소리로 인한 소음과 진동, 기초와 벽의 부실공사, 믿음의 부족 등을 원인으로 들었다. 하지만 가장 정확한 답은 한 평범한 시민의 입에서 나왔다. “건물이 너무 늙어서 무너졌죠.”

이처럼 모든 만물은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사코 퇴락과 변화를 부정한다. 오래된 건물을 그냥 두고 보지를 못한다. 그러나 많은 돈을 들여 ‘옛날의 위용’을 되찾고자 해도 복원 과정에서 그 집의 오래된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만다.

완벽하게 꾸며진 성(城)보다는 폐허가 된 성에서 오히려 더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또한 뜨는 해보다는 지는해가 오히려 더 화려하고 아름답지 않는가. “저물어가는 폐허도 하나의 균형 잡힌 생태계라”는 지은이의 강조 사항은 연말연시를 맞아 나이듦을 서글퍼 하는 우리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된다.

또 지은이는 “인간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 하는데,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저녁이 되어도 잠자리에 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죽지 않는 종족을 만나 본 ‘걸리버’도 이렇게 다짐하지 않던가. “어떠한 독재자도 내가 삶 속에서 얻는 기쁨을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막지 못하게 하리라!”라고. 지은이는 이와같이 박식하면서도 재기발랄하고 심오하면서도 짓궂기까지 한 매혹적인 이야기 솜씨로 쇠락을 거부하면 삶 자체를 거부하게 된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들을 다독인다.

허물어진 사원, 녹슨 채 버려진 기관차, 이빨 하나만 달랑 남은 노파…. 지은이는 나이듦, 소멸, 폐허에서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지은이는 말한다. “타이타닉호가 후대에 불멸의 이름을 남긴 것은 거대하거나 화려해서가 아니라 ‘침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아름다움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움의 파괴이다’라는 서양 속담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폐허는 파괴의 흔적이 아니다. 창조를 잉태하고 있는 시간의 더께이다. 괴테가 폐허가 된 로마 유적지를 돌아본 뒤 ‘이탈리아 여행기’를 쓴 것은 폐허를 통해 새로움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부패도 때론 창조의 원천이 된다. 박테리아의 작용이 없이는 결코 우유가 치즈로 될 수 없다. 포도가 부패하지 않고는 좋은 포도주를 만들 수 없는 법이다.

“죽음은 몰락이 아닌 또 하나의 완성. 그래서 모든 죽어가는 것은 아름답다.” 지은이가 45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에서 그토록 하고 싶었던 단 한줄의 말이다.
김주일 기자 | jikim@buddhapia.com
2005-12-14 오전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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