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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지공예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소박하면서도 품위 있고 따뜻함과 은은함이 흐르는 종이’로 표현되는 한지를 통해 잊고 지내던 정감을 되찾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종이는 바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찍어낸 한지다. 여기에 사용된 닥종이는 황벽물을 들이는 등 우리나라 최초의 염색종이이기도 하다. 미국 애틀랜타 다드 한터 종이박물관은 안내책자에서 ‘한국인은 종이 원료 자체를 염색해 색종이를 뜬 최초의 장인이며 최초로 봉투를 만들어 쓴 민족’이라고 설명할 정도로 우수성을 인정하고 있다.
최근 한지공예의 세계를 조명한 <전통한지공예>(심화숙 지음, 우리출판사)가 발간되고, 서울 서대문 수효사에서도 ‘한지공예체험관’을 개관하는 등 불교계에서 한지공예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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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는 닥나무(楮)나 삼지닥나무(三枝楮)의 껍질을 원료로 만드는데 원료와 크기, 용도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진다. 용도에 따라서는 20여 가지로 분류되는데 문에 바르는 창호지, 그림이나 글을 썼던 화선지, 도배용으로 쓰는 도배지, 화선지 등 종이 뒷면에 붙여 썼던 배접지, 방바닥을 바르는 장판지 등이 있다.
다양한 한지의 활용법에서 알 수 있듯, 한지로 만들어내는 공예품은 다양하다. 한지공예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지장공예(紙裝工藝) 전지공예(剪紙工藝) 지승공예(紙繩工藝) 후지공예(厚紙工藝) 지호공예(紙糊工藝) 지화공예(紙花工藝) 등과 한지그림, 닥종이인형, 각종 팬시 제품, 인테리어 등에 활용되는 현대적인 작품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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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가 전통공예 뿐만 아니라 현대공예로도 인기를 끌고 있는 까닭은 한지공예만의 여러 장점 때문이다. 한지공예작품은 한지로 제작되기에 부드럽고 포근하다. 비단보다 곱고 질기다고 평가받는 한지를 여러 겹 덧발라 만드는 한지공예품은 견고하고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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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공예 기법들을 살펴보자. 좁고 길게 자른 종이를 손으로 꼬아 다시 엮는 지승공예는 짜는 기법에 따라 기하학적인 무늬를 만들어낸다. 깨끗한 종이보다는 인쇄된 서책을 이용하는데 먹 글씨가 자연스럽게 무늬를 자아내 운치를 더한다. 완성된 작품에 기름을 먹이거나 옻칠을 하면 보존성을 높여 오래 사용이 가능하다.
잘게 찢은 종이를 물에 불려 찹쌀 풀로 반죽해 상품을 만드는 지호공예는 골격에 붙여가며 말리고 덧붙이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 골조를 떼어내고 옻칠을 해 마무리하는 공예기법이다. 바탕에 색지를 바르고 무늬를 장식해 호화롭게 꾸미기도 했다. 생활용품을 만드는데 많이 사용한다. 닥종이 인형 종이탈 등도 지호기법으로 만들어진 공예품이다.
영산재 등 불교의식에 많이 사용되는 종이꽃은 지화공예에 속한다. 지화공예에는 불교의식화 뿐만 아니라 궁중상화라 해 꽃이 귀했던 겨울철 궁중대연회 때 쓰이던 종이꽃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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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로 모양을 만들고 당초문 민화 등을 그려 문장식이나 생활소품 등을 만드는 지화(紙畵)공예도 있다. 오색찬란한 각종 색지를 오려 붙여 만드는 전지공예는 한지공예품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예술적인 감각을 자랑한다. 반짇고리에서 장롱에 이르기까지 생활필수품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나무로 골격을 짜거나 대나무 등으로 뼈대를 만들어 종이를 바르는 지장공예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 마무리하기도 했다.
한지공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다양하게 사용되는 문양들이다. 특히 연화문이나 보상화문은 불교적인 의미를 가진 문양들이다. 보상화는 불교에서 숭상되는 이상화로 ‘만다라화’라는 넓은 의미에 포함된다. 산예문양은 사자를 가리킨다. 사자는 불법과 수행자를 수호하는 의미로 대일여래가 사자위에 앉아있다.
불수감 문양은 모양이 부처님의 손가락을 닮았다 해서 불수감이라 부른다. 불교의 상징무늬로 많이 쓰인다. 기하학적인 문양에는 불교의 ‘卍자’를 활용한 완(卍)자문양이 있다. 단청을 문양화한 단청문양은 청황적흑의 네 가지 색을 기본으로 단청을 한지에 옮겼다.
불교와 한지공예
불교계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한지공예품은 바로 연등이다. 연잎을 꼬아 만드는 연화등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전통등이다. 등롱(燈籠) 또는 제등(提燈)이라 해서 음력 4월 8일 절에서 행하는 관등(觀燈)의식에는 용등, 봉등, 거북등, 잉어등 등의 화려한 등이 사용됐다. 연등축제에서 만날 수 있는 불을 뿜는 용도 모두 이런 전통등의 원리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불교 의식에 많이 활용되는 지화는 영산재의 장엄지화 등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영산재 수륙재 등 의식에서 많이 사용되는 장엄지화는 영산재보존회 등의 장엄 담당 스님들로부터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지화는 사찰보다는 무속인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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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불의 경우 1998년 한국민국전승공예대전 당시 대통령상 수상작인 상기호씨의 ‘건칠지불(乾柒紙佛)’이 당시 몇 백 년의 단절을 끊고 복원된 유일한 사례였다.
건칠지불을 최초로 복원했던 상기호 회장(전통오색한지연구회)은 “통도사에 건칠지불을 기증한 이래 지금까지 문수·보현·지장보살 세 구를 제작했다”며 “조선 중엽까지 이어졌던 지불을 복원했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꾸준히 못하는등 전승이 어려운 형편이다”라고 지불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했다.
보물 제415호로 지정돼 있는 경북 월성군 기림사 보살좌불과 백양사 극락보전에 남아있는 건칠지불 등이 몇 백 년을 이어온 지불들이다. 지불은 삼베와 한지 모시 등으로 여러 번 발라 골격을 만든 다음 그 위에 옻칠을 하고 금색으로 마무리를 한다. 건칠지불은 그 수명이 천 년 이상을 유지할 수 있고 옻칠을 하면 외피가 아주 단단할 뿐만 아니라 그 특유의 냄새로 해충이 범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나무를 깎아 만든 불상보다도 오래 보존된다고 믿어진다.
심화숙 회장(전통한지공예가협회)은 “한지공예 특히 한지는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며 “사찰 문살을 매우는 한지에서부터 반야심경 병풍, 지필묵 보관함, 불전함, 다기상에 이르기까지 많은 공예품들이 불교의 향기를 품고 있다”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