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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이전에는 차가 약용(藥用)으로 주로 쓰였고, 당나라로 진입한 후에야 비로소 음용(飮用)으로서의 차 문화 틀이 형성되었다. 차 문화는 귀족들과 불가(佛家)를 중심으로 발달됐으며 차에 관한 가장 오래된 책인 육우의 <다경(茶經)>이 저술되기도 했다.
이 시대의 음다법(飮茶法)은 덩어리로 만든 차를 가루로 내어 끓여 마시는 자차법(煮茶法)이 주를 이루었다. 지하궁에서 출토된 <물장비(物帳碑)>에 따르면 지하궁에 봉안된 다구는 찻잎을 말리고 가루내고 저장하는 용기부터 찻숟가락과 찻잔 등 차를 마실 때 필요한 완전한 한 벌을 이루고 있다.
이는 당나라 희종이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할 때 공봉(供奉)한 것으로, 희종이 황자 시절에 쓰던 ‘오가(五哥)’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희종이 직접 사용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로써 당대 궁중의 화려했던 차문화를 살필 수 있는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지하궁에서 출토된 다기 중 현재 우리나라에서 전시되고 있는 차 관련 유물을 중심으로 당대(唐代)의 차문화가 어떠했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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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건조시켜 가루내기
육우가 <다경>에서 당나라 시대의 차 마시는 순서를 서술한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찻잎을 따서 찐 후 절구에 넣고 찧어 덩어리로 만들어 말린다. 이를 병차(餠茶)라 한다. 이 병차는 ‘배로’란 건조기에 넣어두었다가 차를 마실 때 마다 한 덩어리씩 꺼내 불에 건조시켜 말린 후 가루를 내 끓여 마셨다. 지하궁에서 발견된 유물은 병차를 마실 때 사용했던 도구들이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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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배기(烘焙器)는 바로 병차를 건조시킬 때 쓰는 기구다.
‘류금비홍구로문은롱자(류金飛鴻救路紋銀籠子)’는 전체 높이 17.8cm 다리 높이 2.4cm 무게 654g로, 전체는 뚫새김으로 이뤄져 있으며 도금으로 처리돼 있다. 금사로 만들어진 은롱자는 이러한 금사 직조 공예가 당나라 때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류금홍안유운문은다연자(류金鴻雁流雲紋銀茶碾子)’는 덩이차를 가루 낼 때 쓴 절구로, 다연자와 축으로 구성돼 있다. 다연자는 판금 기법으로 제작됐으며 도금처리 됐다. 전체 모양은 직사각형으로 높이 7.1cm 가로 27.4cm 깊이 3.4cm 가로막 길이 20.7cm 너비 3cm 무게 1168g이다. 바닥에 ‘함통 10년 문사원(文思院)에서 은금화다연자 하나를 제작했다. 전체 무게는 29냥이다’라고 씌어져 있어 문사원에서 황제를 위해 제작한 다구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도금한 꽃무늬가 새겨진 은제 과축(鍋軸)은 손으로 잡는 부분과 원병(圓餠)이라 부르는 바퀴처럼 둥근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가장자리에는 작은 톱니모양의 띠가 둘러져 있다. 둥근 바퀴 가운데 구멍이 나 있는데 손잡이를 이곳에 넣어 연결시켰다.
‘류금비천선학문곤문좌은다라자(류金飛天仙鶴紋곤門座銀茶羅子)’는 다연자로 차를 가루낸 후 다시 한 번 거르는 기구다. 덮개와 망 서랍, 받침, 비단으로 구성돼 있으며 중간에 가는 망이 두 층 끼워져 있어 찻가루를 걸러준다. 망 아래에는 서랍이 있어 차 가루를 넣어놓을 수 있다. 판금 기법으로 제작됐으며 도금으로 문양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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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금과 다과 놓는 그릇
가루 내어 채에 내린 찻가루는 끓는 물에 넣어 거품을 일으켜 마셨다. 그러나 오늘날과 달리 당나라 시대에는 차를 마실 때 소금이나 생강, 박하 등의 조미료를 넣어 마셨다고 한다. ‘류금뇌유마갈문삼족가은염대(류金雷紐摩갈紋三足架銀鹽臺)’는 차에 넣어 먹는 소금이나 후추 등을 담던 다구로 추측된다. 받침 접시는 소금을 놓는 용도로 쓰였으며 연꽃봉오리 뚜껑 손잡이 부분에는 다른 조미료를 넣은 것으로 보인다. 높이 25cm 덮개와 받침 다기 3개가 있다. 표면에는 ‘함통 9년 문사원에서 도금 은염대 하나를 제작했다’고 적혀 있다. 염대(鹽臺) 표면에 새겨진 마갈은 인도 신화에 나오는 코가 길고 예리한 이빨에 물고기처럼 생긴 동물을 말한다.
‘류금은파라자(류金銀波羅子)’는 다과(茶菓)를 놓는 그릇으로 높이 4.2cm, 직경 10.8cm, 무게는 247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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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찻잔
이 시기의 찻잔은 자기(瓷器)나 사기(沙器)로 만든 것을 주로 사용했다. 궁중에서는 금이나 은 혹은 유리로 만든 잔, 비색(秘色) 자기를 사용했다. 법문사 지하궁에서도 오판규구권족비색자완(五瓣葵口圈足秘色瓷碗)을 비롯한 비색 자기와 소면담황색유리다잔(素面淡黃色琉璃茶盞)과 다탁(茶托) 등의 유리다기가 출토됐다.
그 중 소면담황색유리다잔 세트는 지하궁에서 출토된 20개의 유리 제품 중 유일하게 중국에서 제작된 것이고 나머지는 이슬람에서 건너온 수입품으로 추정된다. 유리찻잔은 전체적으로 담황색을 띠고 있으며 윤이 나고 투명한 느낌을 준다. 재질은 여러 가지가 섞여 분명치 않지만 이 찻잔을 통해 당나라 때부터 유리로 제작한 다구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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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법문사 지하궁에서는 찻잎을 말릴 때 썼던 금은사결조롱자(金銀絲結條籠子)와 덩이차를 빻아 담아 둔 류금은귀합(류金銀龜盒), 차를 끓이던 은풍로와 가루가 잘 섞이도록 찻물을 저어주는 용기인 류금만초문장병작(류金蔓草紋長柄勺), 은으로 된 찻숟가락인 류금비홍문은칙(류金飛鴻紋銀則) 등도 출토돼 당나라 황실의 차문화를 그려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