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충북 청원군 남이면 가좌리는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말 그대로 ‘촌동네’다. 가좌리에서도 꼬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가정집 같은 절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석문사다. 이런 절을 소위 인법당(因法堂)이라고 하는데, 얼핏 보기에도 넉넉해 보이지는 않는다.
11월 26일 오전. 석문사 마당에 주지 혜전 스님과 10여명의 보살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김장을 담그고 있다. 마을의 독거 어르신과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 나눠주기 위해서다. 이날 담글 김장은 배추 360포기.
“맛있네요, 역시 우리 보살님들 음식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혜전 스님이 분위기를 띄우자, 신도들은 “이렇게 다 퍼주고 스님은 뭘 먹고 사시려고요”하며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신도들 입가에 흐르는 미소로 보아 말 속에 따스함이 배어 있음을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석문사 신도들은 혜전 스님을 두고 “부처님이 따로 없다”고 말한다. 가진 것은 없으면서도 남 주는 데는 ‘일등’이라고. 가만히 있어도 될 일을 주민들 편의를 위해서라면 내 일처럼 나서고, 마을 어르신 모시는 데는 자식보다 더 효자고, 아픈 사람은 눈 뜨고 못 보고 마을 애경사에는 결코 빠지는 일이 없다고 하니 그런 말을 들을 법도 하다.
| ||||
작년에 석문사에 온 혜전 스님은 오자마자 청원군민 초청 경로잔치부터 열었다. 봄 가을 두 차례 열었으니 올 가을까지 네 번째다. 이것도 모자라 마을 회관에서 정기적으로 어르신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경로당에는 기름을 보내 준다. 마을 어르신들이 절에서 마음껏 공양할 수 있도록 반찬에도 온갖 신경을 다 쓴다.
마음에 아픈 사람이 생기면 병원비도 부담한다. 먹고살기가 어렵다보니 병원비를 받아 다른 곳에 쓰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도 스님은 개의치 않는다. 교통사고로 3개월 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 병실에서 만난 한 보살의 딱한 사연을 듣고는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다. 출가 전 모아놓았던 사재도 어느 덧 이렇게 다 써버렸다.
최근에는 중풍을 앓는 한 어르신이 움푹 패인 길가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해 집으로 모신 뒤, 연로한 어르신들이 불편없이 다닐 수 있도록 도로를 놓아 달라고 면에 요청을 했다.
이런 자비행이 알려지면서 혜전 스님의 ‘팬’들이 하나 둘씩 늘기 시작했다. 이날 담근 김장 배추도 혜전 스님의 ‘팬’인 양희필 거사(52ㆍ신탄진 철도정비창 근무)가 주말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것이다.
“대단한 분이여. 말로 어떻게 다해…”(한덕현ㆍ79, 가좌리 4반 반장)
“남이 못하는 일을 많이 해. 참 고마운 분이여”(천창식ㆍ66, 가좌리 3반)
점심공양을 하던 마을 어르신이 기자에게 귓속말로 속삭인다.
김월운(66ㆍ가좌리) 관음화(55ㆍ가좌리) 만덕화(54ㆍ청주시 복대동) 수월행(49ㆍ대전) 보살 등 김장을 하던 신도들도 혜전 스님 자랑에 침이 마른다.
“아니에요. 뭐 한 게 있다고…”말꼬리를 감추는 혜전 스님에게 조르듯이 그렇게 ‘퍼 주는’ 이유를 물었다.
“몸이 약해 부모님 속 많이 썩여드렸죠.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도요. 어르신들 보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요. 어르신들 모두 제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봉양하고 싶었어요. 돕는다는 생각은 안 해요. 그냥 마을 사람들과 식구처럼 살고, 그 사람들이 부처님 좋아하니까 그걸로 만족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