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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세 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스님(1849∼1912). 유불선에 통달한 뛰어난 학식으로 당대 선풍(禪風)을 일으켰던 스님은, 술에 만취해 법당에 오르거나 설법 중 바람같이 자취를 감추기도 하고, 문둥병에 걸린 여자와 몇 달을 동침하는 등 일반인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행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경허 스님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기이한 행동 이면에 숨겨진 뜻을 읽어야 한다.
특히 스님이 남긴 법문과 시문을 곱씹어보면 깨달음을 실천하려 했던 스님의 삶과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가르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를 쳐라>는 만해 스님이 전국 도처에 흩어져 있는 경허 스님의 시와 사찰 주련에 새겨진 글 110여 편을 모아 1943년에 발간한 <경허집>을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
만해 스님은 “경허 스님의 글들은 술집과 저잣거리에서 읊조렸으되 저속하지 않으며 비바람 눈보라 치는 텅 빈 산에서 붓을 잡아도 세간을 벗어난 것만도 아니어서, 문장마다 선(禪)이요 구절마다 법이며 그 법칙이 어떠한 것을 논할 것도 없이 실로 기이한 글이고 시구다”라고 평했다.
“저리도록 쓸쓸한 가을바람/ 밤은 깊어가도 잠은 오지 않고/ 저 벌레는 어이 그리 슬피 울어/ 내 배갯머리를 적시게 하는고”라며 수행자로서 느낀 고독감과 비애감을 털어놓기도 하고, “죽어도 죽음이 아닌 것이/ 우리의 본래면목이거늘/ 하물며 어떻게 생을 함부로 살려고 하는가”라며 사람들에 대한 애정 어린 질책을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스님의 글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야 할 가르침은 ‘마음공부’다. 마음을 잘 다스려야 ‘화’를 참을 수 있고 ‘복’을 가져오며 ‘사람의 도리’를 다할 수 있다는 스님은 “아무리 경을 많이 읽고 외어도 이 마음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경을 읽어도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세상만사를 다 잊어버리고 항상 내 마음을 찾아보라. 그리고 듣고 말하는 일체의 형상을 생각하라”고 강조한다.
시인이기도 한 성우 스님(불교TV 회장)은 경허 스님의 글을 우리말로 옮긴 후 “자신을 속이지 않는 마음, 자신을 펴다보게 하는 그 마음을 정화시키게 하는 것이 바로 <경허집>”이라고 평한다.
책 뒤편에는 한암 스님이 쓴 ‘경허 스님 일대기’를 실어 스님의 생애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했고, 사진작가 김홍희씨의 사진이 어우러져 글 읽는 맛을 더한다.
진정 소유하지 않는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던 경허 스님의 가르침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