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재 기능보유자의 분야가 세분화돼야 한다는 의견이 불교음악계 내에서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11월 4일 구해 스님이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것과 관련, 작법·장엄 등 나머지 분야에 대한 기능보유자 지정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다. 현행 1인 보유자 체제로는 제대로 전승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영산재의 올바른 전승을 위해 범패·작법·장엄의 분야별 보유자 지정은 기본이고 여기에 다시 각 분야별로 세분화해 전문인력 양성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불교음악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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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무용연구소장 법현 스님(영산재 이수자)은 영산재를 제대로 전승하기 위해서는 작법·범패·장엄의 세 분야에서 한 단계 더 세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법의 경우는 바라ㆍ나비ㆍ타주ㆍ법고춤으로, 범패의 경우도 안채비ㆍ바깥채비ㆍ홋소리ㆍ짓소리로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법현 스님은 “더 세분화시켜 본격적으로 연구ㆍ전승하지 않으면 영산재 원형 보존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까지 제기했다.
스님은 “짓소리만 해도 15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곡마다 완창하는데 1시간씩 걸린다”며 “영산재를 체계적으로 전승보존하기 위해 음악은 음악대로 무용은 무용대로 세분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영산재 전수교육조교 일운 스님(옥천범음대학 학장) 역시 같은 의견이다. 스님은 “인천시지정문화재를 보면 나비춤과 바라춤이 나눠서 지정돼 있다”며 “범패든 작법이든 각각의 소리와 춤이 따로 보유자가 지정이 돼서 보다 전문적으로 원형보존을 위해 연구하고 전승토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판소리 다섯 마당이 각각 보유자를 내고 있는 것처럼 영산재도 다섯 분야로 나눠 보유자를 지정해 전승에 힘써야 한다”고 정오 스님(영산재 이수자, 천축사 주지)도 한 목소리를 낸다.
영산재보존회의 세분화 요구에 대해 문화재청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단체 종목으로 지정된 영산재의 경우 영산재보존회 소속 스님들이 모두 문화재인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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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단체 종목은 개인 보유자를 굳이 지정하지 않아도 문화재보호법상 저촉되지 않는다는 해석도 덧붙였다. 단체의 사기 문제 등을 고려해 지금처럼 의식을 이끌 보유자만을 지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했던 홍윤식 교수(동국대 일본학연구소장)도 영산재 기능 세분화에 따른 다수의 보유자 지정 요구는 무리라는데 뜻을 같이했다.
홍 교수는 “시연되는 내용이 거의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영산재로 대표성을 준 것으로 충분하다”며 “영산재를 세분화해 보유자를 더 내거나 상주권공 시왕각배 영산재 수륙재 예수재 등 다섯 마당으로 굳이 나눌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영산재 어떻게 이뤄져 있나?
영산회상을 재현해 영혼 천도와 중생 제도를 실현하려는 불교 의식 영산재는 13단계로 진행된다. 전체를 다 시연할 경우 꼬박 하루가 걸린다.
영산재의 13단계는 ▲시련(施輦)-불보살 및 천도할 영혼 모시기 ▲대령(對靈)-영혼에게 무명과 업보를 깨우치도록 불법 일러주기 ▲관욕(灌浴)-삼독(三毒)으로 더럽혀진 업장을 녹이는 목욕 ▲조전점안(造錢點眼)-영혼이 저승서 지닐 금은전과 경함(經函) 점안ㆍ이운의식 ▲신중작법(神衆作法)-도량을 옹호하는 신중 모시기 ▲괘불이운(掛佛移運)-야외 괘불단 설치 ▲상단권공(上壇勸供)-영산회상 부처님을 모시고 공양 올리기 ▲식당작법(食堂作法)-모든 영혼에게 부처님의 법식 베풀기 ▲운수상단권공(雲水上壇勸供)-상단 불보살전에 공양 올리기 ▲중단권공(中壇勸供)-명부의 지장보살 도명존자 무독귀왕 십대명왕 등에게 공양 올리기 ▲신중퇴공(神衆退供)-신중전에 공양 올리기 ▲관음시식(觀音施食)-지옥고 중생을 불법승 삼보에 귀의시키기 ▲봉송(奉送) 및 소대의식(燒臺儀式)-상단의 불보살, 중단의 신중, 하단의 고혼 순으로 모시고 소대로 나가 봉송하기 등으로 구성된다.
이 의식들은 불교성악인 범패와 불교의식무용인 작법무로 진행된다. 범패는 안채비 바깥채비 홋소리 짓소리로, 작법은 바라춤(7가지) 나비춤(18가지) 타주춤 법고춤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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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산재 무형문화재 지정 관련 일지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범패 지정. 당시 범패의 운공ㆍ송암ㆍ벽응 스님이 최초로 무형문화재가 됐다.
1982년 운공 스님 입적
1987년 영산재 단체 지정. 영산재보존회가 영산재 관리 단체로 지정됐다. 이와 함께 범패 장엄 작법무로 분야를 세분화해 장엄 부문에 지광 스님, 작법 부문에 일응 스님 등이 각각 보유자로 지정됐다.
1996년 지광 스님 입적
2000년 송암ㆍ벽응 스님 입적
2003년 일응 스님 입적
2005년 범패 부문 구해 스님 보유자 지정
2005년 현재 전수교육조교는 일운ㆍ기봉ㆍ송강ㆍ경암ㆍ동주ㆍ동희 스님.
■ 무형문화재 심사 과정 및 절차
문화재청의 무형문화재과가 무형문화재에 관련된 모든 것을 관리한다. 무형문화재를 선정하기 위해서 거치는 절차는 모두 여섯 가지. 한 사람의 보유자가 탄생하기까지 최소 6개월에서 5년 정도가 소요된다.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정 신청이 들어오면 관계전문가의 의견수렴 및 문헌ㆍ현지조사 등 1차 조사를 한다. 조사 결과는 문화재위원회 심의에 올려 지정조사 실시여부를 결정한다. 조사전문가 기량평가 대상자 선정도 이때 이루어진다. 지정조사는 문화재전문위원ㆍ문화재위원ㆍ관계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조사단이 맡는다. 조사의 객관성 유지를 위해 소위원회를 구성, 관리감독 하게 된다. 이와 함께 조사대상자는 기·예능의 실연내용과 전승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 연구해 평가한다.
지정조사가 완료되면 문화재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재조사 여부를 결정한다. 문화재위원회의 검토에서 통과하면 30일간의 예고 과정을 거친다. 이 기간동안 이의제기가 발생하면 문화재위원회의 재심의가 이루어진다. 이의제기가 없으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고시된다.
한 가지 분야에서 무형문화재가 되기까지 개인이 걸어야 할 길은 어떨까.
우선 각 분야에서 교육이나 일대일 전승을 통해 기ㆍ예능을 배운다. 그 이후 전수자로 5년, 이수자로 3년 등의 과정을 거쳐야 전수교육조교 후보가 될 수 있다. 전수교육조교로 지정되면, 이들이 이후 보유자 지정시 후보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