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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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아! 우리 목소리 듣고 힘내"
“슬플 때 나에게 오너라. 위로받고 싶을 때 나에게 오너라. 나는 언제까지나 네 곁을 떠나지 않아.” <꼬마판다의 깨달음> 중에서

나이어린 불자들이 앞 못 보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불서(佛書)를 직접 구연하고 녹음도서로 만드는 음성공양에 나섰다.

음성공양에 참가한 어린이는 은석초등학교 불교반 연화회 회원 36명이다. 이들은 어린이용 불교동화인 <행복해지는 거울><꼬마판다의 깨달음><이 땅에 오신 석가모니>를 읽는 녹음봉사를 지난 11월 10일과 26일, 2차에 걸쳐 펼쳤다.

은석초등학교 불교반 연화어린이회 학생들이 11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녹음실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도서를 CD로 제작했다.
11월 30일 서울 서대문구 ‘서라벌 녹음실’에 모인 아이들은 지도법사인 송현 스님에게 매달려 연신 장난을 쳤다. 그러나 녹음을 하기 위해 스튜디오로 들어가자 두 눈을 반짝이며 진지한 모습으로 목을 가다듬는다. 모두 낭독봉사에 참가하기 위해 치열한 오디션 과정을 거치고 선발된 아이들이다.

“하고 싶다고 자원한 친구가 많았는데 제가 뽑혀서 정말 기뻤어요”라고 3학년 민경이는 말했다. 곁에서 성윤이는 “전 합창대회에서 동요 부르는 실력을 인정받아서 오디션 거치지 않고 바로 뽑혔어요!”라고 자랑한다.

“자, 다른 사람들은 소리 내지 않도록 주의하시고, 처음부터 녹음하겠습니다. 해설, 큐!”

녹음감독이 손으로 큐 사인을 보내자 마이크를 앞에 두고 앉아 있던 4학년 경현이가 <꼬마판다의 깨달음> 대본을 읽기 시작한다.
다른 어린이들은 행여 녹음에 방해라도 될까봐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하고 대본도 조심스럽게 넘긴다. 그래도 녹음은 순조롭지 않다.

발음을 지도하는 은석초등학교 최성희 교사는 어린이들이 잘못 발음하거나 조그만 잡음이라도 들리면 어김없이 불호령을 내린다.

“상윤아, 너 방금 전 발음할 때 혀가 엉켰잖아. 입술과 혀에 더 힘주고 발음 또렷하게!”

“라경아, 너는 긴 지문을 읽으면 호흡이 가빠져서 나중에는 점점 빨리 읽어. 그러면 다른 아이들하고 속도에서 차이가 나니까 호흡에 주의해야해.”

“동규는 오늘 왜 그렇게 목 상태가 안 좋지?” “감기 걸렸어요.” “성우로 뽑혔으면 목 상태에 신경써서 감기를 조심했어야지!”

급기야 녹음이 잠시 중단되고 4학년 동규가 스튜디오에서 나왔다. 하지만 동규는 “꼭 낭독봉사를 다 마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결국 임시방편으로 따뜻한 물로 목을 축이고 코를 푼 뒤에야 다시 스튜디오로 들어 수 있었다.

음성공양을 하고 있는 어린이.
동규는 “어려운 이웃에게 내 목소리로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스님이 말했을 때 놀랐다”고 말했다. “시각장애 친구들에게 내 목소리가 선물이 됐으면 좋겠어요.”

낭독봉사는 장시간 정확한 발음으로 책을 읽고 구연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성인봉사자들이 주로 활동하는 영역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녹음도서는 지금까지 성인을 위한 책이든 어린이를 위한 책이든 어른들에 의해 녹음돼왔다.

그러나 지도법사 송현 스님의 생각은 달랐다. 평소에도 연화회 학생에게 ‘보시행’을 강조하는 스님은 “어린이 책은 어린이가 녹음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계기로 어린이들이 ‘봉사를 실천하는 삶’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때부터 송현 스님은 어린이들에게 낭독봉사방법을 지도해줄 불교계 봉사자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나도 불교계에서 낭독봉사자를 찾을 수 없게 되자 스님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음성공양 방안을 찾기에 나섰다. 동화작가이기도 한 은석초등학교 이슬기 교사는 좋은 불서동화책을 선정했고, 최성희 교사는 아이들의 발음을 지도했다. 또 아이들은 매일 점심시간마다 모여 낭독봉사 연습을 했다.

<이땅에 오신 석가모니>에서 춘다역을 맡은 라경이는 “점심에 친구들하고 노는 대신 녹음연습을 했지만 재밌었다”며 “내년에도 낭독봉사하면 꼭 참가할거예요”라고 다짐했다.

연화회 학생들과 지도법사 스님의 뜻을 듣고 각계에서 지원도 잇따랐다. ‘어린이는 낭독봉사자로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시각장애인도서관 녹음실 사용을 거절당하자 서대문구의 작은 녹음실에서 장소를 제공했다. 대여비는 연화회학부모들이 십시일반으로 낸 회비로 충당했다. 또 CD제작에 들어가는 그림과 동화저작권은 BB출판사에서 무료로 보시했다. 녹음도서 배경음악도 풍경소리가 지원했다.

이렇게 온정이 모여 제작된 녹음도서는 전국에 42곳 있는 시각장애인도서관과 맹인학교에 무료로 배포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책을 읽을 수 없는 환자나 노인, 미취학 아동도 녹음도서를 들을 수 있도록 불교 병원과 노인복지시설, 불교유치원 등에도 보내진다.


■은석초등학교 연화회는

은석초등학교는 불교계에 유일한 초등교육기관이다. 초등학교는 의무교육기관이기 때문에 종교를 수업시간에 가르칠 수 없고 전임교법사도 따로 둘 수 없는 것과는 달리, 은석초등학교는 연화 어린이회(이하 연화회)를 중심으로 종교활동을 펼치며 교계 유일의 종립 초등학교의 위상을 떨치고 있다.

연화회의 회원은 200여명에 이른다. 전 학년이 모여서 법회를 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일주일에 3번 나눠서 두 학년씩 법회를 보고 있다. 교법사는 뜻있는 동국대 학인스님과 자원교사가 맡고 있다.

가족수련법회, 수계법회, 수련회 등 다양한 활동도 펼치고 있으며 연화어머니회와 교직원도 매월 합동법회를 봉행하고 있다.

은석초등학교 연화회를 4년째 이끌고 있는 지도법사 송현 스님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교리를 지도하고, 불교적 체험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불교를 배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직접 느끼고 체험하도록 강조하는 스님의 교육철학 덕택인지, 연화회 아이들은 일찍부터 보시행을 실천하는 일에 익숙하다. 이번 불서 녹음도서 제작에도 아이들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고, 연화회 회장인 정연형(은석초 6) 양은 장학금의 절반을 복지시설에 쾌척하기도 했다.
글=이은비 기자ㆍ사진=박재완 기자 | renvy@buddhapia.com
2002-01-01 오전 3: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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