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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부처님은 연기법을 깨달았던 분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불교의 세계관은 많은 인(因)과 연(緣)이 조건에 의해 만나 서로 관계하며 과(果)를 생산하는 연기법에 입각해서 세상이 유지되고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또한 부처님은 연기법에 입각한 최고의 지혜인 중도의 실천을 갈파했다.
따라서 아직 불법을 모르는 우매한 중생이 아닌 불자라면 법에 따른 올바른 연기를 항상 고민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배아줄기세포연구는 과연 올바른 연기일까?
불교의 인간관에 비춰 보면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교수들의 논점처럼 배아줄기는 유정(遺精ㆍ살고자하는 의지를 가지고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며 인간이 될 가능성을 가진 생명체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일부에서처럼 이러한 존재를 이용하는 것은 살생이므로 비윤리적이라는 견해는 극단적이다. 더구나 최근의 논란을 보면 원론적인 부분만을 놓고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 같다.
하지만 불자라면 당연히 불교의 인간관 뿐 아니라 불교의 세계관도 고려해야 한다. 즉 인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연의 의한 과 역시 유심히 살펴야 한다.
지금의 생명윤리 논란은 황우석 교수가 배아줄기 세포를 어디에 사용하며 이것이 인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사회는 무엇을 원하는지를 간과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난자는 정자와 수정되어져야만 인간이 된다. 많은 난자들중에 한 두 난자를 제외하면 모두 자연사할 운명인 것이 현실이다. 난자를 가진 인간이 난자에 생명성을 부여할 의지가 없다면 자연사될 난자를 더 훌륭한 가치의 존재로, 인위적인 연기를 실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불교의 논리요, 불교가 권장하는 가치다.
따라서 필자가 생각하기에 인자(因者)를 살생하는 죄를 범하더라도 사람을 살리는 복을 지을 수 있다면 이것이 더 훌륭한 사회적 윤리다. 부처님도 자신의 목숨을 바치고 무수한 공덕을 지었다.
난자에게도 이러한 공덕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불교의 생명관이며 윤리관이며 중도의 실천이라고 본다.
인을 살생하는 죄를 범하면서도 사람을 살리는 복을 짓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는 황우석 교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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