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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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들요, 인재불사 활짝 꽃피웁시더”
불교인재 키우는 ‘영원한 꽃보살들’ 일념장학회


왼쪽부터 법성화 지명심 대원행(현 재단법인 일념장학회 이사장) 일념행(일념장학회 부회장) 대자행 보살.
“형님요, 이번 전시회 잘 돼야 됩니다. 저는 밤에 잠이 안 와요.”
“걱정 마라. 다 부처님 빽으로 하는 일인데 뭐가 걱정이고?”
“이번 전시회에 오시는 분들은 복이 많은 분들이지. 어디서 큰스님들 향기가 서린 선서화를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만나볼 수 있겠노?”

젊은 연인들이 즐겨 찾은 부산 달맞이 고개 ‘언덕위의 집’에 모여 전시회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는 노보살들은 재단법인 일념장학회(이사장 이대원행·68) 이사들이다. 이들에게 ‘언덕위의 집’은 장학회 심부름으로 동분서주하는 최미타월 총무가 운영하는 곳이라 안방처럼 편안한 곳이다. 제일 형님인 조지명심(80), 이법성화(80) 보살과 임대자행(77), 구일념행(68), 이대원행(68) 보살.

이들은 12월 9일부터 13일까지 영광도서 갤러리(051-816-9500)에서 열리는 전시회 준비에 한창이다. 일념장학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회원들이 소장하고 있던 큰스님들의 선서들로 기획하게 된 전시회다.

30년.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이어온 장학회이고 인연들이고 보니 둘러앉으면 어느새 옛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정말 젊고 고왔던 그 때’가 1971년이었다.

통도사 극락선원 경봉 스님을 찾아 불법을 공부하던 11명의 보살들이 ‘십일면관음보살의 원력을 닮으라’던 경봉 스님의 말씀을 따라 ‘일념회’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신행봉사모임으로 시작됐던 일념회가 장학사업을 시작한 것은 30년 전, 어느 비구니스님의 공부를 도우면서부터다. 현재 시카고 불심사에서 포교중인 법춘 스님이 일본 대정대학원에 유학 할 때 학비를 도운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틈만 나면 주위의 어려운 이들을 찾아 나섰고, 학비가 필요하다면 쌈지돈을 풀어놓았다. 부처님오신날 밀가루 공장을 하는 회원의 특별제작으로 밀가루 봉투에 법구경을 새겨 나눠주기도 했고, 봉암사 해인사 등 선방 대중공양은 물론 삼보사찰과 운문사에는 팔만대장경을 기증하기도 했다. 특히 승가 교육에 각별한 정성을 기울여온 이들은 승가대학 학비지원을 한해도 거르지 않았다. 학비를 지원하고 돌아서면 또 도와야 할 사람이 보이고, 눈만 돌리면 또 어려운 사람이 있고, 일념장학회의 할 일은 끝이 없었다.

착한 중생을 보면 자심(慈心)을 일으키고 악한 중생을 보고는 비심(悲心)을 일으키면서 중생을 끊임없이 제도하는 십일면관세음보살의 마음처럼, 때론 안타까운 현실에 눈물짓고 때론 미소 지으며 한달음에 달려온 시간이었다. 어느덧 갓 서른을 넘겼던 꽃다운 청춘은 가고 칠순,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지난해에는 초대 이사장이었던 양선법장 보살이 팔순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1명의 창립 회원 중 단 3명이 남았다. 그러나 오히려 일념장학회의 정신은 더욱 옹골차졌다. 관음보살의 원력을 닮으려는 보살들이 끊이지 않았고 회원은 16명으로 늘어났다. 10년 전 재단법인 등록한 일념장학회는 최근 대원행 보살이 이사장을 맡으며 젊은 회원 8명을 영입해 총 23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장학회로 재도약하고 있다. 한 스님에게 같이 법명을 받은 법의 형제로 출발해 이제는 부처님 일불제자로 친자매보다 더 깊은 인연을 이어가는 도반이 된 것이다. 허물없이 살가우면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이 두텁기 그지없다.

뒷줄 맨 왼쪽이 법춘 스님. 그 옆이 대자행 그리고 창립회원들.
“형님들의 묵묵한 행을 보면서 많이 배웁니다. 공부 뒷바라지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제 공부를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됩니다.” 일념장학회 부회장 구일념행 보살의 말처럼 일념장학회 회원 한사람 한사람의 신행도 30년 전통만큼이나 정평이 나 있다. 통도사 재가선방에서 한해도 거르지 않고 안거 정진하는 지명심 보살과 범어사 보살선원에서 정진하는 대자행 보살 등은 불법이 곧 삶이 된 일념회의 상징 같은 존재다.

“불법이 좋다는 확신이 없었다면 평범한 보살들의 힘만으로 장학회를 30년이 넘도록 이어 오기 힘듭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불법을 널리 펴야 하다는 마음이 지극해져서 나이 드는 것도 잊어 버려요.” 바로 전의 이사장이었던 대자행 보살은 스님들 공부 뒷바라지라면 뭉치돈을 마다않고 내며 솔선수범을 보이는 회원이다. 집 기둥뿌리 몇 개는 뽑아서 불교 집안 인재양성의 기둥을 세우는데 쓴 셈이다.

“내 돈이 아니잖아요? 돈이 생기면 불교 위해 쓰는 겁니다. 헛된 곳에 쓰지 않으니 부처님께서, 쓴 것보다 더 많은 돈이 생기게 해줘요. 그러면 또 심부름꾼으로 쓰고,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이죠. 다 부처님하시는 일이니 이번 전시회도 잘 될 거라 믿어요.”

다시 전시회 얘기로 돌아가고 있다. 장학기금 1억원 조성을 목표로 무작정 시작한 일이고 보니 걱정이 앞선다.

“장학금을 한사람이라도 더 주고 싶어서 방법을 찾다가 큰 스님들께 받은 선서화가 생각이 났어요. 나 혼자 방에 두고 보면 뭐하겠나, 더 많은 이들에게 큰스님의 선향이 서린 글씨도 보여드리고 또 장학 기금도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이대원행 이사장이 큰스님들과의 인연으로 받아서 일생동안 애지중지 간직해왔던 선서화 30여점을 내놓자 회원들도 앞다투어 작품을 내놓았다.

안방에 걸어두었던 소장품부터 깊숙한 곳에 간직해왔던 탄허·경봉·일타 스님의 글씨, 무불 스님의 8폭 반야심경 병풍, 환경 스님이 91세 때 쓴 천수다라니 병풍까지, 여느 전시회에서는 만날 수 없는 작품들이 쏟아졌다. 회원들의 이러한 뜻이 전해지자 극락암 명정 스님도 지금껏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경봉 스님 작품 3점을 선뜻 내놓았다. ‘더 많이 주고 싶어서’ 시작한 전시답게 정관·고산 스님 등 큰스님들이 직접 사인한 부채 5백 개를 전시회에 오시는 분들을 위해 선물로 따로 준비해놓았단다.

“얼마 전 전시회 때문에 소림사를 찾아갔어요. 그곳 주지스님께서 맨발로 달려 나와 맞으면서 일념장학회 장학금 받고 공부했다며 인사를 하는 겁니다. 우리는 몰랐죠. 고맙고 반갑기 그지없었어요. 또 다시 30년, 아니 3백년이 지난 뒤 우리는 가고 없어도 일념장학회가 뒷바라지한 인재들이 불교를 이끌어나가고 있다면 그게 바로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이죠.”

피는 꽃만큼 지는 꽃도 아름답다.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열매 맺는 순간, 그 절정의 아름다움이 일념장학회 회원들의 얼굴에 가득하다.
글·사진=천미희 기자 |
2005-11-28 오후 4: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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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이 바뀌었습니다. 수정부탁합니다
(2005-11-29 오전 2: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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