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 종합 > 기획·연재
진흙 속의 진주 한 알 下
현대불교신문 연재 - 불자 신행수기

나는 곧바로 딸을 차에 싣고 대학교로 달려갔다. 학교는 이미 인산인해였고 원서 마감시간은 40분이나 지났지만 수위아저씨께 사정을 얘기하고 간신히 학교로 들어가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접수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은 “어머니! 정말 부처님이 계시는 것 같아요. 내가 간절하게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며 ‘제발 우리 어머니 좀 저에게 보내주세요. 저 혼자는 도저히 못 갈 것 같아요’라고 기도했더니 어머니가 제 앞에 나타나셨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간절함과 절박함이 어린 가슴을 다 녹이고 있을 때 내가 앞에 나타났으니 그대로 힘을 잃고 쓰러졌던 것이다.

원서를 접수한 후 나는 딸아이의 합격을 기원하기 위해 100일 기도를 시작했다. 책만 보며 혼자 공부하는 나에게 한 보살님이 ‘기도를 많이 하라’고 충고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100일간 매일 밤 12시에서 다음날 새벽 1시 30분까지 기도를 하기로 했다. <천수경> <관세음보살보문품> <금강경> <이산혜연선사발원문> <반야심경>을 각각 일독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체력이 워낙 약한 나로서는 한 달도 못되어 몸에 이상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잠이 억수같이 쏟아졌고 앉아 있을 때도 혼침으로 인해 몸이 앞뒤로 정신없이 흔들렸다. 어떤 때는 헛소리도 나오고 혀가 굳어져 독경을 할 수가 없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누우면 영 자버릴 것 같아 앉은 채 졸다가 새벽 5시가 될 때도 있었다. 비몽사몽 시달리면서 100일을 마치고 열흘 넘게 누워 지냈다. 이런 모든 노력들이 부처님도 불쌍하셨던지 내 딸에게 합격의 영광을 주셨다. 정말 어떻게 세상에서 거저 얻어지는 게 있을까? 시방세계 두두물물이 다 합당한 근본을 갖추고 있지만 우리는 믿지 않아 알지 못한다.

내 아들은 딸에 비해 공부를 잘 못해 대학교를 못가고 상고를 나와 취직을 했다. 그러나 엄마 마음은 늘 아쉬워 이제는 아들을 위해 한 번 더 기도를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2년 동안 기도를 하기로 했다.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이 빈약한 몸과 정신으로 최선을 다해 기도하는 것 밖에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군대에 있었던 2년간 기도를 했다. 아들은 입대한 후 육군사관학교 조교로 배치되었다. 그러나 2년간의 군생활은 아들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인상도 너무나 사납게 변해졌다. 사람이 환경에 그토록 민감한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본 딸은 “군에 가기 전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돈이 있으니 그 돈으로 공부시키는 셈 치고 보육교사교육을 시켜보자”고 제안했다. 아들도 자신을 걱정해주는 누나의 의견을 받아들여 또 다른 세상을 시작했다. 보육교사과정은 일년이었다. 교육 담당교수는 모 전문대 유아교육과 교수로, 아들을 너무나 잘 챙겨주고 도움도 많이 줘 생각 이상으로 아들이 잘 해낼 수 있었다. 교육을 이수한 다음해에는 교수님의 조언대로 전문대학 유아교육학과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하기도 했다. 아들은 대학 2년 동안 과대표로 왕성한 활동을 했고, 졸업할 때는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4년제 대학에 편입해 졸업을 했고 지금은 유치원 체육교사로 일하며 같은 과 여자친구와 사랑을 키우고 있다. 딸도 같은 학교 선생님과 새해에 결혼을 할 예정이다.

정말 우러러 예경합니다. 지혜충만하신 거룩한 님이시여. 이 불연의 가피를 어떻게 회향해야 마땅하겠습니까? 부처님은 나를 수행자로 거듭 태어날 수 있게 하고 물러남이 없는 길에 들게 해 주신 것이다.

어느 날 동화사에 다니는 한 신도가 <한마음요전>을 나에게 주었다. 당시 나는 대행 큰스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한마음선원의 선원장 스님으로 주인공이란 화두를 주심으로써 우리 도반들의 갈 길을 밝혀주시는 분이란 것도 현대불교신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한마음요전>을 읽고서 큰스님의 불연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행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비참하고 처절한 인욕 속에서 잃지 않은 미세한 빛이 있어 꺼질 듯 하다가도 다시 피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큰스님의 행장을 읽으면서 내가 살아오는 동안 죽었다가 살아남이 몇 백번일까, 수도 없이 흘린 눈물이 얼마며 죽고 싶은 마음 비일비재였는데 내 것에 비할 것인가, 큰스님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그렇게도 모질게 이 인고의 땅에 오셨을까 나는 그냥 눈물이 흘렀다.

부처님이 그냥 오셨을 리 없고 또한 역대 조사님들과 대행 큰스님이 그냥 이 땅에 오셨을 리 만무한 일. 분명히 모든 성현님들은 처절한 자비실천으로 지혜를 닦아야 한다는 것을 보이시기 위해 오셨으리라. 이제 내 생애도 불연을 지은 바, 꿋꿋이 나아갈 바를 알게 되었다.

기쁘면 기쁜 대로 그대로 두고 슬프면 슬픈 대로 그냥 그대로 나아가자. 하늘이 돕고 땅이 돕는 가피원력이 늘 이어짐을 어찌 글로 다 나열할 수 있을까? 나 역시 그 가피 그 은혜 오직 부처님전에 회향하는 일 외에 더 무엇이 있을까?

나는 이제 부족하지만 내가 먼저 올곧게 수행하고 이타행을 하려는 각오를 하고 대구불교대학에 입학했다. 열심히 강의에 출석해 듣고 배우는 학업에 충실하고 있으며 대승경전반인 대학원도 같이 등록해 수업을 받고 있다. 내년에는 졸업과 동시에 포교사시험까지 마칠 예정이다.

또한 나는 현재 변두리 작은 동네에 노스님 한 분과 노공양주 한 분이 살고 있는 작은 사찰에서 매주 월요일 백팔참회기도를 집전하고 있으며 한 스님의 사찰운영후원을 맡고 있다. 내년에 두 학급을 졸업하면 조건이 어려운 외각의 사찰에서 요일법회를 활성화하는데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그리고 또한 사후 이 몸뚱이는 경북대 병원에 기증돼 해부실습용으로 쓰일 것이다.

내 생에 이제 갈 곳이 뚜렷하게 정해진 길 그 길은 오직 부처님 회상에 들어가는 길이며, 올바른 정도(正道)에 회향하는 것이며 도반들과 부족하지만 애쓰는 마음으로 법담을 나누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두려움이 없는 대자유의 수행인이 될 것이다.

이제 나는 15년 전에 비구 스님께 받은 숙제인지 화두인지 알 수 없는 ‘진흙 속의 진주 한 알’을 찾는 일을 제대로 해볼 것이다. 어쩌면 지금은 노출시킬 수 없는 한 알의 완성을 위해 제 살갗에 상처를 내고 살을 에는 인욕을 거듭하며 한 알의 완성을 위해 단단한 살을 채우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진주의 빛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결하며 은은한 빛으로 맺어진 진주의 성질은 부드럽고 온유하다. 나 또한 이러한 빛과 같이 나와 남이 이익되게 수행하여 많은 이들과 이 빛을 함께 할 것이다.

진흙 속의 진주 한 알이 고통의 결정체로 완성되듯이 나는 기어이 부끄럽지 않은 수행자의 진면목을 갖춘 후 한 알의 진주는 찾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을 알았으니 반드시 만들어서 부처님께 공양 올려 보은의 회향을 하리라. 이 다짐 변하지 않게 하여지이다. 마하반야바라밀.
류복희(대구 북구 산격 1동) |
2005-12-02 오전 9:02:00
 
한마디
닉네임  
보안문자   보안문자입력   
  (보안문자를 입력하셔야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내용입력
  0Byte / 200Byte (한글100자, 영문 200자)  

 
   
   
   
2024. 11.23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