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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간화선의 위기’라는 말이 자주 회자된다. 위빠사나를 필두로 다양한 수행법이 유행하면서 ‘최상승법’으로서의 지위가 흔들리는 데 대한 위기감의 표현이다. 과연 그 같은 ‘위기’의 본질은 무엇이며 해결책은 무엇일까.
11월 26일 서울 법련사에서 열린 보조사상연구원(원장 법산)의 제4회 국제학술대회는 이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기 위해 개최됐다. ‘간화선 수행전통과 현대사회’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는 박성배 교수(미국 스토니브룩대), 라이용하이 교수(중국 난징대), 니시무라 에신 교수(일본 하나조노대), 종호 스님(동국대 교수), 서명원 교수(서강대)가 간화선 위기의 원인을 진단하고 한·중·일 아시아 3국과·미국·유럽에서 간화선이 차지하는 위상과 발전 가능성을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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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정신 되찾아야
학술대회는 간화선의 위기 진단으로부터 시작됐다. 기조강연을 맡은 박성배 교수는 간화선 위기의 본질을 간화선이 위축되는 현상이 아닌, 화두 본연의 정신이 퇴색했다는 데서 찾았다.
박 교수는 “사람들이 화두 들고 참선한다면서 말장난만 일삼고 있기 때문에 위기”라는 말로 오늘의 수행풍토를 강하게 질타했다.
박 교수는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중생을 즉시 부처님 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을 화두정신으로 설명하며 “그 같은 화두정신만 있다면 새벽녘에 떠오르는 샛별도 화두요, 봄에 피는 꽃, 가을에 지는 낙엽 등 모두 화두 아님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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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큰 문제는 오늘날 수행풍토에서 그 같은 화두정신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박 교수의 지적이다. 박 교수는 이 같은 병폐의 원인으로 화두를 하나의 ‘방법’으로 보는 견해를 들었다.
3자 입장에서 말하면 화두가 방법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말길이 끊어지고 뜻 길이 끊어지고 마음 길이 끊어진 경지에 들어갔다면 화두를 방법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
박 교수는 “화두를 방법으로 보는 것은 선에 대해 점(漸)적인 이해를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라며 “시간의 틀 속에 갇힌 점적인 접근은 화두를 방법으로 보게 하고, 그런 방법을 통해 깨침은 나중에 이뤄져야 할 ‘어떤 것’이 돼버려 화두와 깨침을 둘로 만든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간화선을 절대화하기보다는 화두정신을 지키면서 각자 자기에게 맞는 수행을 택할 수 있도록 문호를 활짝 개방하는 것이 부처님 뜻에도 맞고 다원화 시대에도 맞다”고 강조하며 “간화선이라는 이름에 얽매이기보다는 화두정신만 갖고 있다면 그게 조계종이고 간화선이라는 정신혁명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최병헌 서울대 교수도 “간화선의 역사는 도그마를 깨는 과정"이었다고 밝히며 도그마에 갇혀버린 간화선의 현실을 비판했다. 최 교수는 “당송대나 고려대의 간화선이 아닌 오늘날 우리 각자에게 해당하는 간화선이 돼야한다”며 “화두를 그본적으로 재검토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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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 해외에서는… ‘비인기’
박성배 교수의 기조강연에 이은 해외 동아시아국가들과 미국·유럽의 간화선에 대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유럽과 미국에서는 티베트 불교의 위세에 밀려 간화선 보급이 저조하며, 일본과 중국조차도 간화선을 수행하는 이들은 매우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처럼 불교가 새로이 뿌리내리고 있는 곳에서는 간화선이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니시무라 에신 교수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서 최대 규모의 교단을 형성하고 있는 종파는 조동종으로 묵조선의 계보를 잇어 간화선과 구별된다. 대혜종고( ~ )의 간화선을 계승한 곳은 백은혜학(白隱慧鶴, 1685~1768)으로부터 발전해온 일본 임제종이다. 하지만 임제종의 백은선은 한국의 간화선과 차이가 있다.
백은선은 공안의 체계화를 특징으로 한다. 즉 선의 수행과정에 커리큘럼을 설치하고, 이에 따라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올라가는 것이다. 백은혜학은 공안을 △불조가 설한 말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것 △견성오도한 조사들의 일상에 의미를 추구하는 것 △현실생활 가운데서 법을 보는 것의 세 종류로 나누고, 이를 더욱 세분해 다시 배열해 화두 하나하나를 참구해나갈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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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일본 임제종에서 행해지는 공안 수행은 △법신:진정한 실재를 탐구하는 공안 △기관(機關):법신에서 얻은 견해를 일상세계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추구) △언전(言詮):깨달음의 내용을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공안 △난투(難透):깨달음의 경지를 연마하기 위한 공안 △향상(向上):깨달은 경지를 모두 버리고 깨달음의 귀신굴로부터 나오게 하기 위한 공안 △동상오위(洞上五位):지금까지의 깨달음의 내용을 이론적으로 점검하기 위한 공안 △십중금계(十重禁械):삼취정계 등을 선의 입장에서 검토해서 일상의 지계를 연마하는 공안 △말후(末後)의 뇌관(牢關):특별히 정해진 공안은 없음. 최종점검을 위한 것 등의 단계로 돼 있다.
중국의 간화선을 소개한 라이용하이 교수에 따르면 중국에서 간화선은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의 불교는 ‘지금 이 자리에서’ 인격의 완성을 지향하는 인간불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수행방법으로는 섭심관정(攝心觀淨)과 염불선이 대표적이다. 인간불교는 20세기 초 현세중심의 불교를 표방한 태허(太虛) 스님이 주창한 것으로 중국과 대만에서는 그 영향이 크게 남아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불교가 아직 교세가 약한데다 불교라 해도 티베트 불교의 위세에 눌려 간화선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명원 교수에 따르면 유럽에서 선수행을 하는 교단은 일본 조동종의 타이센 데시마루(1914~1982)가 세운 국제선협회(AZI)와 하쿤 야수타니(1885~1973)가 세운 삼보교단, 틱낫한 스님의 베트남식 선수행단체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삼보교단의 수행자가 가장 많은 1만5000명선이다. 숭산 스님(1927~2004)의 관음선종이 유럽에 30여개의 선원을 두고 있지만 삼보교단의 교세에는 미치지 못한다.
미국에서도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다. 미국 스토니브룩대학에서 최근 1년간 연구교수로 체류했던 종호 스님에 따르면 간화선 수행은 “위빠사나와 묵조에 이어 맨 뒤에 자리”하고 있다.
종호 스님은 임제선을 표방하고 있는 죠수 로시(1907~)나 스즈키 선사(1870~1966), 숭산 스님 등 대표적인 간화선사의 경우를 살폈는데, 이에 따르면 이들 스님의 지도방법은 간화선의 돈오돈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묵조선·염불·진언·간경 등 다양한 방법을 함께 사용하면서 단계적으로 지도하는 변용된 방식을 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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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 전망 어둡지는 않아
이처럼 한국에서는 최상승법으로 인정받는 간화선이 한국 밖에서는 아직 별로 알려지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그 전망은 어둡지 않다는 것이 서명원 교수의 주장이다.
서 교수는 “인도의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정착하는 데 200여년이 걸렸듯이 불교가 서양에 토착화하는 데도 수 세기가 걸릴 것”이라면서도 “서양에서 불교의 미래는 밝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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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교수가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서양 기독교의 은수생활(隱修生活)이 간화선 수용의 밑거름이 되고 있으며 기독교의 위기가 간화선 수용에 유리한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은수생활은 숨어서 고행과 절제를 하고, 호흡에 맞춰 자나 깨나 예수님의 이름을 외우는 마음의 기도를 기도방법으로 삼는, 일종의 기독교 쇄신운동. 마음의 기도가 간화선과 통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 서 교수의 견해다.
서 교수는 “진리의 역동성을 상실하고, 추상화·절대화되고 있는 기독교를 쇄신하는 데 간화선이 큰 자극이 될 것”이라며 “불교와 기독교가 공존해야하는 오늘의 한반도 현실은 기독교인을 위한 간화선을 꽃피우는 데 유리한 조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