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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9월 중순. 청도 운문사 승가대학에서 학인 스님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과 9월 6~21일 부산 민주공원 전시실에서 진행한 ‘초록의 공명과 생명의 숨소리’ 전시회가 사실상의 마지막 공식일정이었다. 이후 스님은 휴대폰과 노트북 등을 동생 조경자씨에게 모두 맡긴 채 종적을 감췄다.
조경자씨는 “가끔 스님과 통화를 하고 있지만 정확히 어디 계신지는 모른다”며 “음식물을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아 걱정이 크다”고 전했다.
지율 스님은 11월 24일 천성산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지금 저의 건강은 악화되어 있고 청와대 관계자의 이야기처럼 저는 폭풍우치는 바닷가에 서있는 곧 무너져 버릴 판잣집이 틀림없지만 아름다움과 생기를 잃어가는 천성산의 아픔을 놓을 수 없다”고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한편, 8월 30일부터 정부와 천성산 대책위가 함께 진행한 천성산 환경조사가 11월 30일 종료된다. 구조지질분야를 비롯해 △지하수 △생태계 △암반공학 △지구물리탐사 등 5개 부문에 걸쳐 실시된 공동조사 결과는 보고서로 묶여 대법원에 제출될 예정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 남기명 토목처장은 “공동조사 종료 후에는 천성산에서의 발파 공사가 재개될 것”이라며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경부고속철도의 천성산 관통여부가 최종 결정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11월 24일 지율 스님이 천성산 홈페이지에 올린 두편의 글 전문.
지율스님과 함께 하는 천성산 살리기 홈페이지 가기
부치지 못한 편지
며칠 전부터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 했으나 어떻게 서두를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습니다.
저는 이 창을 지난 청와대 앞의 58일간의 단식 중에 열었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스무 통이 넘는 편지글을, 재판부에 열통의 편지글을 띄웠으며 그 외에 많은 분들에게 편지글을 띄웠습니다.
지난 9월의 순례 때의 일지를 제외하면 자질구레한 이 글들은 대부분 천성산 문제의 직접적인 관계자들과 도롱뇽의 친구들에게 띄운 자질구레한 편지글이었으나 그러나 다시 돌아보니 누군가에게 띄웠다고 생각했던 이 편지 창은 그들과 저의 거리감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 제 스스로의 존재를 들여다보기 위해 만든 작은 창이었으며 부끄러운 독백이었습니다.
스스로의 독백이었기에 저는 이 창을 통해 마음껏 분노하고 슬퍼하며 제 감정에 대하여 여과 없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니 저는 이 창을 통해 화해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마음을 열수도 있고 열었어야 할 순간이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많은 원망과 분노를 가지고 있었지 ........우리는 서로 다른 가리움 (어리섞음)으로 하늘에 가려 땅을 보지 못했고 땅에 갇혀 하늘을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저는 천성의 긴 간천 계곡을 걸어 내려오면서 저를 부른 것은 천성 그 자체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눈이 보고 있는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저는 저의 전 존재를 걸고도 늘 마음은 무너졌지만 이 일은 다만 한 마리의 도롱뇽, 한 비구니의 목숨을 건 사투가 아니라 죽어가고 있는 이 산하와 병들어 가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생명의 역사와 생명의 문화가 사라진 땅에서 아이들이 꾸는 꿈을 들여다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슬픔이 아니라 죄악입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어머니- 지구, 어머니 -산, 생태계의 자궁- 늪, 이라고 부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과학이라고, 발전이라고 부르는 지식과 문화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어머니에 대하여 무감합니다.
저는 정치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지만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는 것이 인간의 역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의 불은 그 원리를 들여다보고 정치는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루는 일이라고, 이러한 이야기는 매우 고무적이겠지만 저는 문득 생각합니다.
철의 장막이라고 했던 소련의 문을 열었던 고르비는 이야기했습니다.
- 자연은 나의 신이며 나무는 나의 성전이며 숲은 나의 대성당이라고, 그는 이어 “나의 사랑은 자연의 신비에서 비롯되어졌다”고, 그의 그런 사상은 그를 소련의 대통령이 아닌 전 세계의 대통령이 되게 하였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며 안자열전에서 사마천이 만일 안자가 다시 살아난다면 지게를 지고 수례를 끌어도 좋다고 하던 말을 생각했습니다.
지난날 정부와 고속철도 공단은 제게 천성산 문제에 대하여 5번에 걸쳐 공식적인 자리에서 약속을 했으며 저는 그 약속들을 단 한 번도 의심하여 본 일이 없습니다.
더구나 그 약속들은 사석에서 했던 사적 발언과 행보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문득,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곤궁은 더 심해졌으며 제가 겪은 아픔과 슬픔의 칼날은 저를 떠나 지금 천성산으로 향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5년 동안 한비구니로서가 아니라 천성산과 천성산의 뭇생명을 대신하여 거리에 섰었기에 님들이 했던 그 약속은 바로 천성산의 뭇 생명들에게 했던 약속이었습니다.
천성산의 가치에 대하여 눈을 뜨게 하기 위하여 줄 곳 주장했던 환경영향평가는 한 비구니가 목숨을 걸고 4년 동안 거리에 서서 호소하고 염원하고 발원했던 일이며 수많은 종교인이 거리에 서고 41만 도롱뇽 친구들이 함께했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월 이후, 다섯 달을 지나오면서 저는 이 사회가 움직이는 보다 큰 동력을 보았으며 줄 곳 ‘어떤 운명“ 앞에 서있는 저와 천성산을 보았습니다.
저와 천성산은 누구도 감히 어쩌지 못하는 정치와 거대한 자본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톱니바퀴의 축에 끼어있었다는 것을 알았으며 권력과 정치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며 그들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진실은 없다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제 몸에는 그들이 지나간 수없이 많은 바퀴자국이 있으며 상처는 오히려 제 안쪽에서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얼듯 보기에 우여곡절을 겪고 공동조사가 시작되었지만 ........ 저는 그 현장에도 갈 수 없었고 그들은 저를 천성산 바깥쪽으로 밀어 내는데 성공한 듯합니다.
3개월 만이라도 공사를 중지하겠다는 약속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은 채 천성산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방금 전 저는 안적암 가는 길이라는 영상물을 만들었고 이 영상물을 만들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이 작은 암자에서 우리는 생명의 대안이란 없다고 하는 전국모임을 가졌으며 그 자리에 김종철교수님과 박병상 박사님, “비단으로 짠 천성산”이라는 아름다운 글을 독일 인지학회에 올려주셨던 리타테일러 교수님과. 부산지역에 계신 많은 분들이 함께하셨습니다.
이 영상물에는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아픔과 천성산이 겪고 있는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지금 저의 건강은 악화되어 있고 청와대 관계자의 이야기처럼 저는 폭풍우치는 바닷가에 서있는 곧 무너져 버릴 판자집이 틀림없지만 아름다움과 생기를 잃어가는 천성산의 아픔을 놓을 수 없습니다.
지난 번 단식 중 제 방을 찾아온 문제인 수석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님들이 이야기하는 개혁과 진보,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생명과 평화는 바퀴의 두 축처럼 함께 가야한다고.......
그때 수석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정치에 발을 딛지 않았으면 저를 위해 변호를 하셨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동안 우리는 너무 먼 길을 돌아 왔지만 저는 그 마지막 믿음을 버리지 못합니다. 저를 위해서가 아픈 우리의 산하를 위해 진실의 법정에서 천성산 문제를 바라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국운은 창성하고 만물은 영원하소서...........
초록의 공명 글정리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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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사분께서 신문을 여러 번 폈다 접었다 했기에 그 기사의 내용을 눈에 담을 수 없었지만 ‘또 지율’이라는 한마디 말은 참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예리하게 제 가슴을 찌르며 들어왔 습니다. 순간적으로 머리 속에 그동안 오랫동안 저를 의지하여 왔던 많은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깊은 산중과 선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도반스님들의 수행과 실천을 욕되게 하고 있다는 참괴함에 가슴이 철컥 내려앉았습니다.
천성산 문제가 여기까지 올수 있었던 것은 자연의 목소리에 화답하고 함께하여 준 41만 도롱뇽 친구들의 믿음과 염원이 있었고 일천년 역사 속에 불법을 지키고 수행했던 스님들을 비롯한 사부대중의 덕행과 수행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참괴함 때문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일정을 미루고 집으로 돌아가 컴프터 앞에 앉아 기사의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기사는 제주 강연 중, 제주팔경의 하나인 삼방굴사 앞에 군항반대 평화행진에 함께하였던 일을 기사화 한 것으로 열흘이나 지난 사건이었는데 마치 새로운 이슈라도 되는 양 찬반 양론의 주제로 각색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확인을 위해 기사를 섰던 조선일보 제주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 기사의 사실관계의 확인을 부탁했습니다. 기자님은 이야기 했습니다. 본인은 기사감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서울 본사에서 기사를 달라고 해서 기사를 쓴 것 뿐이라고, 내용의 사실 확인에 대하여 물었더니 대부분 동아일보를 보고 썼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동아일보를 찾아가 보니 그 기사에는 4700개 가량의 댓글까지 붙어있었는데 찬반 이라기보다는 기사를 쓴 의도와 잘 맞아떨어지는 욕설과 비난의 댓글들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이 댓글들을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사람들의 분노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댓글을 읽어가다가 저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댓글들은 대부분 50명 정도 되는 인원에 의해 하루종일 계속된 글들이었고 두 세시간 동안 한사람이 40-50개의 글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가끔 성지순례, 마녀 사냥이라는 표현이 뛰어 나왔습니다.
주위의 분들께서는 싸이버 수사대에 신고를 하자 했지만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미 이전에 고속철도 공단이 그 중심에 있는 안티 지율카페가 있었고 그들과 연계되어 싸이버 상에 어떤 종류의 내용을 퍼다 나르는 20여개의 조직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문제를 제기 하지 못했던 것은 싸이버 상의 폭력을 행하는 사람들이 공단의 관계자들이라 해도 그들 역시 상처받기 쉬운 개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배후에는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보수언론이 있고 이 시대의 새로운 우상인 기업이 있고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들이 있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즈음하여 고속철도 공단은 공식적으로 5월 마지막으로 양측 전문가들의 합의가 끝난 시점에서 ‘천성산 고속철도 공사 관련 자료집’이라는 책자를 전국에 배포했는데 그 책자는 신문 방송사와 대학, 연구기관, 시민단체와 국회. 법조계 등 천성산 문제에 직.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에 배포되었습니다. 90페이지의 양면 컬러판인 이 자료집에는 지율이라는 인명사가 73회에 걸쳐 기록되어 있으며 싸이버상에 떠도는 천성산 환경회손 현장과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한 내용과 2조원 손실 운운 등 확인되지 않은 수치들로 지면은 메꾸어져 있이었습니다.
공단의 실무 관계자의 한분이 제 홈피에 올린 글처럼 ‘영락없이 넌, 죽었다“고, 했던 글귀가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국무총리께서 말씀하신 최악의 선택이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일을 뜻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저는 공단에서 발행한 책자와 안티 운동의 실무진이 공단의 관리체제아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본부장과 실무자들을 만나 공식적인 사과와 사실 확인에 대하여 요청하였고 그동안의 벌어진 상황에 대한 입장을 전달했으며 전체 대표자 회의를 통하여 이야기를 전달했습니다.
저는 한사람의 신앙인으로 천성산 문제에 관여했으며 이러한 일은 신앙인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사회의 또다른 폭력의 하나인 인터넷 살인이라는 행위를 정부기관에서 주도한다는 것에대한 도덕적 책임을 물었고 전체 회의석상을 통해 공단의 공식적인 사과요청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공문을 통해 그 요청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던 본부장은 총리실의 인준을 거치는 과정에서 공식적인 사과는 불가능하며 책자배포에 대하여 유감 일 뿐이라는 뜻을 전하여 왔습니다.
제가 이 책자와 그들의 행위를 문제 삼은 것은 10개의 보존지역과 역사와 문화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도 없는 진실에 근거한 ‘천성산 고속철도 공사 관련 자료집’이라는 이 책의 표제와 내용처럼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잘 조직되어 있는 정치적 실상은 제가 아니라 천성산이며 이 땅의 뭇 생명과 미래를 볼모로 파괴현장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인 진행과정과 별개로 제가 이 어줍지 않은 글을 정리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제 염려처럼 조선과 동아의 기사가 나간 후에 일부 스님들께서 제 징계문제를 거론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였습니다. 30년 조선일보의 구독자였고 70년대 중반의 백지 지면의 기억 때문에 동아일보를 민족지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저는 그 스님들을 감히 원망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믿어주었던 스님들에게 위로의 구실이라도 찾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시작한 이 작업은 처음에는 마음을 담아주신 분들의 글모음집을 만들었으면 하는 일이었습니다.
마음을 모으면 진실을 담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또한 감정을 숨기는 일에 서툰 저는 이 글들에서 그동안 제게 일어났던 일과 천성산의 일지를 정리하였습니다. 이 글들은 대부분 홈피에 여과 없이 올려 진 글들로 이웃하면서 만나지 못했던 도롱뇽 친구들과 기도로 응답하여 주신 도반들에게 썼던 편지글들이었습니다.
저는 가능하면, 대한 상공회의소에서 발표한 저자도 없는 30조 손실의 유령보고서의 내용과 그 내용을 여과 없이 일제히 실은 중요 일간지의 사설도 싣고 싶었으며 조갑제님의 글과 보수신문들에 실린 사설등 등 다양한 반론의 글도 실고 싶었으나 그 일은 편집하시는 분들의 자량에 맡기기로 하였습니다.
이제 천성산 문제는 위태로운 세사에 맡겨져 있고 제 건강도 악화되고 있습니다.
저를 염려하는 분들께 제 아픔은 천성산의 아픔이며 이 땅의 아픔이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정말로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한번도 천성산을 다녀가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그깐 도롱뇽, 한비구니의 감성적 운동, 극단적 단식으로 여론이 몰고 가는 방향과 이 사회가 가고 있는 방향이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내 최대의 법적 보존지역인 천성산 문제는 마치 연예인의 신변잡기처럼 다루어져 착한 시민들의 호기심 거리가 되었고 때로는 정치적 이분법으로 다루어지면서 민심을 격양시키고 있습니다. 때때로 언론은 가장 가난하고 힘없고 연약한 사람의 분노와 생명을 볼모로 전쟁을 일으켜 실리를 얻는 무기상과 같이 시민들을 정치적으로 격양시켜 민심을 흩트리려 그 이익을 취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기사의 댓글은 찬반이 아니라 비난의 글들이며 그것이 이 사회가 진행하고 있는 방향과 같은 방향이라는 것은 크게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김종철 교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침몰하기 직전의 타이타닉호에 타고 있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시라도 빨리 지속가능한 발전과 경제성장의 실상에 눈을 뜨고 마음을 모아 이 배를 멈추고 죽어가고 있는 국토를 살리고 생명과 문화를 부활시켜 인성을 선하게 돌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은 발전과 성장, 경제 이상의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이제 천성산 문제는 그 진행 방향에서 원점에 섰으며 선한 의지의 역사가 이 땅에 역사하기를, 우리의 미래 위에 무궁함이 함께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