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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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에서 풀려난 아이들에게


“가서 네 아버지에게 재산을 물려달라고 하여라.”

어머니 야소다라가 이 말만 하지 않았다면 라훌라는 스님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라훌라에게 출가생활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형벌과도 같은 나날이었습니다.

정반왕의 손자, 석가모니부처님의 외아들….

이미령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자기 이름 앞에 붙은 이런 수식어만 보더라도 자신이 저 여타의 볼품없는 수행자들과 함께 어울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라훌라는 심하게 반항하였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는 청소년들도 사춘기 시절에는 곱게 자라주지 않는 법인데 저는 라훌라의 그 뾰족한 심보가 십분 이해됩니다.

왕자였던 자신이 하루아침에 빈 밥그릇을 들고 아침마다 밥을 빌러 다니는 신세가 되지 않았습니까. 모두들 자기 앞에서 허리를 굽혔는데 이제는 하루 먼저 출가하였다고 고개를 바짝 쳐들고 다니지 않습니까.

아버지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자리를 사리불 존자가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응석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좀처럼 자신을 살갑게 대해주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라훌라는 마음이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졌고 경전을 보면 이런 라훌라 때문에 아주 많은 이들이 마음고생 몸고생을 하였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그런 라훌라를, 발을 씻은 대야를 가지고서 일깨워주었다는 이야기는 아주 유명합니다.

“발 씻은 물이 담겼던 대야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향긋한 밥을 담으려면 대야를 깨끗하게 씻고 또 씻어야 한다.”
라훌라는 그런 아버지의 따끔한 지적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전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내 마음은 결국 더러운 물이 담겼던 대야에 불과했단 말인가. 내 마음이 그렇다면 결국 내 자신도 그런 천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닌가.’
‘나는 이전에는 왕자였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지내온 결과 지금 자신이 얼마나 가치없는 존재가 되어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오만방자한 자신을 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정반왕의 손자는 이제 없습니다.
석가모니의 외아들도 이젠 없습니다.
오직 철모르고 반항하던,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 한 마리가 가사를 걸치고 교만을 떨고 있었습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순간 라훌라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 후 얼마나 조용하고도 치열하게 수행을 이어갔던지 그에게는 ‘밀행(密行) 제일’이라는 수식어가 새롭게 붙었습니다. 구태를 벗어버린 라훌라에게 새로운 가르침이 담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숫타니파타>를 보면 부처님은 이런 훌륭한 가르침을 라훌라에게 주고 계십니다.

“라훌라여, 어진 이와 늘 가까이 함께 있기 때문에 그들을 가볍게 여기고 있지는 않느냐? 어진 이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해 횃불을 비춰주는 존재이다. 너는 그런 이를 존경하고 있느냐?
우리가 매일 대하는 일상의 일들은 너무나 자극적이다. 네 자신의 눈과 귀, 코와 혀와 몸을 잘 단속하여라.
선한 친구와 사귀어라. 시끄러운 곳을 떠나 고요한 곳을 자주 찾아라.

음식에 대하여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옷이나 음식, 그리고 자리에 욕심을 부리지 말라.
세상의 일들에 쓸데없는 미련을 품지 말라. 계율을 잘 지키고 네 몸을 항상 살펴라.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라. 육체의 포장을 열어서 그 속에 담긴 진실한 내용을 잘 살피면 외양에 쉽게 휩쓸리지는 않으리라.
네 마음을 나무 타는 원숭이처럼 내버려두지 말고 한 가지 대상에 집중시켜라.

네 마음에 오만이 도사리고 있거든 어서 털어버려라. 오만을 없애면 너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게 되리라.”


수험생 여러분,
이 글이 여러분의 손에 닿을 즈음이면 그 지옥 같던 대입시험이 끝나있을 것입니다. 수험생이라는 신분은 ‘형벌’이기도 했지만 온갖 인간적인 의무와 도리에서는 ‘면책의 특권’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이제 책상 위의 묵은 먼지를 털어내듯 마음속의 ‘수험생의 특권’이라는 먼지도 어서 털어내시기 바랍니다. 빨리 털어내는 사람일수록 미래를 위한 더 멋진 가르침을 담을 수 있으니까요. 철부지 왕자님에서 인격이 완성된 한 사람의 멋진 청년으로 거듭 태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
2005-11-24 오전 10:56:00
 
한마디
이 시기 고3 수험생들에게 참으로 적절한 글입니다..
(2005-11-24 오후 2: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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