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줄기세포연구의 윤리성 논쟁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불교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대표적인 불교학회 가운데 하나인 불교학연구회(회장 이중표)는 11월 12일 동국대에서 ‘불교와 생명윤리’를 주제로 추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불교계에서 배아줄기세포연구의 윤리성 문제가 공론화되기는 이번이 처음.
대회는 중진 불교학자 수십 명이 참가한 가운데 근래 보기드문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됐다. ‘불교생명윤리연구위원회’를 조직해 생명윤리 현안에 대한 불교적 입장을 정리해온 조계종 또한 관계자를 파견할 정도로 학술대회는 교계 안팎의 관심을 끌었다.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심도 깊은 논의를 통해 △불교와 과학의 관계 설정 △일관성 있는 불교교리 해석의 필요성 △불교교리를 구체적인 사안에 적용해야 하는 당위성 등에 대한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소득으로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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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성 있는 불교 교리 해석의 필요성 제기
이번 대회에는 김종욱·허남결 동국대 교수, 곽만연 동아대 교수 등이 발표자로, 김성철·윤영해 동국대 교수, 조성택 고려대 교수 등이 논평자로 참여했다. 이 가운데 김종욱·김성철·곽만연 교수는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연구를 지지했고, 허남결·조성택·윤영해 교수는 반대 의사를 밝혔다.
먼저 찬성론의 근거를 살펴보면, 김종욱·곽만연 교수는 수정란은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사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김종욱 교수는 “불교에서 생명체는 유정(有情)”이라고 밝히며 “유정이란 감각적 수용능력을 갖고 맹목적 삶의 의지에 따라 행위하는 것, 즉 감수성(精)과 의지성(行)과 행위성(業)을 특징으로 하는 존재자”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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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관점에서 “감수성·의지성·행위성 없는 수정란은 본격적인 인간이 아니다”며 “불교에서 인간의 출발선은 입태라 할 수 있으며, 입태는 착상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이슈화 되던 무렵부터 꾸준하게 연구의 윤리성을 불교적 견지에서 옹호해 온 곽 교수의 입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에 반해 김성철 교수는 “율장에 따르면 사인(似人)을 해치는 것도 살인으로 바라이죄가 된다”며 사인의 한 형태인 수정란을 사용하는 것이 율장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제조법은 수정란이 아닌 난자와 체세포핵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향상된 기술”로 평가하며 지지 입장을 취해 김종욱·곽만연 교수와 차이를 보였다.
반대 입장에 선 허남결 교수는 “불교윤리의 기본정신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계목은 불살생계”라는 데서 논의를 전개했다. 즉 “불살생계가 전제되지 않은 대승보살도의 이타행은 궤변”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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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교수는 “초기경전에 따르면 인간생명의 시작은 부모의 성행위, 중음신의 하강 등이 동시에 일어나는 때”라고 말할 수 있는데, “체세포핵이식 등을 통해 이 같은 조건을 피할 수 있다고 해서 생명체가 아닌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불살생계의 윤리적 취지와 포괄적 의미에 어긋난다”는 것. 자리이타행의 선도 불살생의 원칙을 초월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배아줄기세포연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살생’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조성택 교수는 불살생이 불교가 지켜야 할 최상위의 가치라는 데 대해서는 반대하면서도 “생명이란 연속 개념이며, 수정란이 무성생식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생명으로 탄생할 0.0001%의 가능성이 있다면 생명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배아줄기세포연구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윤영해 동국대 교수는 토론하면서 지지에서 반대로 돌아선 경우. 윤 교수는 애초 황 교수의 연구가 체세포핵치환 기술을 이용한 무성생식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황 교수 연구를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면 착상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적 생명체로 봐야 한다며 반대 입장으로 선회했다.
윤 교수는 “붓다는 생명체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더라도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만 있어도 그것을 해칠 수 있는 행동을 적극 금지했다”며 “식물이 있는 곳에는 으레 벌레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런 곳에서는 대소변을 보지도 말라고 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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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철 서울대 교수는 시각을 달리해서 접근했다. 윤원철 교수는 “불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고통해소가 아니라 인욕이다”며 고통해소가 탐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했다. 국민은 배아줄기세포연구로 인한 경제적 이익에,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은 치유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에서 배아줄기세포연구는 불교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중표 전남대 교수는 부처님의 ‘무기(無記)’를 예로 들며 어디서부터 생명인가 하는 문제보다는 배아줄기세포연구로 야기될 문명발전 방향에 대한 비판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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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과학이다, 아니다
토론에서는 불교적 관점 정리를 위한 연구 방법론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이어졌다. 특히 흥미를 끌었던 것은 불교와 과학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먼저 문제를 제기한 이는 조성택 교수.
조 교수는 중유(中有)에 대해 언급하면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중유가 결합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음심(淫心)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시험관 아기는 절대 태어날 수 없다”고 꼬집으며 “중유와 관련된 이야기는 불교의 생명탄생 설명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한자경 이화여대 교수는 “과학만 말한다면 불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며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많은 한계를 불교가 넘어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산 스님도 “태내오위설에 나타난 태아에 대한 묘사가 1960년대 들어 밝혀진 것과 매우 유사하다”며 한 교수의 입장을 지지했다.
조 교수는 “그 같은 직관적 파악의 가능성은 분명히 있지만 일반화하기는 어렵다”며 “특수한 경우만 강조하다보면 정작 불교의 특징을 놓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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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의 본격화…12월 3일 종단 주최 세미나
조계종 불교생명윤리위원회에서 생명조작분야를 책임지고 있어 누구보다 이번 학술대회에 큰 관심을 갖고 참석한 미산 스님(중앙승가대 교수)은 “의견이 제각각이어서 배아줄기세포연구에 관한 불교적 견해 정립이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구체성이 떨어진다느니 가치중립적이라는 식의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배아줄기세포연구에 대한 불교적 입장정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조계종은 12월 3일(11월 26일에서 변경됨) 열릴 조계종 불교생명윤리위원회 공개세미나를 기점으로 종단의 공식 입장정리 행보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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