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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 상태 환자 깨어나 "고맙습니다"
10년째 중증장애인 목욕, 드라이브 봉사 임정애 보살

오늘은 월요일. 임정애씨(57)는 아침부터 마음이 설렌다.

드라이브를 떠나기에 앞서 아이들의 상태를 살피고 있는 임정희씨.


귀여운 ‘아이들’을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동진, 남호, 복득, 종진, 지태, 똘이….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이 아이들은 서울 홍파복지원내 중증장애아동 수용시설인 쉼터요양원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이라고는 하지만 나이로 따지면 20대에 접어들었다. 그래도 10살 남짓한 꼬마로 만나 10여년을 돌봐온지라 임씨에게 그들은 언제나 ‘아이들’이다.

임씨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쉼터요양원을 찾는다. 월요일에는 원생들을 목욕시켜주고, 목요일에는 4명씩 차에 태워 바깥바람을 쐬어주는 ‘드라이브’ 봉사를 한다. 지난 10여 년간 임씨는 이 약속을 거의 어긴 적이 없다.

봉사문화가 확산돼 쉼터요양원을 찾는 봉사자가 한 달에 900명을 헤아리지만, 그 가운데 임씨처럼 꼬박꼬박 약속을 지키는 이는 드물다. 그래서 임씨는 요양원에 고맙고도 귀한 존재다.

시설이 지금 같지 않던 예전에는 보일러 고장으로 더운 물이 나오지 않아 목욕시킬 수 없는 날도 적지 않았다. 핑계 김에 목욕봉사를 거를 수도 있으련만 임씨는 상계동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목욕시켜오곤 했다. 이처럼 그의 봉사는 형식을 넘어선 것이었다.

임정희씨는 쉼터요양원에서 빵빵엄마로 통한다.


집에 데리고 가서 목욕시켜 오기도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은 드라이브. 10년 전만 해도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매주 외출한다는 것은 감히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요즘도 중증장애아들을 데리고 나가는 건 ‘연례행사’일 정도로 벅찬 일이다.

아이들에게 바깥세상을 보여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드라이브봉사는 이를테면 임씨의 전매특허다. 임씨는 아이들을 태우고 수락산 자락에 있는 쉼터요양원을 출발, 의정부-포천-광릉내-장호원 등으로 이어지는 약 100km에 달하는 먼 길을 달린다. 덕분에 붙은 별명이 빵빵엄마다. ‘빵빵엄마’와 드라이브를 나가면 아이들은 괴성을 지르거나, 굳은 몸을 흔들어 기쁨을 표현한다.

아이들에게 드라이브는 즐거운 ‘이벤트’일지 몰라도 임씨에게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병약한 아이들이 탈이라도 날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씨는 드라이브를 시작할 때는 반야심경 테이프를 틀어 마음을 가다듬는다. 물론 가슴 한 구석에는 “이 아이들이 불법과 좋은 인연을 맺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임씨는 봉사를 통해 주는 것 못지않게 받는 것도 많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태우고 도선사를 여러 차례 방문한 것도 그런 마음에서다. 매달 초하루와 관음재일이면 도선사를 찾아 새벽예불에 꼭 참여하는 임씨는 드라이브 코스에 도선사를 포함시킨다.

도선사 입구에 다다르면 임씨는 이곳이 절이라는 것을 설명해주고, 부처님 말씀을 들려준다. 아이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쉬운 것은 도선사 입구까지 가도 법당에 오르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는 점.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들을 혼자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임씨는 차가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가서 돌아나올 수밖에 없다.

이제 60세를 바라보는 그에게 드라이브는 이제 쉽지 않은 일이 돼 버렸다. 하지만 체력의 한계보다 임씨를 더 힘들게 하는 건 드라이브를 마치고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다.

아이들을 태운 승용차가 요양원에 다다르면 임씨의 옷자락을 끌어당기고, 울기도 하면서 아쉬움을 표현하는 아이들 때문에 가슴이 미어진다.

동진이에게 간식을 먹이는 임씨. 동진이 소원은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란다.


식물인간 상태 환자 깨어나 "고맙습니다"


임씨가 봉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1년. 의왕 복전원 주지스님을 따라 방문한 용인 연꽃마을에서 찾아오는 자식 하나 없이 쓸쓸하게 말년을 보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한없는 슬픔을 느꼈다. 힘닿는 데까지 어려운 이들을 돕는 삶을 살겠다는 원을 세운 것도 그때다.

그 후로 임씨는 사회의 그늘진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쉼터요양원 외에도 국립의료원 중환자실에서의 간병봉사, 종로지역 노숙자 밥 주기 봉사, 시민단체 상담봉사 등 가리지 않았다.

봉사이력이 오래된 만큼 잊을 수 없는 기억도 많다. 국립의료원에서의 일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임씨는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한 사람을 8개월째 보살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환자가 의식을 회복한 것이다. 소리를 낼 수 없는 그 환자는 눈물을 흘리며 임씨에게 “고맙습니다”라는 입모양을 수차례 지어보였다. 임씨도 함께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며칠 지나지 않아 그 환자는 눈을 감고 말았다. 봉사의 보람과 삶의 무상함을 동시에 맛본 순간이었다.

“봉사라고는 하지만 일방적으로 내가 주는 것은 아니에요. 나도 많은 것을 받고 있거든요. 다른 이들을 위해 활동하다보면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돼, 가족애가 더욱 깊어집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봉사는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 현실. 임씨는 마음을 돌리면 거리감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시작이 반이에요. 타인을 위해 땀흘려보면, 흘린 만큼 기쁨도 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기쁨을 한번 맛보고 나면 봉사하는 날이 기다려져요. 그러고보면 봉사도 중독인 모양이에요.”


"동진이가 대통령 만날 수 있었으면"


임씨에게는 소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쉼터요양원의 동진이(24)를 대통령과 만나게 해주는 것. 그것은 동진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다.

“밥을 잘 먹어야 대통령 만날 수 있다는 말만 하면 안 먹던 밥도 맛나게 먹어요. 거짓말하는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동진이가 대통령과 만날 날이 꼭 왔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도 함께 기도해주세요.”
글=박익순 기자/ 사진=박재완 기자 |
2005-12-06 오후 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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