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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이 올 초 불교방송에서 했던 ‘100일 법문’ 내용을 간추린 <붓다, 나를 흔들다>와 이 목사가 지난 한해 기록한 일기를 모은 <이현주 목사의 꿈일기>는 비록 ‘불교’와 ‘기독교’라는 다른 옷을 입고 있지만, ‘깨달음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강연회 소식이 알려진 후 ‘스님과 목사의 만남’을 통한 ‘종교간 벽 허물기’라는 세간의 기대를 모았던 이날 출판 기념회는 강연 시작 전부터 두 사람의 만만치 않은 입담으로 웃음꽃을 피웠다.
“이 자리에 기독교 신자와 불자들이 많이 온 것 같다”는 한 기자의 인사에 이 목사는 “그렇게도 볼 수 있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사람들이 많이 온 것 같네요”라고 답했다. “예수가 기독교 신자가 아니고 부처가 불교 신자가 아닌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의 ‘사람’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부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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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가량 진행된 이날 강연회에서는 “부처와 예수의 가르침대로 산다면 그것은 둘이 아니”며 “행복을 밖에서 구하지 말고 내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먼저 깨달아야 한다”는 공통된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다.
다음은 독자와의 문답 전문이다.
사회자: 우선 두 분을 한자리에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선, 이현주 목사님은 그동안 종교를 넘나다는 저술활동으로 ‘불교적’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법륜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법륜 스님(이하 법륜): 목사님을 불교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맞지 않죠. 다만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불교와 비슷하다는 생각은 해 봅니다. 자기 종교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려는 모습은 불교나 기독교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현주(이하 이): 예수님 가르침대로 살려고 하지만 잘 안되죠. 하지만 저는 아직 배우는 학생이니 잘 안되는 것이 당연하죠. 그래도 앞으로 잘 될 것이란 희망이 있으니 열심히 배우는 수 밖에요.
법륜: 그렇죠. 자전거를 타려고 하는데 잘 안돼서 넘어집니다. 하지만 안타면 넘어질 일도 없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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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승은 그 자신이 훌륭해서 스승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분을 모시면 그 사람이 바로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기준으로 그 사람을 재단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스승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한국불교의 문제점을 비판했을 때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어떤 사람이 논두렁 밑에 앉아 마음을 고요히 하면 그 사람이 스님이고, 그 자리가 절이고 그게 불교라네.” 저는 그동안 불교 아닌 것을 불교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스승이란 많은 것을 가르쳐줘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된 점, 나의 허점을 잘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스승이란 존재는 스승이라 불리는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스승이라 부르는 학생에게 존재합니다. 저는 제 마음속에 늘 스승님(예수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사회자: 법륜 스님의 주례사가 인터넷에서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두 분께 결혼을 한 사람이나 결혼을 앞둔 이들에게 주는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이: 삶을 사랑으로 채울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세상은 인연으로 맺어지고 또 인연으로 헤어지기도 합니다. 부부란 각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만큼 어떻게 하면 좀 더 창조적이고 행복하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런 길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겠지요.
법륜: 결혼은 안하는 것이 좋죠.(웃음) 그러나 결혼한 사람이 결혼한 것을 후회하고, 안한 사람이 안한 것을 후회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후회는 자기 인생을 실패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결혼을 한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라도 행복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스스로 자기 인생을 잘 살피고 노력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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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제가 일년에 한 번, 3주 정도 단식을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묻습니다. ‘배고프지 않습니까?’ 당연히 배가 고픕니다. 그러면 또 묻습니다. ‘배고픈데 왜 단식을 합니까?’ 바로 배고픈 줄 알기 때문에 단식을 합니다. 배가 고프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배고픈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답이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어느 날 명동에 있는 교회에서 설교를 하게 된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주방에서 사람들과 모여 앉아 ‘보리밥, 열무김치, 고추장이 있으면 함께 비벼서 먹자’고 얘기했는데, 그것이 설교의 끝이었습니다. 꿈을 깬 후 생각해보니, ‘설교란 것이 별거냐. 우리가 흔히 먹는 보리밥에 도(道)가 있고, 우리 생활 속에 있는 도를 잘 나눠 먹는 게 설교지’라는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독자 2: 대학에서 종교간 화합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두 분은 다른 종교 성직자이신데, 서로를 만나고 교루하면서 무엇을 얻으시는지요?
법륜: 이현주 목사님과는 그동안 5번 정도 만났는데, 무슨 의도를 가지고 만나거나 일부러 자리를 만든 경우는 없습니다. 오늘 출판 기념회도 출판사에서 이현주 목사님과 함께 출판기념회를 준비다고 하니 쾌히 승낙을 한 것입니다. 종교 간의 대화 같은 거창한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저 서로 만나면 기분 좋고 대화가 통하니까 만나는 것이지요.
이: 자연스럽지 않으면 모두 엉터리입니다. 법륜 스님과는 서로 목사다 스님이다 하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만납니다. 망치질도 제대로 못하는 제가 무슨 ‘종교 간의 벽’을 허물겠습니까. 부처님 예수님 가르침을 따라가다 보면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 벽이란 것이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독자 3: 이현주 목사님께서는 지난 한 해 동안 묵언정진을 하셨는데요.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 그리고 묵언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이: 일년 동안 묵언을 했다고 해도 전혀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성대를 울리지 않았을 뿐이지 손으로 눈으로 급하면 글씨를 써서라도 말을 했지요. 속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어떤 방법으로든 하게 됩니다. 진짜 묵언은 내 속에 하고 싶은 말이 없게 만드는 것이지요. ‘나 자신을 어떻게 비울 것인가’가 관건입니다. 묵언을 통해 생각 없게 만드는 것은 힘들지만, 내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지는 말자는 것을 깨달았지요.
사회자: 이 목사님은 그동안의 저술을 통해 볼 때 자신과의 대화에 충실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사회는 늘 시끄럽게 돌아갑니다. 너무 개인의 수행에만 집중된 것은 아닌지요?
이: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 하나만이라도 건강하게 살다보면 조금씩 사회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자: 같은 맥락의 질문입니다. 법륜 스님께서는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개인의 성불과 깨달음에 이르려는 노력은 어떻게 하고 계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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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4: 육아와 직장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법륜: 아이를 키우는데 주력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태어났다고해서 모두가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는 아이를 낳았다면 잘 키워야할 의무도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주고,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놓아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부모의 역할입니다.
독자 5: 최근 생명윤리와 과학에 대한 논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이라크 파병에 대한 두 분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이: 생명윤리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을 해보지 못해 답변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파병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누구를 죽이러 가는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옳은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내가 널 죽이지 않으면 네가 날 죽일테니, 내가 널 죽여도 된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법륜: 국가 이익을 위해 파병을 지지한다면, 일제의 우리나라 침략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을 지원하러 간 일이 있습니다. 그때 파병 군인이 ‘겁나지 않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가 당신보다는 용감해야 하지 않겠나. 당신은 누구를 죽이러 가는데도 용기를 내는데, 누군가를 살리러 가는 나는 위험을 무릎 쓸 가치가 있기 때문에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라고요.
생명윤리에 대해서는, 윤리라는 것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진리를 아니라고 봅니다. 다수가 동의하는 바를 알아야 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사회자: 예수님 가르침대로,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구체적입니다.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을 대라, 누군가 너를 힘들게 하면 그 사람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기도해라. 그저 그렇게 하면 됩니다. 부처님 가르침도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법륜: 담배 끊기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담배를 안 피는 것이 가장 쉬운 일입니다. 담배를 안 피면 돈도 안들고 사러 가지 않아도 되고 재를 떨지 않아도 되고 그런 것 아닙니까? 이처럼 사람들은 ‘안 해도 되는데 안할 수 없기’ 때문에 바쁜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도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고 하라는 것을 하면 됩니다. 계율은 결코 지키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불교의 인연과보와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 제가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른다면 모습을 바꾸지 않고도 예수의 제자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회자: 마지막으로 여쭙겠습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우리는 자기가 행복한 줄 모르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것입니다. 행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늘 행복할 것입니다.
법륜: 이현주 목사님의 말씀을 부처님 말씀으로 옮겨보겠습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고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은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네.” 인생은 매 순간이 연습입니다. 연습은 실패의 연속일 수밖에 없죠. 그러니 후회란 있을 수 없습니다.
문답이 끝난 후 이현주 목사는 “오늘 대화를 해보니 스님과 나는 천당에 가긴 글렀다”는 말을 덧붙였다. “종로에서 서울에 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이 목사의 풀이에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독자들도 그 순간은 ‘종로’에 서 있는 ‘행복한 존재’임에 틀림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