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3.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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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다남은 낙산사목재로 악기 제작ㆍ기증한 임창호 장인
자비의 선율 전하는 또 하나의 ‘법당’

악기장인 임창호 씨. 사진=박재완 기자.


지난 4월, 강원도 양양 낙산사가 화마(火魔)로 잿더미가 됐다. 이 불로 보물 479호인 동종과 법당 등 건물 21채가 불탔다. 하지만 낙산사 원통보전 일부는 한 장인(匠人)의 손을 거쳐 서양 현악기로 다시 태어났다. 그 장인이 바로 강릉에서 40년 넘게 수공예 악기를 제작해온 임창호씨(71·서진악기사 대표)다.

“불자는 아니지만 평소 불교에 관심이 많아 사찰 참배를 많이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던중 고향의 인근 지역 수백년된 고찰이 한 순간에 재로 변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요. 그 허망함을 어떻게 위로해줄까 고심했어요. 처음에는 낙산사 전각들을 축소해 모형으로 만들어 보시할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사찰 건축물들이 정교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겠더군요. 그렇다고 돈이 많아 불사에 보탤 수 있는 형편도 아니어서 마침내 생각한 것이 타다남은 목재를 활용한 악기 제작이었지요.”

이런 생각이 확고해지자 임씨는 지난 6월 황급히 낙산사를 찾았다. 그리고 주지 정념 스님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임씨의 취지가 좋다고 생각한 스님은 타다 남은 나무들을 전부 가져 가도 좋다고 허락했다.

악기를 다듬는 임창호씨.


서양 현악기의 경우 대부분 가문비 나무와 단풍나무로 제작하지만 국산 소나무로도 얼마든지 훌륭한 명기(名器)를 만들 수 있다고 임씨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낙산사 원통보전 대들보는 고목(古木)인 데다 오랜 기간 건조돼 뒤틀림이 없어 악기 재료로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두달동안 무더위도 잊은채 하루 10여시간씩 강행군을 했다. 이런 고행 끝에 하마터면 아무 쓸모 없이 버려질뻔한 타다남은 법당의 목재들을 명기로 바꾸어 놓았다. 만든 즉시 이 악기들은 낙산사로 옮겨져 현재는 의상기념관에 전시 보관중이다. 재질이 뛰어나고 소리도 아주 좋아 첼로는 최소 3천여만원, 바이얼린은 1천5백여만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임씨는 귀띔한다.

“좋은 악기를 만들려면 음악가적인 섬세한 귀와 심성을 가져야 하고,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심안의 눈을 떠야 합니다. 그리고 일체의 번잡함을 없애고 몰두해 악기와 하나가 돼야 따뜻한 음, 차가운 음 등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품은 명기가 탄생됩니다.”

임씨가 악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62년. 서라벌 예술대학 공예과(중앙대의 전신)를 졸업하면서 부터다. 원래 임씨는 초등학교 음악교사인 아버지의 지도로 5살때부터 바이얼린을 배웠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음악적인 재능보다는 손재주가 뛰어남을 안 주위 음악 선생님들의 권유로 악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타다남은 낙산사 목재들.


당시엔 서양 악기 만드는 곳이 거의 없어 수십 개의 현악기를 구입해 그것을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등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독학으로 악기 만드는 법을 익혔다.

옛 방법을 존중하며 나아가 자신이 새롭게 창조하고 개발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묵묵히 실천해온 그에게 정밀한 소리를 되찾겠다는 일념(一念)만큼 중요한 건 없다.

그는 아무리 편한 기계가 세상에 있다손 치더라도 최상의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중심에 놓으면 고집을 지켜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선연하게 드러난다고 강조한다.

“악기에 쓸 나무만큼은 고집스럽고 까다롭게 골랐지요. 그런데 이젠 나무 걱정은 죽을 때까지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낙산사에서 가져온 나무들이 크레인차 두 대 분량이거든요. 전각들은 비록 사라졌지만 악기로라도 남아 아름다운 소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준다면 그게 바로 또하나의 법당 아니겠어요. 그런 사명감으로 요즘은 다른 어느때보다 더 정성을 기울여 낙산사 목재로 악기를 만듭니다.”

임창호 씨.


제조 과정은 긴 인내를 요하지만 악기가 훌륭한 음악가의 손에서 최상의 빛을 발하며 연주될 때 악기 장인으로서는 최고의 보람이 아니겠냐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실제로 모두 수제품인 그의 악기는 우리나라보다도 외국 음악가들에게 인기가 높다. 그 비결은 대나무 숯가루를 섞은 옻칠에 있다. 흔히 세계적인 명기로 알려진 스트라디바리우스나 과르넬리 등은 알코올 바니쉬로 겉칠을 하는데 비해 임씨는 자신의 악기에 습기와 해충에 강하며 광택과 소리가 좋아지는 옻칠을 한다. 하지만 옻칠은 대부분의 악기 제조공들이 수지 타산이 안맞고 시간과 노력이 몇십배로 들기 때문에 기피한다. 임씨가 고작해야 1년에 3~4개 정도 밖에 악기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도 그만의 심혈을 기울인 제작 과정때문이다.

그만큼 임씨는 자신의 악기에 공과 혼을 불어 넣는다. 그래서 악기 상표도 자신의 이름 석자 ‘임창호’를 그대로 사용한다.

“돈을 생각하고 악기를 만들면 그 악기는 태어나는 순간 명기가 아니라 사치품으로 둔갑합니다. 그래서 칼로 나무를 다듬는 수만번의 손놀림을 할때 마다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입니다. 내 악기가 시방세계로 나가 대중들에게 불협화음이 아닌 화합과 평화와 자비를 가득 실은 선율로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고희를 넘긴 지금, 그는 세인들의 관심으로 주목받는 삶은 아니었지만 서양 악기를 오히려 한국의 전통 혼이 들어간 악기로 재창조해 본고장인 유럽 전역으로 역수출한다는 긍지에 나이도 잊는다.
이런 그에게 요즘 인생을 가치있게 회향하기 위한 꿈이 하나 생겼다. 가난하지만 재능있는 연주자들의 손에 자신의 악기를 쥐어 주는 보살행의 실천이다. 임씨는 현재 강릉지역에서 유치하고 있는 음악 경연 대회에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고가(高價)의 악기를 보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강릉/글=김주일 ·사진=박재완 기자 |
2005-11-21 오전 10:15:00
 
한마디
참신한 아이디어 찬사를 보냅니다. 늘 福되시고 건강 하십시오!
(2005-11-21 오전 11:54:08)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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