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경전인 증일아함경에 보면 세상 모든 것은 식(食)으로 시작된다 했습니다. 어떤 음식을 먹었느냐에 따라 세상이 다르게 펼쳐지는 것입니다. 싸움을 좋아하는 동물이나 민족은 육식을 즐겨하고, 절집에는 선식문화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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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 대구 수성구 시지동 고산성당 1층 교육관, 200여명이 넘는 천주교 신자들 앞 강단에 신부님 대신 스님이 섰다. 선재 스님의 사찰음식을 통한 생명의 먹거리 이야기가 펼쳐진 것. 고산성당 정홍규 신부가 종교를 넘어 우리의 먹거리를 소개하고 생명과 평화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개최한 자리다.
‘음식은 성품을 만든다’는 주제로 열린 특강은 우엉잡채와 늙은호박전, 무전 실습을 곁들여 오후 3시부터 2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선재 스님은 불교경전에 나오는 먹거리 이야기부터 출가해 수행자의 길을 걸으면서 느끼고 배웠던 과정 과정을 풀어내며, 이 세상의 모든 만물만생이 나와 연결된 고귀한 생명체임을 일깨워 나갔다. 시종일관 “자연을 거슬러 살지 말 것”을 강조한 스님은 “물이든 음식이든 무엇이건 함부로 하지 않는 것, 이것이 절 집안 음식문화”라고 설명했다. 또, “신부님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음식을 먹듯이 스님들은 음식을 통해 수행을 하고 성불하게 되는 것”이라며 선식을 채식과 구별해 설명했다.
“모든 음식은 약이다. 음식이 성품을 만든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수행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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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먹거리 문화 보급에 힘써 온 스님은 고산성당에서도 때에 맞는 음식을 먹을 것, 계절 음식을 먹을 것, 골고루 섭생할 것, 과식은 금하고 육식은 절제할 것 등 경전에 나타난 불교의 식생활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또, 과자, 인스턴트 식품, 합성조미료의 섭취를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스님의 특강에 성당 신자들의 감탄사가 연발 이어졌다. 스님의 한마디를 놓칠세라 부지런히 메모하고 머리를 끄덕이는 모습이 진지하다. 때로는 폭소를 터뜨리고, 무심코 저지른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심각해지기도 했다.
언니와 함께 참석한 두류성당의 신자 윤명이(46)씨는 “먹거리를 통해 마음이 하나 되고 종교가 하나됨을 느낄 수 있는 화합의 장 이었다”고 말했다.
남편과 두 아들, 막내 딸 까지 온 가족이 함께 왔다는 칠곡성당의 조현주(42, 대구시 북구 관음동)씨는 “자연식과 생명살림을 강조하는 스님의 단아한 모습에서 신부님 수녀님과 같은 수도자의 모습을 봤다”며 "조미료 맛이 없어 자체의 맛이 강하고 담백한 스님의 요리는 일품”이라고 평했다. 특히 “우엉잡채는 들기름에 볶아 그 향이 고소해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고산 성당의 이채영(54) 신도회장은 “신부님이 평소에 항상 강조하시는 ‘생태영성(생명을 존중하는 사상)’과 잘 맞는 특강이었다. 천주교의 힐데가르트, 성프란체스코 등과 일맥상통하는 강의여서 너무 가슴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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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규 신부는 “종교와 종파를 넘어 이 시대가 공유해야할 지혜”라며 스님의 강의에 만족해했다. "부처님은 예수님과 달리 오래 사시면서 구체적인 수행방법을 많이 알려주고 가신 것 같다”며 부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정신부는 "먹거리를 통해 생명과 진리를 강의하니 모두 행복해 하는것 같다"며, "이렇게 멋진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은 3년 전부터 쌓아온 은적사 허운, 허주 스님과의 인연 때문"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