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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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운명’을 믿습니까
[현대불교신문 연재]행복을 찾아주는 부처님 말씀 (24)


양손에 ‘운명’과 ‘의지’ 쥐고 편리한대로 선택

현재 어떤 뜻 세우느냐에 따라 미래 펼쳐져

몇 해 전 십여 명의 한국인들과 일본인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운명’ ‘운명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주제였습니다.
한국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운명’이란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미리 정해진 것’이라고 대답하였고 참 많은 사람들이 ‘운명은 있는데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에 대해 일본인은 “내가 일본인으로 태어난 것이 바로 운명이다.

그래서 나는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한국의 청년들은 ‘운명’이란 것은 ‘지금 내게 닥친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닥치고야 말 정해진 프로그램’이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운명은 아무리 거대한 힘을 가졌다 해도 바뀔 수 있는 것이고, 바꾸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듯 하였습니다. 반면 그 일본인은 운명이란 이미 시작되었고, 이미 시작된 만큼 운명은 믿고 안 믿고, 바꾸고 말고 할 차원의 것이 아니고, 그 속에서 나는 마음껏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양쪽의 대답이 두 나라 국민의 의식을 대변한다고는 단언할 수 없지만 ‘운명’이란 것에 대한 기본개념부터 그토록 달랐던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운명’에 대해 상당히 이중적인 생각을 품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운명’이 진짜로 존재한다면, 지금 현실의 나를 규정짓고 그렇게 살도록 지배하는 프로그램에 의해 내가 진짜로 그렇게 살아지고 있다면, 믿지 않아도 나는 그렇게 살아질 것이고, 믿어도 그렇게 살아질 것입니다. 이 현실은 그저 내가 전생에 지은 악업의 과보를 받는 형장일 뿐이요. 그런 형장에 묶인 수감자는 ‘나는 이렇게 살아야지, 나는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의지를 낼 필요도 없고, 또 내지도 않을 것입니다. 애초부터 정해져 있는데 뭣 하러 의지를 일으키고 노력을 하겠습니까?

심지어는 내가 살인을 저지르거나 추악한 성범죄를 저지른다 해도 나에게 그 죄를 물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런 마음을 낸 것도 다 전생에 지은 업보로 그리 정해져 있는 것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운명이 정해져 있고 그것이 나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한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운명이 정해져 있네, 신의 뜻이네 하면서 왜 어떤 일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현재의 그 사람에게 묻는 것입니까? 이미 모든 게 정해져 있다면서 왜 굳이 뭔가를 하려드는 것입니까? 현재 사람들이 뜻을 일으키고 있는 이 모습, 이 노력, 이 책임추궁을 어떻게 설명할 것입니까? 지금 열심히 미래를 만들어가면서도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주장하는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사주팔자를 보거나 전생을 궁금해 하는 것은 현실을 타개하고 싶은 마음에서입니다. 현실이 잘 풀려나가는 사람은 사주풀이나 운명 같은 것을 거론하지 않습니다. 일이 안 풀리기 때문에 그런 것에 의존하는 것인데, 뜻한 바대로 일이 풀리면 자신의 의지에 스스로 대견해 합니다. 그러나 일이 풀리지 않으면 그 사람은 ‘나는 그렇게 살게 되어 있다’, ‘내 운명이 그렇게 정해져 있다’라며 위로합니다. 마치 양손에 떡을 쥔 아이처럼 사람들은 한쪽 손에는 운명을, 다른 한쪽 손에는 자기의 의지를 쥐고서 그때그때 편리한 대로 들이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은 내가 현실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지고 팔자가 바뀐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바뀐다면 그게 팔자입니까? 내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운명입니까? 어쩌면 애초부터 정해진 운명이나 팔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부처님은 당시 종교와 사상을 크게 셋으로 분류하였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원인은 신에 의해 만들어졌고, 신이 미래까지 좌지우지한다는 것(존우화작인론), 이 세상은 전부 전생의 각본대로 펼쳐지고 움직인다는 것(숙작인론), 세상의 사람이나 사물은 모두 아무런 인연 없이 그저 우연히 생겨나고 흘러가고 흩어지는 것(무인무연론)이라는 세 종류의 그릇된 사상입니다. 이 셋에 대한 부처님의 지적은 간단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현재 악업을 짓거나 죄를 짓는다면 그건 다 신에 의해 또는 과거에 지은 바에 의해 일어난다고 해야 하리니 누구에게 죄를 물을 것인가. 그리고 이것은 해야 한다, 해서는 안 된다는 의욕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또 노력이라는 것도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중아함경 도경)

현재의 내가 어떤 뜻을 일으키느냐에 따라 나의 미래는 펼쳐집니다. 내가 다른 이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함께 업을 짓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천상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있지도 않은 운명에 그 미래를 걸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
2005-11-09 오전 1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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