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거기간 수행에 전념코자 묵언한 제자들에게
“도반과 대화하며 가르치고 일깨워라” 꾸짖어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어느 해인가 여름에 홍수가 나서 세상이 물바다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가급적 외출을 삼가고 있었는데 항상 말썽을 부리는 육군비구들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때나 아무 곳이나 마구 돌아다녔던 것입니다. 자연히 소지품들이 물에 휩쓸려 둥둥 떠다니게 되었고, 그들이 거침없이 다니는 바람에 초목들과 곤충들이 마구 짓밟혔습니다. 사람들의 비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들은 부처님의 제자이고 출가한 스님이면서 어찌 부끄러움을 모르는가. 겉으로는 바른 법을 안다고 자부하면서 법도도 없이 돌아다니니 어찌 바른 법을 지키는 수행자라 할 수 있는가. 신자들이 보시한 물건들이 물에 휩쓸려 가고, 곤충들을 밟아 죽이고 있지 않은가. 외도들도 우기 석 달 동안은 안거를 하는데 이들은 어찌 그런 법도 없단 말인가. 벌레와 새들도 둥지와 굴이 있어 머물거늘 어찌 이들은 그런 법도 없단 말인가.”
사람들의 비난이 부처님의 귀에까지 전해졌습니다. 부처님은 육군비구들을 꾸짖고 난 뒤에 이렇게 새로운 규칙을 정하셨습니다.
“이제부터 계절의 구분 없이 돌아다니지 말라. 비구들은 여름 석 달 동안 안거해야 한다.”(사분율)
안거는 이렇게 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당시 이미 널리 행해지고 있던 행사였던 것이지요. 하지만 석 달 동안 한 곳에 머물러 사는 덕분에 비구들은 수행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정신에 대해서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해인가 코살라국에서 안거를 시작한 비구스님들이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안거하는 동안 음식 때문에 괴롭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까?’
가급적 정진하는 데에 온 정신을 쏟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안거 기간 동안에는 탁발하러 나가는 것도 번거롭고 음식을 얻어서 돌아온 뒤에 음식을 먹고 치우는 동안에 행여 불필요한 말이라도 하게 되어 수행에 방해가 될까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렇게 규칙을 정하였습니다.
“이렇게 하기로 합시다. 안거 동안에는 서로 말하거나 예배하거나 문안하는 일은 하지 맙시다. 가장 먼저 마을에 들어가서 걸식한 이는 돌아오는 대로 밥 먹는 곳을 소제하고 자리를 펴고 물그릇을 갖추고 발 씻는 그릇과 밥 담을 그릇을 갖추어 놓기로 합시다. 대중은 제각기 밥을 가지고 와서 밥 먹는 곳에 놓고서 많이 얻었거든 미리 덜어두고 알맞으면 그대로 먹으며, 밥을 다 먹었거든 잠자코 방으로 돌아가기로 합시다. 이런 일들은 말이 필요 없으니 걸식에서 돌아와 밥을 먹는 동안, 그리고 다 먹고 나서 치우는 동안에도 절대로 서로 말을 건네지 말기로 합시다. 이렇게 하면 우리들이 음식 때문에 피로하지 않고 안락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규칙을 마련해 놓고 규칙에 따라서 안거하며 자자를 마쳤습니다.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으니 얼마나 조용하게 자기 수행에 매진할 수 있었을까요? 가급적 다른 이를 참견하지 않고 묵묵히 하루 한 끼만 먹고 석 달 간 오직 자신의 수행만을 위해 땀을 쏟고난 비구스님들은 안거를 마친 뒤 부처님을 찾아뵈었습니다.
부처님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의외로 부처님은 근심어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 어리석은 사람은 멋대로 그런 행동들이 즐겁다고 여기겠지만 그것은 괴로움이다. 멋대로 근심 없이 지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퍽 근심스러운 시간이었다. 너희들이 함께 머물고 지낸 모습들을 돌아보아라. 마치 원수지간 같지 않더냐? 싸우려고 덤벼드는 흰 염소와 조금도 다를 바 없구나. 내가 그토록 무수한 방편으로 비구들에게 서로 가르치고 서로 말을 듣고 차례로 깨우쳐 주라 이르지 않았더냐? 그런데 어찌하여 너희들은 그 말을 따르지 않았느냐? 너희들이 한 짓은 법답지 못한 짓이다.”(사분율)
안거에 임하는 수행자들의 결심은 뜨겁습니다. 장마철의 눅진한 습기마저도 일거에 말려버릴 만큼 뜨거운 열기가 흘러넘칩니다.
화두를 향해 고요히 몰입해 들어가는 시간은 개인이 자기 참존재와 만나는 시간입니다만 부처님은 치열하게 수행하는 그 시간조차도 끊임없이 도반과 대화를 나누며 일깨워주고 가르쳐주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나라가 오래도록 번영하려면 한결같이 화합해 자주 회의를 갖고 토론을 해야 하는 것처럼, 출가자들이 자주 성의껏 모이고 많은 이들이 출석하여 끊임없이 토론하고 결정을 내려야 승가의 생명력이 길어진다고 하신 <대반열반경>의 가르침은 사판(事判)의 현장뿐만 아니라 이판(理判)의 법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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