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조선시대 24
고려 이후에 계속된 선가(禪家)의 차는 초의를 거쳐 범해(梵海), 금명(錦溟)에 이어져 만개하는 결실기를 맞는다. 불가(佛家)에서도 박한영, 한용운 등의 스님이 나와 불교 현대화를 위해 설법했고, 새로운 교육체계를 모색하는 시기다. 그 같이 높은 다심(茶心)이 지금의 선가에 다속(茶俗)을 이루고 많은 불자들이 다선일미(茶禪一味)의 깊은 뜻을 체득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때까지도 궁중에서는 의궤(儀軌)에 차가 반드시 들어 있고 다식(茶食)도 빠지지 않았으며 일반 가정에서도 차 대신 숭늉을 올리더라도 다식만은 꼭 제수로 썼다.
근대적인 개화사상에 젖었던 유길준이나 장지연, 이능화 등이 나와 다사(茶事)를 기록으로 남겼고, 다시를 통해 올바른 차 정신을 노래했다.
중국은 바야흐로 차의 대량생산을 위해 차 제조공장을 세워 수출에 주력하고, 일본도 왕정복고 이후 차 산업 장려에 힘을 기울였다.
① 유길준(兪吉濬, 1856~1914): 개화운동가. 유럽을 여행한 후 <서유견문록>을 쓰고 서양인들의 티파티를 소개해 당시 다화회에 영향을 주었다.
② 금명보정(1861~1930): 송광사 스님으로 범해각안 스님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자(字)를 다송자(茶松子)라 했으며 평생 차와 함께 살았고 다시 80여수를 남겼다.
③ 진찬의궤에서 작설차를 썼다고 했다.
④ 이능화(1869~1943): <조선불교통사>에서 장백산에서 백산차(白山茶)가 나온다고 했다.
⑤ 박한영(1870~1948): 법명은 정호(鼎縞), 한용운 등과 임제종 정통론을 주장하고 조선불교전문학교 교장을 지내며 불교강의를 한 차인이다.
⑥ 우리나라 역대 시 모음집으로 다시도 들어있다.
⑦ 권흥(權興)이 쓴 다시로 오국헌의 시가 있다.
⑧ 의식 때 술 대신 차를 쓴다(用茶代酒)고 했다.
⑨ 고종 10년에 자완(磁椀) 20개 및 은다종(銀茶鐘)을 썼으며 차는 내의원에서 관장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⑩ 만해 한용운(1879~1944): 독립운동가이자 스님으로 불교중흥과 청년운동을 주도하며 <님의 침묵> <흑풍> 등의 작품을 쓴 차인이다.
⑪ 청대 문인으로 <속다경(續茶經)> 20권을 썼다.
⑫ 청대 사람으로 <기홍애진장설다(記紅崖陳丈說茶)>를 찬술했다. 그 속에 다화(茶花), 제다(製茶), 배법(焙法), 용화(用火) 등에 관한 기록이 있다.
⑬ 변실제(卞實第)가 찬술한 책으로 여러 곳의 물산차(物産茶)를 썼다.
⑭ 송경탕이 찬술한 책으로 차나무 번식법을 기록했다.
⑮ 필자 미상의 무이차에 관해 기록한 글이다.
16 오창석(1844~1927): 전각서화가로 차를 사랑한 차인이다.
17 경도(京都)에서 유행하던 큰 전다회가 열렸다.
<한국>
1850 <서유견문(西遊見聞)> ①
1857 세한도(歲寒圖)
초의 추사 영전에 제문을 올림
1861 금명보정(錦溟寶鼎)의 출생 ②
1864 차인 장지연
1866 초의 입적
1868 진찬의궤 ③
1869 이능화(李能和)의 출생 ④
1870 박한영(朴漢永)의 출생 ⑤
@ <대동시선(大東詩選)> ⑥
1873 어은유고(漁隱遺稿) ⑦
@ <농가집성(農家集成)> ⑧
1877 진찬의궤
1878 다완과 은다관 ⑨
1879 만해 출생 ⑩
<중국>
@ 미국 ‘동방호’가 차를 싣고 영국으로 가다
1861 한구(漢口)에 차공장 설치
@ 반사제(潘思齊) ⑪
1866 장진기 ⑫
1869 <민교유헌록(閩蟜楢軒錄)> ⑬
1874 <종다설십조(種茶說十條)> ⑭
@ <무이기승(武夷紀勝)> ⑮
@ 오창석(吳昌碩)의 활동 16
<일본>
1860 미국으로 차 수출
1866 명치유신
1868 왕정 복고
1874 차산업 장려
1875 대전다회(大煎茶會)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