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조선시대 25
국제간의 교류가 잦아짐에 따라 새로운 지식과 외국의 문화가 수입되었고 서양인들의 음다(飮茶)생활도 소개되었다. 따라서 일본과 중국의 차를 수입하면서 차의 재배에 관심을 가지고 묘목을 수입하기도 했다. 대외적 의식이나 조정의 행사, 사찰의식에서 차를 쓰면서 차의 생산을 소홀히 하는 정부에 대해 미국공사 딘스 모어가 차 재배를 권유하기도 했다.
국제간의 회담에 차에 관한 것도 논의되었고, 국가에서 차 재배를 장려하기도 했다. 일제의 침탈이 없었다면 우리의 차 생산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선인들이 남긴 드높은 차정신을 잇는 한편 더욱 좋은 품종을 많이 생산하고 있을 것이다.
시대적 상황으로 당시에 다화회(茶話會)라는 차모임이 많았고 문일평 같은 선각자가 나와 다고사(茶故事)를 남겨 자료가 희소한 우리 다사(茶史)에 크게 공헌했다. 여류들의 진출이 많았으니 오효원 박한영 박영희 등의 등장은 기록할 만 하다.
중국도 개혁적 사상의 문인이요 차인인 노신이 등장하고 중국 근대 차발전에 공적을 남긴 오각농이 출생했다. 일본은 왕정복고 이후 얼마동안 다도가 퇴조하는 모양이었다.
① 김원식이 청(淸)의 북양대신(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과의 회담 내용에 조선 차의 재배와 해외수출 문제를 포함했다.
② 천진군기소의 총판 유향림과 다업진흥에 대한 구체적 의견을 교환했다.
③ 농상사(農商司)에서 차 재배 업무를 맡아 정부에서 장려했다.
④ 고종 21년에 일본차를 상당량 수입했다.
⑤ 청국에서 차의 모종 6천 그루를 수입해서 심다.
⑥ 청국의 안휘성으로부터 육안차(六安茶)의 차씨를 수입했다.
⑦ 서울에 있던 미국 공사 딘스 모아가 차 심기를 권장했다.
⑧ 문일평은 한말 학자로 호를 호암(湖岩)이라 하고 <호암전집> 안에 <다고사(茶故事)>를 써서 우리 차에 관한 귀중한 자료가 된다.
⑨ 오효원(1889~?): 여류 문인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해 시재(詩才)가 있었고 시 470여 수가 담긴 <소파여사시집> 안에 다시 6편이 전한다.
⑩ 이즈음에 오면 정부의 고급 관리들이 다화회를 자주 가진다. 이는 외국 사람들의 티파티를 모방한 새로운 다회 형태였다.
⑪ 박영희(1892~1990): 대둔사를 떠나지 않고 초의의 맥을 받았다는 응송(應松) 스님이다. 한국의 전통차 보급에 애썼고 <동다정통고(東茶正統考)>를 썼다.
⑫ 오치보(1847~1929): 근대 다상으로 가업을 이어 전차를 주로 만들어 이름을 얻었다. 북경을 중심으로 수많은 점포를 두고 많은 자산을 모아 공익사업을 했다.
⑬ 유순경(兪洵慶)이 쓴 글로 차의 공(功)에 관해 썼다.
⑭ 좌종당(1812~1885): 군기대신을 지냈으며 그의 글에는 청대 다법 연구에 유용한 자료가 많다.
⑮ 노신(1888~1936): 문학자로 혁명적 사상을 펼쳤다. 원명은 주장수로 <광인일기(狂人日記)> <아큐정전> 등의 명작을 남겼다. 차를 아주 즐겨 일생을 차의 정신으로 산 문인이다.
16 오각농(1891~1988): 현대 다학 전문가로 농업기술학교를 나와 일본에서 다업시험장에 근무하고 돌아왔다. 중국차 발전을 위해 교육기관을 세우고 외국 다업을 돌아봤다. 많은 저술을 남겨 중국 다사를 빛낸 인물이다.
17 조의(趙懿)가 쓴 것으로 몽정차(蒙頂茶)에 관한 것이 들어있다.
<한국>
1881 김윤식 회담 ①
1882 유향림과 회담 ②
1883 차나무 재배 장려 ③
1884 일본차 수입 ④
1885 차 모종 수입 ⑤
1886 육안차 수입 ⑥
1887 미국공사 차 재배 권장 ⑦
1888 문일평(文一平)의 출생 ⑧
상해에서 차 수입
1889 오효원(吳孝媛)의 출생 ⑨
@ 다화회 성행 ⑩
1892 박영희(朴暎희) 출생 ⑪
<중국>
@ 오치보(吳熾甫)의 활동 ⑫
1884 <하랑필기(荷廊筆記)> ⑬
1885 차세에 관한 좌종당左宗堂)의 글 ⑭
1888 노신(魯迅)의 출생 ⑮
1891 오각농(吳覺農)의 출생 16
1992 몽정다설(蒙頂茶說) 17
<일본>
1883 다업조합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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