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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의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은 처음마음 같이 늘 한결같을 수만 있다면 깨달음은 이미 떼놓은 당상이라는 말이다.
얼마 전 모 대학 총장이 취임하면서 ‘무월급으로 4년을 재직하겠다’고 주변에 선언한 것은 초심을 스스로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자기다짐이라고 했다.
‘작심삼일’이라고 했든가? 그래도 그게 어딘가. 보통근기는 삼일에 한번씩 작심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근기는 ‘작심세시간’일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얼마나 자기와의 약속을 스스로 기만하면서 살아가는가.
성철 선사는 불기자심(不欺自心)을 강조했다. 자기를 속이지 말라는 말이다. 올 초에 다짐한 계획들이 한 해가 반쯤 지나버린 지금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가? 그게 두려워서 아예 계획 자체를 세우지 않는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하지만 아무런 다짐을 하지 않는다는 그것도 하나의 다짐이다. 어찌 보면 제일 못난 다짐일 수도 있다.
한 해의 결심은 말할 것도 없고 한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다가 보면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자기도 모르게 요령만 늘어가기 마련이다. 누구라도 ‘적당히’ 형(形)이 되기 십상이다. 그게 현실이니 ‘뭐 그까이거 대충~’ 이라는 유행어에 모두가 쓴 웃음을 지으면서도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출가인들 예외겠는가? 그래서 옛 어른들은 아침마다 삭발한 맨머리를 만지면서 자기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도록 수시로 확인하라고 후학들에게 가르쳤던 것이다.
출가할 때 그 마음을 정말 얼마나 견지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볼 일이다.
천목중봉(天目中峰 1263~1323) 선사의 회상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납자가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난 날 세속에 있을 때는 <법화경> 7권 중 4권을 외웠습니다. 출가 후 나머지 3권도 반드시 외우겠노라고 서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20년이 되었는데도 나머지 세권을 외우기는커녕 이미 외우고 있던 네 권마저 잊어 버렸습니다. 도대체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보나마나 그 이유는 방편(方便)이라는 미명하에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면서 살았거나, 중도(中道)라는 명분으로 원칙을 적당히 포기한데서 연유할 것이다.
누구든지 이 납자와 같은 질문이 자기를 향해 칼끝을 겨누어온다면 별로 마음 편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중봉 선사의 답변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집에 있을 때는 세속을 벗어나야겠다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매양 뭔가 부족함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그 생각에 4권이라도 외울 수 있었다. 이윽고 출가의 목적이 이루어지자 마음이 방일해져 외워두었던 것 가지 모두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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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자로서 처음처럼 초심을 유지할 수만 있었다면 20년 세월에 <법화경> 7권이 문제가 아니라 덤으로 모든 선어록을 거꾸로 외우고도 남았을 것이다.
‘국립선원(?)’에서 오래 수행한 신영복의 시 ‘처음처럼’은 현대판 선시(禪詩)라 하겠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려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