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통사는 고려시기의 대표적인 절 건축의 하나로 당시의 정치제도상을 생동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당대 국사급 절 건축의 면모를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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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교수는 "영통사 주요건물에 복원된 치미 장식은 3국 시대나 조선시대의 지붕 치미(용마루 양끝 장식 기와)와는 달리 물고기 형상의 새로운 시대성을 띠고 있다"며 “영통사 복원과정에 자체의 고유한 합법칙적 과정을 밟아온 목구조 기술수법의 한 측면이 밝혀지게 됐다” 고 덧붙였다.
이어 동국대 김영태 명예교수는 “영통사는 태조건국후 재위(918~943)의 중년 이전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며 “"고려사 등 역사적 문헌들을 보면 영통사는 국왕의 신앙도량이자 왕실의 외호사찰(外護寺刹)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사회과학원 리창언 부교수는 “영통사터의 묘실터가 의천 스님의 묘실이었다는 것은 문헌 기록과 금석문 및 발굴자료가 잘 말하여 준다”고 말했다.
이밖에 동국대 이영자 명예교수, 재일본 조선력사고고학협회 천호천 회장이 영통사 복원의 역사적 의의 및 대각국사 사상과 천태종 창종등에 대해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