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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통사는 고려의 정치제도상 보여주는 절”
10월 31일 낙성기념 학술세미나서 제기


"영통사는 고려시기의 대표적인 절 건축의 하나로 당시의 정치제도상을 생동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당대 국사급 절 건축의 면모를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영통사 낙성식 장면.
10월 31일 개성 영통사 낙성식이 끝난 뒤 곧바로 북한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손수호 소장의 사회로 열린 학술토론회에서 평양 건재대학 위영철 교수는 이같이 주장했다.

위교수는 "영통사 주요건물에 복원된 치미 장식은 3국 시대나 조선시대의 지붕 치미(용마루 양끝 장식 기와)와는 달리 물고기 형상의 새로운 시대성을 띠고 있다"며 “영통사 복원과정에 자체의 고유한 합법칙적 과정을 밟아온 목구조 기술수법의 한 측면이 밝혀지게 됐다” 고 덧붙였다.

이어 동국대 김영태 명예교수는 “영통사는 태조건국후 재위(918~943)의 중년 이전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며 “"고려사 등 역사적 문헌들을 보면 영통사는 국왕의 신앙도량이자 왕실의 외호사찰(外護寺刹)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사회과학원 리창언 부교수는 “영통사터의 묘실터가 의천 스님의 묘실이었다는 것은 문헌 기록과 금석문 및 발굴자료가 잘 말하여 준다”고 말했다.

이밖에 동국대 이영자 명예교수, 재일본 조선력사고고학협회 천호천 회장이 영통사 복원의 역사적 의의 및 대각국사 사상과 천태종 창종등에 대해 발표했다.
김원우 기자 | wwkim@buddhapia.com
2005-11-03 오후 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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